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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침대에 누운 채 긴 막대를 이용해서 벽에 그림을 그리는 마티스.
화가는 정년이 없다. 스스로 붓을 놓지 않는 한 영원한 현역이다. 작업은 묵직한 나이에도 할 수 있는 ‘평생 일거리’다. 연륜이 쌓일수록, 작품은 깊이를 더한다.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에서 노년기에 걸작을 남긴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베토벤은 15년 동안 귀머거리였지만 죽을 때까지 작곡을 했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도 여든 살이 넘어서였다. 하이든, 헨델, 베르디 등도 일흔 살을 넘겨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다.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수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화가들이 많다. 이들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예술적 정열 때문이다.

작업의 빛이 된 질환
사람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질환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질환이 육신을 갉아먹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의지마저 꺾어놓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화가에게 질환은 독이기보다 약이었고, 창조의 근원이었다.
'원색의 마술사'로 불렸던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질환(충수염) 때문에 화가가 되었고, 연로해서는 질환 때문에 작품 스타일에 변화를 겪었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마티스, 「푸른 누드 Ⅳ」, 종이 콜라주, 1952
평생 질환과 동행한 마티스는 기관지염 치료차 떠났던 니스에서 여생을 보내며, 70대에는 결장암 후유증으로 13년 동안 침대 신세를 진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침대에 누운 채,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 끝에 목탄 조각을 매달고 천장이나 벽에 인물을 스케치하는 식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가위로 원색의 색지를 오리며 작업에 몰두했다. 병실은 천장에서부터 마루까지 생생한 형상들로 가득 찼다. 푸른색의 색종이 조각을 콜라주한 걸작 「푸른 누드 Ⅳ」(1952)에는 20대 못지 않은 에너지가 넘친다. 마티스의 작품 중 가장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색종이 콜라주. 이는 그가 평생 추구했던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상을 집약한 득의의 조형세계였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모네, 「일본식 다리」, 캔버스에 유채, 1899
「해돋이, 인상」(1872)으로 인상파의 탄생을 알린 클로드 모네(1840-1926)는 만년에 닥친 백내장 때문에 형태가 모호하고 필치가 거친 작품을 남겼다. 백내장을 앓게 되자 그림 속의 형태가 불분명하고 흐릿해졌다. 색감도 달라졌다. 뿌옇게 변한 모네의 수정체는 붉은색이 아닌 대부분의 색들을 여과시켰다. 작품의 색조가 전반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심지어 푸른색도 보라색으로 변했다. 이후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모네, 「일본식 다리」, 캔버스에 유채, 1907
“작업을 해야 합니다. 시력을 다 잃기 전에 모든 것을 다 그려보고 싶습니다.” 눈이 정상이었을 때와 백내장으로 고생했을 때 그린 「일본식 다리」 연작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뚜렷하다. 1890년대 연작에서는 맑은 날의 푸른색에서 저물 때의 붉은색으로 서서히 변화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20년 뒤에 그린 이 연작에서는 빛이 백내장 때문에 교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소재지만 혼탁한 수정체로 보고 그린 그림은 붉은 색, 수술 뒤에 그린 그림을 푸른색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백내장이 빚은 거친 그림들은 의외의 결실을 낳았다. 훗날 추상주의와 표현주의의 씨앗이 된 것이다.

발레리나를 즐겨 그렸던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80대까지 살았지만 말년에 급격한 시력 저하로 장님이 되다시피 했다. 화가에게 실명은 ‘회화적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그는 시각을 잃은 대신 촉각에 의지하며 조각에 매달렸다. 소재는 자신이 줄기차게 그렸던 발레리나와 말(馬)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순간적인 표현에 매혹되었듯이, 그는 이들 소재가 연출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데 전념했다. 1893년부터 1900년까지 제작한 작품 중에는 포즈가 다양한 발레리나 조각이 무려 37점이나 된다. 그는 자신을 결코 ‘조각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전에 석고로 뜬 작품은 3점뿐이었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르누아르,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899
현재 국내에서 전시(‘르누아르의 여인’전)중인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14-1919)는 50대 중반에 심한 류머티즘으로 장시간 이젤 앞에 서 있을 수 없었다. 대작은 엄두도 못냈다. 작업은 작은 자화상으로 대신 했다. 류머티즘은 작품의 표정에도 영향을 미쳐, 자화상에는 르누아르 특유의 장밋빛 분위기 대신 연민을 자극하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모네의 시각이 정상일 때,
모네, 「일본식 다리」, 캔버스에 유채, 1923년경

‘꽃보다 할배’ 화가들의 향기
나이가 들수록 정열은 사그라진다. 노경(老境)에 필요한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정열이다. 정열은 삶의 에너지다. 화가들은 정열을 바탕으로 노년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작업은 곧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물은 흐르다가 막히면 다른 길을 낸다. 화가들은 열악한 신체 조건에도 실현 가능한 출구를 찾았다. 불가피한 질환을 동력삼아 잠재된 예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작품세계의 지평을 한껏 넓히기도 했다. 비록 노화와 투병으로 인생은 불편했지만 미술사의 곳간은 한없이 풍요로워졌다. 화가에게 노화는 예술적 심화였고, 질환은 창작의 자양강장제였다. 고령화 시대에 노년을 아름답게 보내는 비결은 정열의 자가발전에 있다. 화가들의 삶은 그 점을 향기롭게 증명한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몰입의 즐거움’이 있다.

정열로 황혼기를 빛낸 화가들모네의 시각이 백내장을 앓을 때,
모네, 「일본식 다리」, 캔버스에 유채, 1923년경

글 정민영(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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