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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결혼을 말하다
이 시대의 결혼을 말하다
쫓기듯 떠밀리듯 결혼하던 세대
삼촌은 결혼하기가 싫다고 했다. 할머니가 맞선 약속을 잡아놓고 우격다짐으로 나오라 하면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고서는 정작 자리에 안 나타나는 일도 다반사. 그렇게 30대를 보내다가 갑자기 서른아홉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갑내기 여성과 결혼을 했다. 친척 어르신들은 삼촌과 결혼한 여성이 나이가 많은 게 흠이지만(삼촌과 같은 나이인데?) 둘 다 마흔을 안 넘겨 그나마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웬 참견이냐’ 싶겠지만 삼촌이 떠밀리듯 결혼한 해는 20여 년 전으로, 한국 사회에서 연간 혼인 건수가 무려 40만 건을 넘던 때였다. 당시는 1970년 이후 대폭 증가한 인구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설 때로, 한국인구학회 통계를 보면 1990년대 마흔 살 이상 남녀 미혼율은 겨우 1~2%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시절에 주변의 결혼 압박을 견디기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삼촌은 그냥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고 혼자인 생활이 잘 맞는 사람이다. 기타, 낚시, 등산 등의 취미 생활을 하고, 기타를 치며 조카들의 노래 반주도 해주고, 저수지에서 잡아온 붕어로 매운탕도 끓여주는 따뜻하고 재밌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 무렵 삼촌은 ‘노총각’이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마냥 사고뭉치인 듯 취급당했다. 참 억울한 심정이었겠지 싶다. 쫓기듯 결혼한 삼촌의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시대의 결혼을 말하다
세상이 변했다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세상이 달라졌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결혼 안 해도 괜찮다고 보는 사회가 됐다. 평균 초혼 연령이 남녀 모두 30대(남성 32세, 여성 30세)를 넘어서는 만혼 경향에 더해, 혼인 건수는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작년에는 인구 1,000명당 혼인 5.5건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2016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약 절반(51.9%)에 그친다. 국민 2명당 1명이 결혼은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20~30대 젊은이 가운데 전 생애에 걸쳐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는 적극적인 싱글, 이른바 ‘비혼(非婚)’ 인구가 10명 가운데 3명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혼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놓고 경기 침체, 취업난, 인구 감소, 주택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인이 논의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혼인을 둘러싼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급격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주말 가족 드라마에도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려는 남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남녀 주인공은 주중에는 동거를 하고 주말에는 혼자서 혹은 자신의 부모형제와 시간을 보낸다. 전체 가구 중 27%나 차지하게 된 1인 가구가 늘어난 세태를 반영하듯,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생활이나 여행을 다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런가 하면 싱글을 타깃으로 한 이색 창업도 눈에 띈다. 결혼 계획이 없는 싱글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를 빌려주고 웨딩 촬영을 해주는 스튜디오 업체, 벌레 잡기·형광등 교체·막힌 변기 뚫기·음식 대신 사다 주기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안일을 해결해주는 서비스업체도 생겼다.
‘졸혼(卒婚)’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일본의 신조어에서 유래한 졸혼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결혼을 졸업한다’는 것인데,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별거하면서 각자의 삶을 존중하되 정기적으로 만나는 풍속을 뜻한다. 졸혼은 결혼 아니면 이혼으로 나뉘던 기존 혼인 제도에 대한 대안적 부부 관계로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종종 회자된다.
최근에 나는 한 마케팅업체의 설문 조사에 응한 적이 있다. 응답자 특성에 결혼 여부를 묻는 항목이 새로웠다. ‘미혼’, ‘기혼’, ‘비혼’ 가운데 고르게 되어 있었다.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나온 단어 ‘미혼’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앞으로 독신 의사가 있음을 알리는 ‘비혼’이 들어간 것을 보고 변화를 실감했다.

이 시대의 결혼을 말하다
모두가 결혼하던 시대여, 안녕
너나 할 것 없이 결혼하던 시대가 사라지고 혼인율이 낮아지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저출산화, 비혼화 같은 동향을 겪어온 일본은 생애미혼자(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가 2010년에 남성 20%, 여성 10%였다. 남성 5명당 1명, 여성 10명당 1명꼴로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국제 비교 통계를 보면 2010년에 30대 혼인율이 한국은 70%였는데, 같은 시기 유럽이나 미국은 50% 안팎이었다.
산업화 시대는 세계적으로 혼인율이 유례없이 높았던 시기다. 거의 모든 사회 구성원이 결혼하던 산업화 시대에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가정상은 부모와 자식 간, 부부간의 정서적 유대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이었다. 남녀의 이성애로 이뤄진 부부가 보호와 교육의 대상인 아이를 중심으로 성별 분업 체제를 유지하며-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하며 -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피면 모두가 결혼하던 시대는 산업화 고도성장기의 특수한 예, 즉 남성 노동자에게는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임금이 주어졌고 여성에게는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특정 시기에 일어난 특이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남자, 남편과 아이 등 가족을 돌보는 여자, 이렇게 성 역할을 구분하는 결혼 생활은 역사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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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비혼을 택하고 있다
앞서 평생 결혼할 의사가 없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비혼화 경향이 더욱 뚜렷한 것으로 나타난다. 20~3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비혼 의사를 밝힌 이는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도 25~29세 미혼 여성 가운데 결혼을 긍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전체 중 44%, 30~34세는 이보다 더 낮은 35%이다. 이마저도 2년에 한 번씩 조사를 실시할 때마다 그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가사나 육아, 시부모 간병 같은 돌봄 노동이 여전히 아내의 몫으로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맞벌이 가구임에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다섯 배가량 많다. 남편이 육아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거나 함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건에서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엄마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독박육아’다. 육아나 가사 같은 돌봄 노동을 남녀가 평등하게 분담하지 않으면 결국 여성의 사회 복귀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여성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시대의 결혼을 말하다
이제는 누구나 혼자다
솔직히 나는 결혼이 관습이던 시대가 사라져가는 것이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뤄 ‘부부’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된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내몰리듯 결혼한 삼촌 같은 사람이 더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이 남편과 공평하게 육아를 분담하고 그 기쁨과 어려움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사회체제가 정비되면 좋겠다.
최근에 정말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는데 국내의 대표적 인터넷 포털업체가 최근 3년간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온 ‘혼자’라는 단어가 쓰인 약 4억 건의 글을 분석한 결과였다. 2013년까지는 ‘혼자여서 힘들다’가 1위였지만 2014년부터는 ‘혼자라서 좋다’가 1위를 차지했다. 혼자서 시간은 물론 공간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을 많은 이가 차츰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배우자가 있어도 자식이 있어도 부모가 있어도 실은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이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고령화가 더욱 빨리 진행될 사회에서 결혼한 커플도 언젠가는 혼자일 때가 온다.
만일 결혼을 하고 싶다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때 하면 좋지 않을까. 또 만일 결혼 생활에 지쳤다면 잠시 혼자서 시간을 보내거나 ‘졸혼’을 해보면 어떨까. 혼자임에도 밥도 잘 해 먹고 생활도 잘 꾸려갈 때, 혼자여도 자립할 수 있고 둘이어도 여전히 자립할 수 있는 상태일 때, 혼자인 게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타인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소망과 기쁨이 생겨날 때. 그때 누군가를(배우자를) 찾아도(다시 찾아도) 늦지 않다.

글 조승미 (번역가,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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