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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흉물 사이,공공미술의 위대한 시소 놀이
공공미술의 위대한 시소 놀이
도시 곳곳에 예술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후락한 골목길은 벽화로 단장하고, 오래된 재래시장은 미술관처럼 꾸민다. ‘서울로 7017’, ‘경의선숲길’, ‘부산시민공원’ 등 도심의 낡은 시설을 개조한 재생공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거대한 설치미술 같다. 전국의 관공서와 공공건물에도 지역 특징을 살린 거대한 조각품을 세우는 일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공 미술, 특히 초대형 공공 조형물을 모든 이가 흡족하게 생각할까? 서울로 7017의 ‘슈즈트리’, 강남 코엑스 광장의 ‘강남 스타일-말춤’, 여의도한강공원의 영화 <괴물> 속 돌연변이 괴물 등 적잖은 조형물이 시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예전 서울역 고가가 서울로 7017 공원으로 재탄생해 화제다. 개장 2주만에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것. 그런데 공원 개장을 기념해 세운 대형 설치물 ‘슈즈트리’를 본 시민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는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이 설치물에 인근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역사를 되새기며 서울로 7017이 시민의 발걸음이 모이는 공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심 속 녹색 공원을 기대한 많은 관람객은 ‘쓰레기 신발의 폭포’에 당혹스러워했고, 불결한 냄새가 풍겨나고 비가 오면 더 심해질 거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원래 한시적 전시 작품이었다”는 서울시의 해명과 함께 전시 9일 만에 철거되었다.
만약 폐쇄된 미술관의 설치 조각이었다면 소수 관람객이나 비평가만이 찬반 의견을 내놓았을 것이다. 설혹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해도 “예술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거나 “관람객의 날카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도 미술의 역할이다”라는 정도로 무마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것들이 ‘공공 미술’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낸 세금을 들여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을, 모두가 보는 공공장소에 설치했을까? 이는 ‘안 보면 그만이지’로 끝나지 않는다. 보는 것만으로 불쾌하고 부끄럽다고 여긴다.

스페인 빌바오는 예술을 통해 새 옷을 갈아입은 ‘디자인 도시’를 대표한다. 한물간 철강 산업의 터전이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산뜻한 디자인으로 강과 교통수단을 정비하자, 매해 100만 명이 넘는 예술 애호가가 찾는 도시가 된 것이다. 특히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 자리 잡은 설치 조각 ‘퍼피(Puppy)’는 도시의 아이콘이 되었다.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가 살아 있는 꽃과 풀로 덮인 높이 13m 규모의 강아지 조각을 만들어 세웠는데, 애초에는 개관 기념 설치물이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영구 전시하게 되었다. ‘슈즈트리’ 역시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았다면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았을지 모른다.

대형 공공 설치물은 누구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출퇴근 버스 차창 너머로 바라다보이기도 하고, 공원을 산책하다가 마주치기도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도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기 싫은 흉물이 되기도 한다. 혹 처음에는 따가운 시선을 받더라도 서서히 친근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도쿄 아사히 홀 위에는 ‘황금 불꽃(Flammed'Or)’이라는 거대한 조각이 있다. 유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작품으로, 아사히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횃불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바로 세우면 건축법에 저촉되어 옆으로 눕혀 설치하자 사람들은 이를 ‘황금 똥’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아사히의 오키다 회장조차 “나의 호불호는 노코멘트”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별명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지금은 아사히를 상징하는 유머러스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공공 미술에 대한 이런 고민은 비단 우리만 하지 않는다. 뉴욕에서는 건축가, 예술가, 시민, 자치단체장 등이 함께하는 ‘뉴욕 공공디자인 위원회’가 모든 공공 예술품과 기념물 설치를 검토한다. 영국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는 ‘저게 뭐야(What’s That Thing?)’ 상을 만들어 그해 세워진 공공 조형물 중 최악의 작품을 선정해 망신을 준다. 국내에서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이런 고민을 적극 해결하고자 한다.
이 단체는 전국 지자체가 세우기만 하고 사후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 공공 미술품에 새로운 운명을 제안한다. 한시적으로 설치한 뒤 반응에 따라 철거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낡거나 의미를 잃은 경우 보수할 수도 있고, 더 적절한 위치로 옮길 수도 있다. ‘영원히 그곳에’라는 조형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것이다.

최근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조각상들의 다툼이 큰 이슈가 되었다. 오랫동안 증권가의 상징이었던 ‘황소’ 조각상 앞에 이에 대적할 만한 ‘겁없는 소녀’가 세워진 것이다. 시민들이 열광적 반응을 보이자 뉴욕시는 당초 일주일로 정했던 설치 기간을 1년으로 연장했다. 그러자 원래 ‘황소’를 만든 조각가가 항의하고 나섰고, ‘겁 없는 소녀’의 발치에 오줌을 누는 강아지 조각을 세우기도 했다. 뉴욕 시민들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이것이 바로 공공장소에 설치된 예술품의 시소 같은 운명이다.


글 이명석(문화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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