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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화가’가 꿈꾼 이상한 나라의 열대림앙리 루소
앙리 루소앙리 루소, ‘밀림의 폭풍’, 캔버스에 유채, 130×162㎝, 1891,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키 165cm에 턱수염은 길고 무성했으며, 전업 화가였지만 붓질이 서툴렀다. 그래서 다른 화가들의 빼어난 그림 솜씨를 늘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그림으로 살롱전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얼치기 환쟁이’ 정도로 여겼다.
그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를 일컫는 ‘소박파’의 아이콘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다. 묘사에 영 소질이 없었음에도 그가 연출한 낯선 이미지의 세계는 현실을 뛰어넘는 ‘초현실’ 자체였다.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듯이 수수께끼 같은 루소의 그림도 설명하기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초현실주의 등장의 예고편으로 보는가 하면, 그를 초현실주의 미술의 아버지로 대접하기도 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콤플렉스로, 도리어 초현실주의자들의 부러움을 샀을까?

앙리 루소앙리 루소, ‘나, 초상-풍경’, 캔버스에 유채, 143×110㎝, 1890, 프라하 국립미술관 소장
루소는 취미 삼아 일요일에만 붓을 든 전형적인 ‘일요화가’였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파리의 한 세관 사무소에서 수세 관리로 일하던 무렵부터다

세관원에서 전업 화가로
루소는 취미 삼아 일요일에만 붓을 든 전형적인 ‘일요화가’였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파리의 한 세관 사무소에서 수세 관리로 일하던 무렵부터다. 당시 주당 근무시간은 70시간이었지만 그는 휴일이면 어김없이 붓을 들었다. 그렇게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1885년 꿈에도 그리던 살롱전에 처녀 출품한다. 살롱전은 19세기 프랑스 미술아카데미가 창립을 기념해 개최한 전시회로, 당시 아마추어 화가가 제도권 미술계에 진입할 수 있는 최고의 관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낙선을 했다. 크게 실망한 루소는 이듬해 <앵데팡당(Indépendent: 독립)>전에 출품한다. 이번엔 뜻밖에 그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앵데팡당>전에 매번 신작을 발표했다. 1893년 자신감이 생긴 그는 22년간 재직하던 세관 사무소를 그만두고 전업 화가로 나선다.
마흔두 살에 그린 자화상 ‘나, 초상-풍경’(1890)에는 당시 루소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 화실을 배경으로 삼는데, 그는 달랐다. 자신을 파리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세운 것이다. 형식도 야외 풍경과 초상화를 접목한 식이었다. 그림의 배경에는 센 강이 흐르고, 구식 철교와 집들이 있다. 강가에 닻을 내린 유람선에는 만국기가 펄럭인다. 그 중심에 베레모를 쓴 루소가 화폭 가운데 거인처럼 우뚝 선 채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있다. 그것도 그림 도구들이 아주 잘 보이게 말이다.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한 포즈다.

앙리 루소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자’, 캔버스에 유채, 129.5×200.7㎝, 1897
이국적인 열대림의 비밀
루소 작품의 백미로 열대림에서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를 꼽을 수 있다. 한 점을 제외하고는 1904년과 19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열대림’ 연작이 26점이나 된다.
결이 다르지만 ‘잠자는 집시 여자’부터 살펴보면, 1897년 <앵데팡당>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꿈 같기도 하고, 현실 같기도 한 기묘한 세계를 보여준다. 창백한 달빛이 비친 사막 위에 지팡이를 손에 쥔 집시 여자가 만돌린을 옆에 두고 잠들어 있다. 그런데 여자 뒤쪽에 나타난 사자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든 채 여자 쪽으로 얼굴을 들이댄다. 맹수가 옆에 있는 데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히 자고 있다.
집시와 사자를 감싸고 흐르는 기운이 기괴하면서도 평화롭다. 비례가 맞지 않는 형태와 종이 콜라주 같은 낯선 소재의 조합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힘이 있다. 시인 장 콕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회화의 개념을 넘어서 있으며, 회화 그 자체의 존재를 위협한다. (중략) 여기 있는 것은 말하자면 시적(詩的) 회화로, 이야기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열대림’ 연작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뱀을 부리는 여자’(1907)는 보이는 것 이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 신비로운 그림이다.

