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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인류의 오랜 동반자지구상에서 닭이 사라진다면?
닭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면서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고 또 주변의 환경을 개혁해 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인간 문명에 적극 참여했고 인간의 행동을 대변하는 가축으로 친근하게 인용된다.
닭의 이런 좋은 점을 상기하면서 올해가 새로운 시작과 상서로운 조짐의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구상에서 닭이 사라진다면?
닭은 우리들 가까이에 사는 아주 친근한 가축으로서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말한다. 닭을 뜻하는 계(鷄)는 좋은 조짐을 의미하는 길(吉)과 똑같이 중국어에서는 ‘지’라고 발음되어 상서롭고 유익한 동물로 여겨져 왔다. 닭띠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예리하게 관찰하여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육사의 시 ‘광야’가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리라’라고 노래했듯이 닭은 태초의 시작을 알리는 새였다.
<시경>에서는 계명지조(鷄鳴之助)라고 하여 옛 임금의 어진 왕비는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왕에게 이미 닭이 울었으니 기침하여 밝은 정사에 힘쓰실 것을 권유했음을 알려준다. 이처럼 새로운 날의 시작을 노래한 새였기에 우 리 인간은 닭을 친근하고 상서로운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 왔다.

닭은 위대한 여행자
닭은 일찍이 동남아시아의 밀림을 떠나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우리 인간을 가리켜 지상의 과객이라고 한다면, 닭은 현지에 눌러 앉기 위하여 모험 길에 오른 여행자였으며 한 번도 관광객인 적이 없었다. 닭은 먼저 동남아시아에서 태국을 거쳐 인도로 가서 다시 메소포타미아를 건너 유럽으로 갔다. 바닷길 여행은 동남아시아의 남쪽으로 내려가서 멜라네시아에서 원주민의 작은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하와이 섬과 남태평양의 섬들을 지나 저 멀리 이스터 섬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닭의 여정은 우랄 알타이 산맥에서 시작하여 바이칼 호수를 거쳐 몽골을 지나 중국 북부를 통과하여 한반도에 정착했을 한민족의 대이동을 연상시킨다. 또한 구한말에 인천항에서 출발하여 하와이 섬으로 건너가서 그곳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다 이윽고 아메리카 본토에 도달하여 눌러 앉게 된 노란 민들레 우리 미주동포의 인생 여정도 생각나게 한다.

인류의 문명에 참여해온 닭
일찍이 닭은 복점과 희생 제물로 인류의 정신적 문명에 참여해 왔다. 가령 고대 로마시대에는 새를 이용하여 미래를 점쳤는데, 닭의 배를 갈라 창자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서 신의 뜻을 읽었다고 한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 도교의 사제들은 새로운 사원을 축성하고, 제국의 왕실을 위협하는 악령을 물리치고, 전염병을 쫓아내기 위해 닭을 희생물로 바쳤다. 이렇게 한 것은 닭이 태양의 떠오름과,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가리키는 상서로운 새였기 때문이다.
또한 동남아의 발리 섬에서도 닭을 제사 의식의 중요한 희생물로 여겼다. 그곳 사람들은 돼
지의 피는 무기력하다고 본 반면에 닭의 피는 활기와 생동감이 있다고 생각하여 특히 닭을 선호했다. 원래 천연재해를 모면하려는 사람들이 신에게 바치는 희생은 인간의 피였으나, 후대에 들어와 인간의 피를 대신할 동물을 찾으면서, 인간과 밀접하고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닭을 희생 제물로 삼은 것이다.

