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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웃고 즐기는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왼쪽부터) 주아라 계장ㆍ서주희 계장ㆍ장예린 계장ㆍ박수정 계장
‘각자도생’ 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일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외로이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IBK기업은행 합숙소 여직원들. 각자 생활 패턴에 맞춰 여가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마주 보기 힘든 상황이다. 매일 함께 따뜻한 집밥을 먹고 싶지만 바쁜 일상, 바쁜 스케줄로 합숙소에서 조차 다 같이 한 끼 식사하기 힘든 상황. 함께 지내는 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그녀들에게 그동안 나누지 못한 소소한 이야기와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어찌 좋은 일만 있을소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솔직한 속마음과 한창 뜨거운 관심사인 연애 이야기까지 이날 밤 그녀들의 테이블은 화끈했다.

음식으로 만난 사람들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음식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한 치의 거짓 없는 사랑이라는 뜻의 이 문장은 음식을 향한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음식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면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음식의 진정한 가치는 함께 먹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늦겨울 저녁 옥수동의 한 식당에 모인 네 명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주아라 계장(수유역지점), 장예린 계장(건대역지점), 서주희 계장(총무부), 박수정 계장(퇴계로지점)이다. 주아라 계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동갑내기다. 처음 마주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주희 계장은 박수정 계장과, 주아라 계장은 장예린 계장과 함께 방을 쓰는 사이다. 이들이 함께 지내는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금은 직설적인 질문에 조금은 긴장한 눈치다.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주아라 계장(수유역 지점)
여자 숙소에 대한 편견은 대개 극단적이다. 어딜 가나 꽃향기가 날 듯한 신비스러운 공간, 혹은 쌓여 있는 옷더미를 발로 밀어가며 길을 만들어야 하는 너저분한 집, 시트콤에 나오는 집처럼 유쾌하고 즐겁거나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시기와 질투로 바람 잘 날 없는 공간이지는 않을까. 하지만 네 명의 직원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젓는다.

“저희 같은 경우는 정기적으로 청소해주는 아주머니가 오세요. 함께 숙소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각자 공동경비를 마련해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장예린 계장의 설명이다. 그 얘기에 서주희 계장과 박수정 계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본인들은 요일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어머머”를 외치며 서로의 생활 방식을 신기해하는 직원들. “우리는 돌아가면서 총무를 맡아 책임지고 세금을 낸다든가 공동비품을 사거나 해요.”, “우리는 단톡방을 만들어 공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오! 그거 좋겠다.”, “우리도 그래 볼까?” 등 갑자기 공동생활에 대한 정보 교환의 장이 펼쳐진다.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장예린 계장(건대역 지점)
음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
오늘 모인 곳은 옥수동 근방에서 꽤나 ‘핫’한 공간이다. 박수정 계장은 “늘 와보고 싶었지만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어 오질 못했다”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고, 다른 직원들은 “연예인들이 이 식당에 자주 온다더라”는 정보를 공유하며 그 맛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즐거움을 표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고른 메뉴는 낙지가래떡볶음, 게튀김, 갈비찜, 백명란마전, 바지락술찜 등이다. 여기에 공깃밥과 와인 한 병까지 주문하니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성찬이 차려진다.

음식이 나오자 현대인의 필수 코스, 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서로 까르르 웃어가며 사진을 찍는다. 음식만을 찍을 수는 없는 법. 서주희 계장이 자연스럽게 휴대폰의 카메라를 돌리자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가장 자신 있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다들 웃기 시작한다.
박수정 계장이 “이렇게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들며 밥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 지 모르겠다”며 뭉클한 표정을 짓자 일제히 공감을 한다.
“숙소에서 여럿이 모여 사는데 다 같이 밥을 먹을 기회가 없다고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자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외친다.
“평일 오전에는 다들 출근하느라 바빠 얼굴 볼 시간이 없고 저녁에는 업무 때문에 다들 귀가하는 시각이 제각각이어서 각자 방에서 먼저 자거나 다른 사람들 수면에 방해될까 봐 조심스레 들어와요. 주말에는 본가에 내려가거나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니 사실상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맏언니인 주아라 계장의 설명에 모두가 조금은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서주희 계장(총무부)
음식으로 맺어진 인연들
음식을 덜어 주며 이거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는 가운데 와인잔이 조금씩 비워진다. 그에 맞춰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직장 생활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이 그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준다. 일 이야기도 잠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애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자의 경험에 빗대어 열심히 조언을 하면 상대방은 단어 하나 놓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귀담아듣는다. 어느새 모두 어릴 적 친구가 된 듯하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가운데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함께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을까? 매서운 눈빛으로 각자에게 가장 불편한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모두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약간의 침묵 끝에 주아라 계장은 “샤워하고 옷을 갖춰 입고 나와야 하는 것”, 장예린 계장은 “일 때문에 늦게 들어왔는데 소음 때문에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할 때”, 서주희 계장은 “주중에 너무 바빠 밥을 같이 먹을 기회가 거의 없는 것”, 박수정 계장은 “두 사람이 한 방을 쓸 때 서로의 생활 패턴에 대해 조심스럽게 배려해야 하는 것”을 꼽았다. 다들 ‘불편한 점을 굳이 찾는다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반대로 이번에는 장점을 물었다. 모두 질세라 대답을 내놓는다. 가장 공감한 부분은 “같은 일을 한다는 동질감 덕분에 금세 친해지고 어려운 회사 일을 의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야 하지만 룸메이트들은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외롭지 않아 좋다, 여럿이 함께 사니까 안전하고 부모님께서도 마음을 놓으신다” 등을 외치며 활기를 되찾는다.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박수정 계장(퇴계로 지점)
앞으로 나아갈 2017년
끝없는 소재 속에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세월의 빠름이다. 새해가 밝은 지 어느새 석 달이 지났으니 이런 속도라면 곧 크리스마스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판이다. 회사에서 연차도 어느 정도 차고 미래에 대한 고민 역시 깊어지는 이때 네 명의 직원 모두가 좀 더 진지하게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결혼에 대해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주아라 계장, “업무 포지션이 바뀜에 따라 자격증도 따고 그동안 쉬었던 가죽공예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장예린 계장, “서울에 대한 동경을 품고 올라 온 만큼 좀 더 서울 생활을 재밌게 즐겨보고 싶다”는 서주희 계장,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 올해는 어떤 걸 취미로 배운다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박수정 계장. 모두 서로에게 잘될 거라며 응원의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와인이 줄어들면서 즐거움과 고민도 더욱 깊어져간 오늘 이 시간, 모두 흘러가는 시간을 잡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오늘 모임을 살짝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즐거울 줄은 몰랐어요. 집밥같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옥수동 그녀들의 저녁 식사

글 이경희, 사진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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