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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밝히다, 길을 달리다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
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
조명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뉴라이트전자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전자를 안다면 윤병천 회장을 모르는 이 또한 찾기 힘들 것이다.
1970년대 어두컴컴하던 대한민국에 고품질의 빛을 밝히고 다시 그 빛으로 세상을 디자인해온 남자,
지금은 바이크 라이프로 다시금 자신의 삶을 가속하고 있는 윤병천 회장을 IBK기업은행에서 만나보았다.

시골 소년, 빛을 만나다
이야기에 앞서 먼저 밝혀야겠다. 1942년생인 윤병천 회장은 올해로 76세다. 뉴라이트전자를 만들어 대한민국 조명계의 새 역사를 쓰고, 바이크 수입사인 모토쿼드를 세웠으며, 국내에서 손꼽히는 1세대 바이크 레이서이기도 한 그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세월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나이임이 틀림없다.
윤병천 회장이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에서 상경한 것은 18세 때다. 양손에 어머니가 싸 주신 고추장 단지를 하나씩 들고 기차를 갈아타면서 10시간이나 걸려 서울에서 공부하는 형님을 찾아온 것이었다. 막 상경하여 서울에서의 기회를 고대하던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를 청소하고 세탁소 일을 거들면서 열심히 산동네 판자촌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동네의 한 사모님이 “세 아이의 등하교를 도와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그는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아이들의 등하교를 책임졌고, 세 아이는 동네 형이자 오빠인 그가 나타나면 저 멀리에서 달려와 가슴에 폭 안기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집 바깥양반이 우리나라 조명의 선구자이신 장병갑 박사였습니다. 국일방전관연구소를 운영하며 당시 우리나라에선 미개척 분야였던 전구를 연구ㆍ개발해 생산 공장에 기술을 전수하는 일을 하셨죠.”
성실하고 근면한 그는 국일방전관연구소에 조수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윤병천 회장은 조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전기가 부족하던 시절, 새벽 2시나 돼야 전기가 들어오던 국일방전관연구소에서 밤새워 일하면서 전구에 관한 모든 기술을 체득한 그는 10년 뒤 독립해 뉴라이트조명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렇게 5~6년동안 전구 공장을 운영하던 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부에서 공산품 37개 품목에 안전 인증 표시를 하게 했죠. 정부의 인증을 받으려면 시설 기준, 검사 기준 등에 맞춰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는데, 당시로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이었어요.”
대기업에 공장을 넘긴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뉴라이트전자를 세웠다.
“왜 만들었냐고요? 당시 제가 만든 전구 가격은 개당 25원이었어요. 그런데 장식적인 조명 기구는 100만원이 넘었습니다. 전구를 끼워서 프레임까지 형태를 만들어낸 조명 기구는 단가가 25원이 아니라 2,500원, 2만5,000원으로 올라갔으니까요. 부가가치가 큰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
대한민국 조명 발전의 축을 세우다
당시 형광등도 겨우 만들던, 조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뉴라이트전자의 발전과 더불어 조명 기술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능 조명과 장식 조명으로 분야가 양분되었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디자인, 기획 설계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만큼이나 조명 디자인 역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불과 50년 사이에 천지가 개벽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더 라움, 제주 오설록, 영등포 타임스퀘어, 해외명품 브랜드의 쇼룸, 신라호텔 등 내로라하는 굵직한 건물을 지은 건축업체는 모두 뉴라이트전자를 찾았다.
“뉴라이트전자에는 영업부가 없습니다. 영업을 안 해요. 광고도 하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일 중에서도 하고 싶은 것만 했습니다. 오로지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고객을 대했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죠. 막내아들을 미국 조명학교에 보내 공부시키고, 현지 조명 회사에서 5년간 근무하게 한 것도 시대적 요구와 수준을 이끌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윤승현 대표가 뉴라이트전자를 잘 운영하고 있지요.”
뉴라이트전자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까지 진출하는 동안 국내 경제는 여러 차례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뉴라이트전자는 건재했다. 판을 키워 많은 돈을 벌겠다는 야망보다는 ‘내 직업이니만큼 영원히 해야 하니까 큰 욕심 없이 착실하고 성실히 운영해야겠다’는 윤 회장의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바이크는 언제부터 타기 시작했냐고요? 뉴라이트전자에서 일할 때부터입니다.”
그가 껄껄 웃었다. 지금 윤 회장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크는 뉴라이트전자를 운영하느라 한창 바쁘던 때부터 타기 시작한 ‘교통수단’이다. 공장으로 공사 현장으로 동분서주해야 했던 그에게 자동차는 너무 크고 느렸던 것.
“그 시절엔 일본의 중고 바이크를 고쳐서 타고 다녔어요. 하지만 바이크 기술이 발전하면서 무제한 스피드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점차 그 스피드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인 윤수녕 대표 또한 대학생 시절부터 바이크의 매력에 심취해 퇴계로 바이크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결국 부자(父子)는 바이크 수입업체 모토쿼드를 설립했다.
“모토쿼드는 단순히 바이크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바이크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 제대로 탈 수 있도록 교육도 하는 회사예요. 바이크를 타기에 앞서 이론과 실기, 스피드 등을 세심하게 가르치는거지요. 강원도 인제군과 MOU를 맺어 모터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바이크 인구 양산과 안전한 바이크 문화를 만들기 위해 현재 윤수녕 대표가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윤병천 회장은 바이크를 타고 멤버들과 함께 유럽, 페루, 터키 등지를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피드 외에도 가족 같고 형제 같은 사람들과 함께 바이크를 타는 즐거움을 아주 행복한 얼굴로 풀어주기도 했다.