인간과 닭의 유사성
인간은 닭을 가지고 투계 놀이를 하면서 그 자신의 타고난 공격성을 다스려 나갔다. 인간의 공격성과 사행심이 결합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지금도 투계장을 운영하면서 도박을 한다. 수탉은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자기 영역을 맹렬히 방어했고 무서울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다. 또한 수탉이 다수의 암탉을 상대로 왕성하게 성욕을 발산하는 모습은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신문 등에서 성과 관련하여 자주 나오는 이야기와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인간의 행동은 때때로 닭을 닮았다. 우리 인간은 만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수탉처럼 뻐기다가도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힘센 사람을 만나면 병아리처럼 겁먹고 뒤로 물러선다. 또 암탉에게 쪼이는 수탉 같은 공처가이면서 밖에 나가서는 천하대장부인 양 허세를 떨고, 위험한 상황을 만나면 달걀 밟듯 조심스럽게 눈치를 본다. 시골 농가에 가면 정답게 만날 수 있는 헛간의 닭은 우리의 거울 이미지이다. 닭은 부드러우면서도 난폭하고, 침착하면서도 동요를 잘 하고, 다정하면서도 배은망덕하다. 또한 하늘을 날아가고 싶어 하지만 두 발은 여전히 땅에 묶여 있다. 그러니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인간은 날 수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다.” 농가마당에서 바쁘게 뛰어 다니는 닭을 보면 이 말이 참으로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과 생활에 기여해온 닭
찰스 다윈은 닭들을 이종 교배하고 빨리 번식시킨 덕분에 진화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루이 파스퇴르는 닭을 이용하여 최초의 근대적 백신을 만들어냈다. 달걀은 오랜 연구 끝에 과학의 기본적인 조직 모델이 되었고, 우리가 해마다 독감 혈청을 만드는 밑바탕으로 활용된다. 닭은 가금류로는 최초로 게놈이 해독된 동물이다. 그 뼈는 인간의 관절염을 완화시키고, 수탉의 볏은 얼굴의 주름을 펴주고, 유전자 이식된 닭들은 곧 다수의 의약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닭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먹을거리가 우리 생활에서 부족하게 될 것이다. 양념 치킨과 프라이드치킨, 치킨과 맥주, 닭백숙과 삼계탕, 닭볶음탕과 깐풍기, 닭갈비와 라조기, 소주 안주로 최고인 닭똥집, 점심 식사 한 끼로 그만인 닭칼국수는 아예 먹지 못하게 되고, 다이어트에 필수 품목인 닭가슴살 샐러드는 준비할 수 없게 된다. 닭이 없으면 달걀도 없을 테고, 그러면 아침 식사에 계란 반숙은 올라오지 못하며, 계란을 사용하는 빵 종류도 사라질 것이고, 우리가 찜질방에서 맛있게 먹는 구운 계란 또한 없어질 것이다. 멀리 여행을 갈 때 간식거리인 삶은 계란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소풍을 갈 때 어머니가 싸주었던 도시락 속의 계란덮밥의 추억 또한 원천 무효가 되리라.

닭이 간직한 밀림의 야성
동남아시아의 정글을 떠나 온 세계에 퍼졌으니 닭은 그 뿌리와 근본을 아예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닭의 시조인 적색 야계 수백 마리를 키운 미국 농장주 아이작 리처드슨은 참으로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그는 그 새들을 따로 떼어놓고 다른 새들과는 교배하지 못하게 했다. 그 덕분에 지구상에는 적색 야계가 100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다. 리처드슨의 딸은 키우기 힘들고 말도 듣지 않으며 사람이 다가오면 ‘깩깩’ 소리를 지르기 바쁜 저 새를 왜 그토록 애지중지하냐며 이유를 물었다.
“저 새들을 길들일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난 저놈들의 있는 그대로의 야성을 좋아하지.”
우리 인간도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지위가 높아지고 세상에 잘 적응한다고 해도 이런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본질을 갖고 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시시한 사람이듯이, 가슴 속 깊이 야성을 감추어 놓지 않은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 마지막 남은 야성 혹은 열정으로 인류는 파괴도 하고 창조도 했으며, 후퇴도 하고 전진도 했고, 개악도 하고 혁신도 하면서 인간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새해 아침에 되새기는 닭의 의미
닭은 거의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역경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닭은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기에 앞서 그것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또 적응하는데 안주하지 않고 획기적인 과학의 돌파구를 제공하여 주변 환경을 개혁했다. 가까운 사례로 한국의 닭들은 조류 인플루엔자로 큰 위기를 겪었으나 이 전염병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지난 해 후반부터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다들 이 난국의 신속한 해결을 갈망하고 있다. 송나라의 어떤 시인은 '산 넘고 또 산이라 길을 잘못 들었나 하였는데 이윽고 버드나무 그늘이 짙고 꽃들이 환하게 피는 마을이 나오더라' 고 노래했다. 아마도 그 마을에는 닭 우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정유년을 맞이하여 우리 또한 닭의 놀라운 적응과 개혁 능력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올해를 새로운 시작과 좋은 조짐의 한 해로 만들어야 하겠다.

지구상에서 닭이 사라진다면?

글 이종인(전문번역가, 한국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치킨로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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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작가
2017.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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