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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으로 표현하는 예술 그리고 삶발레리노 강민우
발레리노 강민우
누군가는 언어로 예술을 논하지만, 발레리노 강민우는 몸짓으로 예술을 구현한다. 이는 무용수의 숙명이다.
입으로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수많은 단어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온 신경을 집중해 훈련을 지속해왔다.
그렇게 벼린 세월이 그의 몸에 축적되어 아름다운 몸짓으로 승화했다.

오직 발레어린 시절, 그는 유달리 몸이 허약했다. 저체중아로 태어난 아들의 건강은 늘 엄마의 관심사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배운 운동만 해도 몇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웠다. 그러나 뛰고 겨루는 운동이 도무지 성격에 맞지 않아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이 잦았다. 고민하던 엄마의 눈에 동네 발레 학원 광고가 들어왔다. 그렇게 아홉 살 소년은 처음으로 발레 슈즈를 신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처럼 극적인 여정은 없었지만, 발레를 배우는 날이 늘어갈수록 그의 일과에 발레가 차지하는 비중도 차츰 늘어갔다.
그렇게 홀씨 같은 재능이 싹을 틔워 그의 인생에 ‘발레’라는 꽃이 피었다.

발레리노 강민우
“처음 발레를 배울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따라 하기 바빴어요. 게다가 당시 학원에서 발레를 배우는 남학생은 제가 유일했거든요. 그러다 예술학교에 진학하면서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경쟁 상대가 생기니까 도무지 연습을 소홀히 할 수 없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자리에까지 왔어요.”

발레리노 강민우는 선화예술고등학교와 미국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열아홉 살인 2008년에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러고는 다양한 작품에서 군무부터 차근차근 경험하며 내공을 쌓았다. 올해로 데뷔 9년차인 그는 비로소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적당한 타이밍. 수석무용수는 단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발레를 하는 이에게 ‘수석무용수 승급’은 어떤 의미인지 묻자 “직장인으로 따지면 부장 승진”이라는 이해하기 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책임감, 다시 그를 이끄는 동력
회사원도 승진을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경력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그에게도 수석무용수로서 오른 첫 무대는 남달랐다. 원래도 공연을 앞두고는 긴장감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그는 이번 공연 직전에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마시려 했던 우유에 빨대를 제대로 꽂지 못할 정도로 떨었다고 한다. 그만큼 수석무용수로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른 것이다.

발레리노 강민우
“얼마 전 공연한 <지젤>은 지난해 여름 공연했던 작품이에요. 6개월 만에 다시 올리는 작품인데, 그사이 제 위치가 수석무용수로 바뀐 거죠. 짧은 기간 안에 기량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컸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앞두고는 더 많이 긴장했습니다.”

무용수의 깊은 고민은 어떤 식으로든 공연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관객은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 힘을 쏟아내는 무용수의 몸짓에 그 어떤 관객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덕분에 이번 <지젤>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도 큰 호평을 얻었다.

수식어보다 본질
다양한 작품에서 주역을 맡은 경험은 그에게도 큰 자산이다. 그는 2012년에 공연한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두 왕자’ 역을 맡으며 성공적인 첫 주역 신고식을 마쳤다. 이후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심청>에서 ‘용왕’과 ‘선장’을 연기했고, <지젤>의 ‘알브레히트’와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드 왕자’,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렌스키’,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쇼’와 ‘벤볼리오’ 역 등 다수의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와 <멀티플리시티>, 이리 킬리언의 <젝스 텐체> 같은 모던 발레에서도 남다른 기량을 선보이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2011년 <지젤> 일본 투어 공연은 그에게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K-Pop 스타로 가득한 일본 내 유명 한류 매체에 이른바 ‘발레돌’로 소개되며 발레 분야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킨 것이다. 현지에서 팬 미팅이 열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순수 예술 분야에서 일본 현지 요청으로 팬 미팅을 개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였다. 지금도 당시 인연을 맺은 팬들이 선물을 보내온다.

발레리노 강민우<지젤> 지젤 파드되
하지만 그는 이러한 대중적 수식어가 자신을 설명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발레 한류’나 ‘발레돌’ 같은 말은 그저 발레에 대한 대중적 접근을 높이는 일종의 장치 같은 것. 그는 반짝 인기에 도취해 있기보다 자신이 해야 할 본질적 역할에 더욱 집중한다. 사실, 해외 공연은 이동이나 현지 적응 문제로 국내 공연에서만큼 제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잊지 않고 공연장을 찾아주는 팬들을 생각하면 사명감이 솟는다. 관객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교류하려는 마음가짐 역시 무용수로서 중요한 덕목. 그래서 그는 관객에 대한 예의와 진심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내 팬들 역시 그의 성장을 오래도록 지켜봐왔다.

그 어떤 역할이라도
그는 무용을 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지닌 발레리노로 꼽힌다. 타고난 신체 조건도 그렇거니와, 탄탄한 기본기로 다져진 기량과 남다른 체공 시간은 그만의 강점이다. 덕분에 그의 점프 동작은 화려하다. 하지만 단원들이 이야기하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겸손과 끈기다.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연기를 펼치려 노력하는 자세가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왔다.
같은 배역을 맡았다면 이전보다 더욱 잘 소화해냈고, 새로운 배역이 주어지면 오롯한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집중했다. 발레에는 대사가 없지만 드라마틱한 스토리도, 각각의 역할이 지닌 캐릭터도 있다. 배우처럼 무용수에게도 자신이 더욱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한계에 갇혀 있지 않으려 한다. 어떠한 역할이라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는 것. 그가 훗날에 듣고 싶은 평가 역시 ‘모든 배역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발레리노 강민우<돈키호테> 에스파다와 메르세테스의 춤
“물론 아직은 희망 사항이에요.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저와 잘 안 어울린다는 평가를 들은 배역은 없었어요. 테크닉을 떠나서 연기나 이미지 등 모든 면에서 배역을 잘 살릴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이번 시즌 공연인 <돈키호테>에서는 ‘바질’ 역을 맡았는데, 처음 해보는 역할이라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어제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열망은 그를 조금도 멈춰 있을 수 없게 한다. 꾸준한 연습은 당연하다. 쉬는 시간조차 아까워할 만큼 그의 머릿속은 작품과 배역 생각으로 가득하다. 오랜 신체 훈련으로 매일 아침 고통 속에 눈을 뜨는 일상을 이제는 당연하게 여길 만큼, 발레는 그의 삶을 온통 차지해버렸다.
다시 막이 오르고 내린 후에라도, 이 지독한 몰입은 계속될 것이다. 그를 통해 몸짓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발레리노 강민우

글 정라희, 사진 이성원,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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