앙리 루소앙리 루소, ‘해 질 무렵의 열대림’, 캔버스에 유채, 114×162.5㎝, 1907, 독일 바젤 미술관 소장
앙리 루소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캔버스에 유채, 169×189.5㎝, 1907,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초록 잎이 우거진 어둠 속에서 검은 피부의 여자가 피리를 불고 있다. 하늘에는 창백한 달이 떠 있고, 희게 빛나는 강물, 역광을 받은 검은 여자의 모습은 뱀과 더불어 괴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구성은 일정 부분 ‘잠자는 집시 여자’와 통한다. 비현실적인 세계이지만 일일이 그린 잎들의 표현이 너무나 생생한 데다가 기묘해서 한 번 보면 좀체 잊히지 않는다.
열대림은 루소가 만년에 사랑한 작품의 무대였다. 그가 처음 그린 ‘열대림’ 연작은 ‘밀림의 폭풍’(1891)이다. 난데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숲을 흔들고, 하늘에는 번개가 번쩍인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나뭇잎을 찢을 듯이 두드리는 와중에 호랑이가 납작 엎드려 있다. 동적(動的)인 구성과 표현이 눈에 띈다. 이 작품에는 이후 전개되는 ‘열대림’ 연작의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이처럼 ‘열대림’ 연작은 한결같이 인물이나 동물이 그림의 중심을 이룬다.
‘재규어에 습격 당한 흑인’(1910)은 진홍빛 태양이 떠 있고, 갖가지 꽃이 핀 열대림에서 재규어가 흑인을 덮치는 광경이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 ‘이국적 풍경, 고릴라와 인디언의 싸움’(1910)이 있다. 역시나 진홍빛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대림에서 고릴라와 인디언이 한창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영양을 물어뜯고 있는 ‘굶주린 사자’(1907)나 재규어를 물어뜯는 ‘사자의 식사’(1907), ‘물소를 습격한 호랑이’(1908), ‘재규어에게 공격 당하는 말’(1910) 등은 열대림에서 전개되는 동물들의 생사를 포착한 ‘동물의 왕국’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스릴 넘치는 광경임에도 마치 정지 화면 같아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 간 싸움이 잔혹하기보다 평화롭게 느껴진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큼직하고 진하게 그려진 낯선 꽃과 나뭇잎이다. 우거진 수목의 잎이나 밀생(密生)하는 수풀은 형태가 아주 선명하고, 질서 있다.
그런데 루소의 그림에 나오는 이국적인 식물은 자세히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단지 잎을 공들여 그린 특이한 솜씨 덕분에 그림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띨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루소가 한 번도 프랑스를 떠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루소가 정말로 열대림에 다녀온 뒤 그림을 그렸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실감 난다. 또 허풍기 있던 루소가 멕시코 등지의 여행 경험을 떠벌렸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이국적인 식물은 모두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열대식물이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비교적 가까운 아프리카에조차 가본 적 없는 루소는 파리에 앉아서 열대림을 지어낸 것이다. 상상력의 원천은 국립식물원이었다. 루소는 식물원 온실을 산책하면서 영감을 받았고, 그의 마술적인 붓질에 의해 식물들은 열대림으로 거듭났다. 비록 크기, 비례, 원근법 같은 기본적인 미적 원칙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는 잎사귀와 꽃을 자세히 묘사한 후 붓 자국이 눈에 띄지 않게 마무리했다. 그 때문에 어린이 그림 같은 소박한 열대림은 마치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 환상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림 소재는 식물원 외에도 동물원의 동물과 신문이나 잡지의 삽화에서 차용했다.

앙리 루소앙리 루소, ‘야드비가의 꿈’, 캔버스에 유채, 204.5×298.5㎝, 1910,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그림으로 활짝 핀 열대림의 꿈
1910년, 그는 <앵데팡당>전에 마지막으로 ‘야드비가의 꿈’을 출품한다. 역시나 열대림을 그린 풍경화다. 루소 예술의 정점을 찍은 이 작품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열대림에 소파가 놓여 있고, 알몸의 여신 야드비가가 비스듬히 누운 채 정글을 바라본다. 그녀 주위에는 큼직한 꽃들이 피어 있고, 나무에 는 주홍색 오렌지가 매달려 있다. 두 마리의 새와 나뭇가지를 타고 있는 두 마리의 원숭이, 그리고 몸을 숨긴 덩치 큰 코끼리에 사자 두 마리가 눈을 번뜩인다. 보름달이 숲의 어둠을 비추는 가운데 피리를 부는 여자가 서 있다.
‘야드비가의 꿈’, 제목이 상징적이다. 루소 작품 세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열대림이 그에게 싱그러운 꿈의 세계였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사실 열대림은 루소에게 현실 이상으로 생생한 꿈이었다. 이런 시각에는 그럴 만한 일화가 있다.
이 그림에 관해 어느 비평가가 물었다. 왜 정글 한가운데 뜬금없이 긴 의자가 놓여 있냐고. 그러자 루소는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에 “그것은 이 여자가 긴 의자에서 자고 있다가 밀림으로 옮겨진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은 화폭 가득한 꽃이나 동물, 피리 부는 여자 등이 야드비가의 꿈에 나타난 이미지임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잠자는 집시 여자’, ‘뱀을 부리는 여자’, ‘밀림의 폭풍’ 등의 ‘열대림’ 연작은 루소의 꿈의 세계라는 뜻이 된다. 루소는 꿈의 세계가 현실 이상으로 생생한 세계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꿈이 곧 현실이었다. 그는 소재를 사실적으로 그려서 실물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설픈 묘사력 때문에 그림은 오히려 완전한 꿈의 세계가 되었다. 단점이 가장 혁신적인 장점이 된 것이다. 사자를 실감 나게 묘사하기 위해 갈기를 한 올 한 올 그리거나(‘잠자는 집시 여자’)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그렸지만(‘뱀을 부리는 여자’, ‘밀림의 폭풍’, ‘야드비가의 꿈’ 등) 현실에서는 그렇게 세세히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일이 갈기와 나뭇잎을 그렸다는 것은 사자나 밀림이 상상력의 산물임을 입증한다.

앙리 루소앙리 루소,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캔버스에 유채, 146×97㎝,1909, 독일 바젤 미술관 소장
루소의 비상한 재능을 먼저 알아본 것은 피카소와 브라크, 칸딘스키,
시인 아폴리네르 같은 예술가들이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재능
루소의 비상한 재능을 먼저 알아본 것은 피카소와 브라크, 칸딘스키, 시인 아폴리네르 같은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루소가 펼친 소박한 꿈의 세계를 깊이 이해했다. 그것은 불가해하지만 아름다운 한 편의 시였다. 특히 미술사상 전무후무한 경지를 개척한 ‘열대림’ 연작은 비록 표현이 서투르고 소박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었다. 자신의 꿈에 불멸의 조형성을 가미한 루소 덕분에, 우리는 현실에서 신비한 꿈의 세계를 가슴 깊이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루소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림 같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1909년, 예순다섯에 쉰네 살의 레오니에게 반한 루소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마음의 고통은 명을 재촉할 만큼 컸다. 이듬해 9월 2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 불행은 끝이 났다.

글 정민영(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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