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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온 편지#3 이 환장할 봄날에
#3 이 환장할 봄날에
봄. 코끝이 간지럽습니다.
아직 바람은 알싸하고 구름은 변덕스럽지만 제주의 봄은 유채꽃처럼 샛노랗게, 월동 무 잎사귀처럼 푸릇하게 마음을 간질입니다.
이럴 땐 해안도로 드라이브가 제격이지요.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창밖엔 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이따금 어느 CF의 주인공처럼 창을 내려 손을 뻗으면 달짝지근하고 비릿한 제주의 봄 공기가 만져집니다.

제주의 해안도로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길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길은 성산부터 김녕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서쪽이나 남쪽의 해안도로들이 대부분 짧은 구간으로 끊기는 것에 비해 동쪽의 해안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고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없어 물리도록 바다에 취해 달릴 수 있지요. 조롱조롱 집어등을 매단 고깃배들이 일렬주차(?)된 성산항에서 달리기를 시작해볼까요. 성산갑문 위를 통과해 해안도로로 접어들면 구불구불 굴곡이 심한 해안선 덕분에 이미 지나쳐온 일출봉과 우도가 앞쪽에서 다가들었다가 잠시 후엔 다시 뒤쪽에서 나타났다가 하는 재미있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이 환장할 봄날에1510년 축조된 별방진. 우도 부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넓고 하얀 모래 해변과 철새 도래지를 품은 하도리에 들어섭니다. 제주에서도 가장 제주답다는 평을 듣는 마을. 바다를 마주한 땅에 키 낮은 밭담이 파도처럼 이어지는 마을. 현역 해녀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마을.
그 한적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았던 마을. 오랜 옛날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했다는 별방진 맞은편으로 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생긴 후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멈추는 관광객들이 늘긴 했지만, 하도리는 여전히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제주의 숨은 보석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발길을 멈춘 여행자들과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닌 게지요.

#3 이 환장할 봄날에하도포구에 세워진 마을 상징 조형물.
봄이 오면 생각나는 이가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였지요. 모처럼 완벽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 밀렸던 잠을 몰아 자고 부스스 일어나 앉은 늦은 아침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복00 씨 부탁으로 작은 책자 하나 전달해 드리려고 왔어요. 지금 대전에서 전시를 하고 있거든요.”

2년 전 2월,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한다며 몇 번 가게에 와서 낯을 익혔고, 난로에 구운 뿔소라를 안주 삼아 함께 맥주를 마셨고, 인도에 있는 NGO에서 일하게 됐노라며 부러 찾아와 인사를 건네고는 제주를 떠났던 친구 소식이었습니다.
반갑고 궁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그 친구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 장 빼곡히 글을 채운 엽서와 함께 놓여 있던 책자에는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을 직접 손으로 스케치한 그림과 단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라임 주스를 만들어 파는 아저씨, 꽃을 엮어 파는 아주머니, 장난감 피리를 파는 소년…. 그녀는 언젠가부터 ‘그들의 일상을 찍는 일이 무례하게 느껴져’ 카메라 셔터 누르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대신 ‘덥고, 더럽고, 시끄럽고,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 이 환장할 봄날에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된 인연이 보내온 선물
“첸나이의 마지막 날, 그에게 그림을 건넸다. ‘아저씨의 주스는 최고에요’하는 작은 메모와 함께. 나의 그림은 그의 가슴에 그리고 이마에 몇 번이고 대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뜨거워져 눈물이 났다. 내가 이곳에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던 순간, 누군가에게 나의 고마움이 닿을 수 있는 작은 방법이 있다는 것에 벅찼다. 그리고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깊이 닿을 수 있다고, 그렇게 믿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도의 거리 풍경이, 그 거리 어딘가에서 가난하지만 착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노트에 그려 넣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괜스레 나도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요.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지요. 떠나오지 않았다면 존재도 모르고 살았을 서로를 낯선 땅에서 만나 서로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게 해주는 마법. 그것이 여행이지요.

#3 이 환장할 봄날에밭담 안쪽 가득 핀 배추꽃. 전문가조차 구분이 힘들 정도로 유채꽃과 꼭 닮았다.
“많은 계획했던 것들이 조금씩 바뀌면서 여행은 제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주었어요. 제주에 들러 직접 전해 드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텐데… 어째 당장 내일 다시 인도행 비행기에 오르는 저입니다. 아무래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당시의 추억 같은 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있어요. 예전, 사장님 책의 서문이 너무나 와 닿았는데 마치 그것 같기도 해요. 그곳에 발을 디디고 말았기 때문이겠죠? 다시 들를 때쯤에도 기억해주세요.”

훗날 언젠가 마주 앉은 우리는 “옛날이랑 똑같네. 하나도 안 변했어”라며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뛰어넘으려 할 것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그녀가 기억을 되짚어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나는 그녀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이 깃들어버린 세월의 흔적들을 가만히 바라볼 것입니다. 그것은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꽃이 필 때마다, 별자리가 돌 때마다, 문득 나를 떠올렸던 흔적일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3 이 환장할 봄날에성산항에 정박한 배들
이 봄, 나는 다시 살랑이는 미풍에 실려 올 그녀의 소식을 기다리게 될 것만 같습니다. ‘무슨 인생이 요행수 같은 거 하나 없이, 딱 내가 한 그만큼만 돌아오냐’는 불평 아닌 불평을 입막음하기라도 하듯 제주에서의 이 조금은 긴 여행은 하루하루가 선물이고, 한 가닥 인연의 끈은 이토록 아름답게 두터워집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이 환장할 봄날에.


송혜령 방송작가글을 쓴 송혜령은 방송작가로, 대학 졸업 후 십수 년간 TV 교양 프로그램과 토크쇼ㆍ다큐멘터리 등을 만들면서 세상 사는 법을 배웠고, 독서와 여행을 통해 세상 읽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흔 살이 되던 해 하던 일을 작파하고 주위의 부러움과 우려와 억측 속에서 남편과 함께 1년간 세계 여행을 감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1년 만에 제주도로 이주, 동쪽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여행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작가 블로그http://blog.naver.com/coolcool220 (클릭하면 블로그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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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land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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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s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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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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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good87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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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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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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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dell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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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호맘
2017.03.29
s화사한봄꼭너무 보기좋고가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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