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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로 세상을 요리하다이욱정 PD
이욱정 PD
<누들로드>와 <요리인류>를 통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욱정 PD.
그는 단순히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음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음식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욱정 PD의 모습을 담았다.

음식, 생존과 놀이의 이중주사람은 먹어야 한다. 음식을 접하지 않으면 삶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는 지역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식재료가 다르고 조리 방법이 다를 뿐, 고기나 생선, 채소들을 뜨거운 불에 조리해 가족과 나누는 것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동일하다.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와 <요리인류>를 제작한 이욱정 PD는 이것이 음식과 요리가 지닌 ‘생존’과 ‘놀이’의 두 가지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욱정 PD
“오직 살기 위해, 생명 연장을 위해서만 음식을 먹는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또는 오직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희귀한 재료를 탐내고 색다른 요리법만을 고집하는 것도 옳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욱정 PD는 한 그릇의 국수를 얻기 위해 밀대로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밀거나, 압착 틀에 넣어 있는 힘껏 국수를 뽑아낸다고 말했다. 또한 얇은 칼날을 이용해 도삭면을 만들거나 일본처럼 다양한 입맛을 맞출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면을 제조한다. 만약 국수를 먹는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재료를 이용해 똑같은 조리법으로 똑같은 모양의 국수를 만든다면 우리에게 먹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인간으로의 기쁨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욱정 PD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국수’라는 소재로 <누들로드>를 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수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 안에서는 생존을 위한 진지한 노력과 여유 있으며 이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 그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음식 전문 다큐멘터리 PD로서 음식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음식에 세상의 시작과 끝이이욱정 PD를 만난 곳은 상수동 골목 한쪽의 작은 스튜디오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KBS 쿠킹 스튜디오’로 많은 음식 프로그램들이 자극적인 흥미와 시청률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요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이욱정 PD
“어릴 적부터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예전에 <추적60분>을 통해 학교 급식에 관한 문제점들을 방송한 일이 있었는데 시청률이 무려 두 배 이상 올랐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이러한 관심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먹는 걸 좋아하고 무리해서라도 귀한 음식을 사 먹는 데 주저하지 않아, 한때 부잣집 자식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서 ‘한국에 와 있는 무슬림 노동자의 음식 금기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으니 지금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삶이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음식 속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음식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의 경우 대다수가 전통음식에 한정됐으며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욱정 PD는 국적을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공통분모로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을 향한 그의 열정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예상과 달리 이욱정 PD는 촬영감독, 오디오감독 그리고 두 명의 카메라맨으로만 팀을 구성해 그 흔한 AD나 스크립터 한 명 없이 오지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그날 일행과 함께 베두인족의 주식인 ‘납작빵’을 촬영하기 위해 아라비아반도로 들어간 그는 이틀 동안 사막 한가운데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배회하며 죽음의 공포가 실제로 다가옴을 느꼈다. 하늘도 그의 음식에 대한 정열을 알았던 것일까. 우연히 영어를 할 수 있는 베두인족을 만났다. 허나 그를 따라간 베두인족 마을에서는 촬영을 원치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설득해 겨우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의 원형이 남아 있는 납작빵의 조리 과정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욱정 PD

스스로 힘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스스로를 먹물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이욱정 PD는 실제로 KBS를 휴직하고 프랑스 요리학교인 ‘코르동 블루’로 유학을 떠나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유쾌하게 웃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그는 갑작스러운 유학으로 회사 내 승진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그는 도전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모인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를 졸업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결국 졸업했다. 굉장히 엄격한 학풍 아래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요리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그는 새롭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얻었다. 그 결과 <요리인류>와 <자연담은 한 끼>, <대식가들> 같은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한 것이 그를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이욱정 PD
“다큐의 생명은 창의성과 남다른 시각입니다. 창의성과 남다른 시각을 길러주는 힘은 머리로 하는 학습과 손으로 익히는 경험이 동시에 진행돼야만 합니다. 우리가 욕심내는 것처럼 꼭 프로페셔널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영역을 이해하고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욱정 PD에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더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본인의 환경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나가는지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이욱정 PD가 들여다보는 음식처럼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잊히지 않을 맛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이욱정 PD

글 이원복, 사진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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