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IBK기업은행 대학로지점 김병재 지점장과 윤병천 회장
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

바이크 레이서, 영원한 도전을 꿈꾸다
‘조명과 바이크 그리고 사람’은 윤병천 회장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중 기업은행의 제14대 행장이었던 안승철 전 행장과 맺은 인연은 윤 회장의 삶에 더더군다나 빼놓을 수 없는 큰 조각이다.
“뉴라이트전자가 동숭동에 자리하고 있던 시절, 안승철 행장님과 저는 동숭동 반상회 멤버였습니다. 뉴라이트전자를 운영하며 번 돈으로 회사 옆에 집을 하나 짓고 있었는데, 안승철 행장님이 지나가다가 ‘거기에 은행이나 하나 만들지?’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동숭동에 처음으로 기업은행 출장소가 생겼지요. 그 덕분에 저는 대학로지점 1번 고객이 됐고, 나중에는 기업은행 명예지점장까지 됐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가 수출입 업무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로지점이 처음으로 외환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했지요."
오늘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IBK기업은행 대학로지점 김병재 지점장에게 윤병천 회장은 IBK기업은행을 사랑하는 1등 고객이자 인간적으로도 존경과 감사를 갖게 하는 진정성 가득한 고객이다.
“기업은행 직원보다 기업은행을 더 사랑하는 고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넓은 인맥을 통해 신규 고객을 소개해주시고 꼭 기업은행과 거래하라고 당부까지 해주시니 저로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고마우신 분이시죠.”
고객으로서의 권리도 있지만 책임 또한 있다며 IBK기업은행과의 거래에서 늘 균형과 적정선을 지키려 한다는 윤병천 회장의 말에 김병재 지점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윤병천 회장은 지금도 몇 시에 잠자리에 들든 새벽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기상한다. 헬스장에 가서 2시간을 꼬박 운동한 다음, 대학로에 있는 뉴라이트전자와 청담동에 있는 모토쿼드를 찾아 업무를 살핀 뒤, 사람들을 만나고 바이크 멤버들과 투어를 위한 계획을 짜는 그의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규칙적이고 치열하다.
“저는 어떠한 도전에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되지않겠나, 오직 그 신념으로만 걸어왔지요. 성공 노하우요? 성실함, 그게 제가 삶을 살아온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에게 성실함은 일을 넘어 바이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함께 달리는 이들을 위한 매너와 배려가 온전히 몸의 일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바이크에 오르기 때문이다. 후배 바이크 레이서들에게 이제는 ‘저 멀리서 달아나는, 꼭 잡고 싶은 목표’가 되어버린 윤병천 회장. 그는 빛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고, 두 바퀴로 달림으로써 여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영원한 챌린저다.

뉴라이트전자 윤병천 회장윤병천 회장과 모토쿼드 윤수녕 대표
글 이경희, 사진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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