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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떼창’의 민족,그러나 열정과 매너의 공존을 생각하자
그러나 열정과 매너의 공존을 생각하자
지난 4월 영국의 록 밴드 콜드플레이가 한국을 찾았다. 10만 명의 팬이 그들의 첫 내한 공연에 함께하는 감격을 누렸지만, 콜드플레이 역시 난생처음 접하는 공연 문화에 깜짝 놀랐다. 공연 내내 팬들이 ‘비바 라 비다’, ‘옐로’ 등 히트곡을 줄줄이 따라 부른 것이다. 보컬 크리스 마틴은 “최고의 관객”이라며 극찬했다. 이런 현상은 오아시스, 퍼렐 윌리엄스 등 해외 아티스트의 연이은 내한 공연에서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메탈리카의 공연에서는 기타 솔로 연주까지 높은 수준의 싱크로율로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한국 팬들의 어깨가 으쓱 올라갈 만도 하다.

하지만 이에 모든 이가 박수를 보낸 건 아니다. 공연 이후 여러 팬들이 SNS를 통해 무작정 떼창하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엄청난 예매 경쟁률을 뚫고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라이브 공연을 직접 볼 기회를 잡았는데, 꿈에 그리던 아티스트의 목소리보다 옆 사람의 괴성을 더 많이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큰소리로 따라 부를 만한 노래라면 모를까, 분위기 있는 조용한 노래까지 일일이 따라 부르는 심사는 무엇인가?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뮤지션의 연주를 들으러 갔지, 뮤지션에게 노래를 들려주고자 간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의 떼창은 당연하고 또 장려해야 할 문화일까? 꼭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전성기 해외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이 본격화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만약 초창기에 어떤 아티스트가 떼창을 접하면서 공연에 방해가 되니 자제해달라고 했다면 이런 식의 전곡 떼창 문화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기침 소리조차 편하게 내지 못한다. 오케스트라 연주 중 관객의 휴대폰이 울리자 지휘자가 퇴장해버리는 일도 있었다. 연극이나 발레를 볼 때 휴대폰 속 문자메시지만 확인해도 강렬한 불빛 때문에 관람에 방해가 된다고 주최 측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대형 콘서트장에서의 떼창만큼은 관대한 걸까?

한국인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특히 함께 부르는 걸 즐긴다. 대학이나 직장의 신입 환영회는 왁자지껄한 노래 소리와 어우러지는 게 당연하다. 청평의 MT촌이나 대학가 식당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고래고래 노래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노래방 시설은 도심의 유흥가는 물론 관광버스와 시골 경로당에까지 갖추어져 있다. 보통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목청을 높인다.
떼창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전통과도 이어져 있다. 농경시대에는 ‘강강수월래’와 ‘노동요’를 여러 사람이 함께 불렀다. 해방 후에는 정부 주도로 전 국민이 ‘애국가’와 ‘새마을노래’를 불렀고, 군대에서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군가를 함께 불렀다. 이런 군사 문화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이 당연했다.
떼창은 한국인의 공동체적 정서와 맞닿아 있다. 가사를 외우지 못하고, 함께 노래하지 않으면 팀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인이 떼창의 자부심을 드높인 것은 2002년 FIFA 월드컵 때 ‘오 필승 코리아!’를 소리 높여 부르던 때부터다. 그리고 프로 야구 관람석에서 ‘부산 갈매기’ 등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외국인 선수나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게 큰 감명을 준다고 한다. 그러니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록 콘서트가 스포츠 관람의 형태와 닮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녀시대 같은 걸 그룹의 공연장에서 걸걸한 남성 팬들이 떼창을 하고, EXO의 노래를 소녀 팬들이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는 모습은 한류 붐과 함께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떼창은 분명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떼창을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사실이다. 요즘은 다양한 장르에서 수준 높은 공연이 자주 펼쳐지는데, 그런 만큼 떼창과 반대로 침묵과 집중의 에티켓을 강조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뮤지션 대부분이 떼창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언급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흔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있다. 노엘 갤러거는 한 외국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영어를 모르는 소녀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신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팬덤 속에서의 의사소통 같다. 조직력이 끈끈한 아이돌 팬덤에서는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고 싶은 입장과 떼창을 즐기고 싶은 입장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콘서트 때마다 팬 투표로 떼창곡을 지정하기도 한다. 모든 팬덤이 이렇게 입장을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떼창의 적정한 수준을 논의하는 건 꼭 필요하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두세 곡이나 앙코르 성격의 곡에서 떼창을 제한할 수도 있다. 가수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을 때 목청을 높이는 정도가 맞을 수도 있다. 떼창에 묻힌 작은 목소리들의 다양성을 고민할 때다.


글 이명석(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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