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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이룬 그의 손끝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 꿈을 현실로 이룬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나라 피규어 아티스트 1세대로 꼽히는 쿨레인(본명 이찬우)은 막연하던 꿈을 실현한 인물이다.
그의 손끝은 머릿속 상상을 집요하게 현실로 구현했다.
그는 고독한 과정을 이겨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했다.

예상 진로 밖으로
대학 시절, 화학도인 그의 앞에 놓인 예상 진로의 가짓수는 비교적 단출했다. 고향에서 대학까지 다닌 그의 기억 속 도서관 풍경은 ‘같은 책을 보는 학생’으로 가득했다. 전공과 관계없이 대다수 학생이 토익 아니면 시사, 상식 같은 취업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도 다른 학생들과 비슷한 길을 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매달릴 분야가 생기면서, 그의 마음에도 ‘다른 길’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생겨났다.

“1992년에 <아키라>라는 작품을 보고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 하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1995년 <토이 스토리>가 개봉하면서 성인들도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죠. 저 역시 대학생 시절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지냈고요.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특히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매력을 느꼈지만, 당시만 해도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이었을 뿐 자신이 관련 일을 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애니메이션 산업이 이른바 ‘황금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도 애니메이터라는 새로운 진로를 인생 계획에 올릴 수 있었다.

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불모지를 개척하다
꿈을 찾아 서울행을 결심한 것이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무렵. 촬영팀의 일원으로 애니메이션 후반 작업을 주로 하면서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접했고, 3D 부서와 클레이 애니메이션 부서가 함께 있는 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더욱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실사화하는 피규어에도 관심이 갔다. 2004년 2월, 그렇게 그는 취미 삼아 피규어 제작에 첫발을 내디뎠다. 굳이 취미라 일컬은 까닭은 당시만 해도 피규어를 만들어 수익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으로 번 돈을 피규어를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국내에는 수요가 거의 없어 피규어 아티스트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드물었다. 재료 하나도 해외에서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던 시절. 요즘이야 블로그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도 피규어와 관련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인형을 만드는 기술이 있는 원형사들조차 노하우를 쉽게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 순간 독학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모작부터 시작했습니다. 피규어로 선보인 적 없는 2D 캐릭터를 주제로 만들기도 했고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완성도가 좀 낮아도 ‘원래 이런 걸 하려고 했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 쉬워요. 하지만 실존 인물을 피규어로 만들면 아무래도 비교 대상이 있으니 ‘이만하면 됐어’ 하고 넘어갈 수가 없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마음이 작업하는 시간을 고생이 아닌 축복으로 여기게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거듭하며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나갔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수준이 되기까지는 무려 3년이 걸렸다. 국내 피규어 아티스트 1세대인 그는 현재 세계적인 피규어 아티스트로 통한다. NBAㆍ나이키 덩키즈, 아메바 후드 시리즈ㆍ이니에스타 등 그의 대표작은 70여 차례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철학보다 실제
피규어 아티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피규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격상 좋아하는 것을 좁고 깊게 파고드는 편”이라 했다. 자기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작품을 확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는 반대로 실존하는 대상을 단순화하는 작업에 더욱 집중해왔다.

“작업하는 사람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세계관을 만들어 그 세계관을 다른 이에게 이해시키는 데 집중하죠. 하지만 저는 세계관이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입니다. 실존 인물이 있으면 그 자체로 작품의 스토리가 형성돼요. 예를 들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 작품의 배경을 충분히 알고 즐길 수 있어요. 혹 농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피규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좋아할 수도 있고요.”

심오한 철학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작품 세계를 마냥 가볍게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스트리트 컬처를 기반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완성도를 높인 그의 작품은 대량생산한 피규어와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취향으로 통하는 전 세계의 친구
글로벌 기업들이 협업을 제안하고, 대외적으로도 명성이 높아졌지만 그를 둘러싼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피규어 시장이 예전에 비해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작품을 소장하고자 하는 이는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피규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틈새를 파고드는 세계다. 그런 만큼 확장성은 떨어져도 안정성은 있다. 희소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헤비 컬렉터들은 경기에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피규어를 수집한다. 공통의 취향은 서로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한다. 자신의 작품을 구매하는 수집가들은 그에게는 ‘친구’나 다름없다.

“저와 수집가들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친구들만 알아볼 수 있는 요소가 있죠. 너무 사소한 요소라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그들은 ‘이 부분을 신경 써서 만들었네’ 하고 대번에 알아보죠.”

올해 그는 전시를 통해 세계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을 소집했다. 이는 2010년부터 시작한 NBA 시리즈 전시 중 세 번째로, 서울에서 최초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전시는 서울에 이어 부산에서 열리고, 이후에는 중국, 태국, 대만 등지에서 6개월간 이어질 예정이다. 누군가는 그가 만든 피규어를 두고 장난감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마니아들에게 그의 작품은 소장 목록 영순위다. 숱한 작업을 해왔지만 그는 아직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확신할 수 없음이 자신 없음은 아니다. 공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수많은 친구가 있기에, 그는 앞으로도 묵묵히 지금껏 걸어온 그 길의 방향을 따라 또 한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피규어(figure) 아티스트 쿨레인

글 정라희, 사진 이성원, 사진 제공 쿨레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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