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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고 잇고 꿰매어 만든 나의 이야기제미영 작가
제미영 작가
예술에서 ‘최초’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태초에 최초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현재를 누리며 살지만, 시대를 앞서가고 후손에게 영감을 주는 ‘최초의 예술’, ‘창시자’는 때로는 만인에게 박수를 받거나 때로는 군중 속에서 처절한 외로움을 운명처럼 끌어안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전통 조각보 방식을 활용한 ‘바느질 콜라주’ 작품으로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제미영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넘치게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제미영 작가
단원미술제 대상 수상자가 되다작은 부동산 사무실, 온갖 과일이며 채소를 내놓고 파는 마트,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버스와 자동차들이 오가며 내는 굉음…. 제미영 작가의 작업실은 생활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는 마포구의 어느 작은 건물 3층에 위치해 있었다. 화사한 빛깔의 꽃과 나무, 겹겹이 쌓아 올린 빌라와 호젓한 한옥, 평범한 집 등 거리 풍경이 주를 이루는 그녀의 작품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풍경 속을 뚫고 달려 나온 건 입꼬리가 귀에까지 올라가도록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제미영 작가다.
제미영 작가는 조각보를 바느질해 콜라주 기법으로 작품을 만드는 우리 시대의 유일한 작가다. 2016년 단원미술제 선정작가 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해 세간의 뜨거운 주목을 받은 그에게는 ‘최초’,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헌사처럼 따라붙지만, 정작 마주한 그녀는 그저 편안하고 소탈하고 행복한 미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평범한 느낌의 작가다.

제미영 작가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전국 규모 작가 공모전에서 최고 금액인 3,000만 원의 상금을 획득했다’라는 세간의 관심을 그대로 이어받아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작업실 전체를 손으로 가리킨다. “여기가 그 상금의 결과예요. 하하.” 에어컨도 없고 널찍하지도 않은 작업실이지만 더없이 자랑스럽고 뿌듯해하는 그녀의 얼굴이 공간을 꽉 채우자 돌연 그곳에 생동감이 감돈다.
제미영 작가는 단원미술제 대상 수상을 놓고 “정말 운이 좋았다”고 몇 번이나 소회를 밝혔다. 쟁쟁한 작가들이 워낙 많이 참여한 상황에서 공모전 도전이 처음이었던 그녀에게 ‘대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 ‘대상’이라는 전화를 받고 한참을 오열했다는 제미영 작가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보석처럼 소중하게 꺼내들며 기뻐했다.
“내가 하는 작업이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 들었어요. 바느질 콜라주 작품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액자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 작업을 확인하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뜻밖에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아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저와 그리고 남편이었어요.”

제미영 작가‘가화(家花)’, 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콜라주, 91x65cm, 2016
우연이 겹쳐 운명의 작품을 만들다유치원 때부터 그림을 시작해 서양화와 동양화를 공부하며 평생 그림을 그려온 제미영 작가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밖을 나선 순간부터 그녀에게 그림은 거대한 숙제이자 혼돈의 대상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전시회는 동양화와 서양화를 접목하는 방식의 작품을 선보였어요. 그런데 화가로서 자립을 하고 보니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작품, 너무나 많은 작가가 있더라고요. 엄청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고… 제가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정말 막막한 시기였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은 넓고 재능은 넘쳤다.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획도 가득했다.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고, 먹고살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 앞에서 제미영 작가는 무력함을 느꼈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많이 방황했다고 고백한다.

제미영 작가‘가화(家花)’, 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콜라주, 65cmx91cm, 2017
당연한 말이지만 삶은 수학이 아니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처럼 답이 똑 떨어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구하는 답이 예술의 범주 안에 있다면 그 해답은 더더욱 찾기가 쉽지 않다. 제미영 작가는 자신이 조각보 콜라주 작업을 시작한 배경으로 참 많은 삶의 편린을 꺼내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길을 걷도록 만든 그것은 ‘우연’이었고, 우연이 계속되자 다시 ‘운명’처럼 바로 옆에 질기게 눌러앉은 것이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꽃집을 운영하셨어요. 지금도 여전히 부산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계시고요. 주변 풍경은 모두 바뀌었지만 꽃집은 그대로니, 제게는 여전히 중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돼요.”
문득 뒤쪽에 놓인 제미영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조각보만큼이나 곱디고운 색깔의 벚꽃, 지금이라도 당장 꽃잎을 떨어뜨릴 듯한 목련,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나무들.
“언니가 고전무용을 했어요. 어릴 적부터 언니가 대회나 공연에 참가하면 따라 가서 한복도 다려주고 구경도 했죠. 그래서 한복은 제게 참 익숙한 옷이에요.”
노방, 옥사, 인견…. 나비처럼 가볍게, 나무처럼 강단 있게 그녀의 캔버스를 수놓고 있는 조각보들이 또 눈에 들어와 박힌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를 만나기 위해 공방에 함께 다니던 한 달간의 바느질 이야기도 그녀의 과거 윗자락에 덧붙여져 촘촘히 꿰매어진다.

제미영 작가
그냥 잘해나가고 싶다세상 어느 작품이 쉽겠냐마는 그녀의 조각보 바느질 콜라주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료 준비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에 얼마나 걸리는지 저도 처음에는 가늠하기 힘들었어요. 버리는 넥타이, 입지 않는 한복을 선물 받거나 직접 구입한 천을 자르고 꿰매고 다림질하고 하늘하늘한 천을 탄탄히 유지하기 위해 한지를 덧대는 배접 작업을 하지요. 누군가는 재봉틀로 드르륵 박지 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느냐고 하지만, 제게는 그 과정 자체가 무(無)로 돌아가는 중요한 시간이에요. 그리고 캔버스에 피스별로 붙이는 거지요. 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붙이고 떼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배경 작업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변화했어요. 한지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지요.”
제미영 작가는 처음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에 걸 때는 “내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을 관람객이 그냥 편안하게 감상하고 색이나 바느질, 메시지 등 무엇이든 다양하게 해석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조각보 바느질 콜라주 작품을 최초로 공개한 게 저의 세 번째 개인전 때였어요. 그때 옆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분이 은퇴한 미술교사셨는데, 정말 많은 제자가 찾아와주었거든요. 다들 온 김에 제 전시회에도 들르셨는데 그중 한 분이 조각보 바느질과 그림을 결합한 제 작품을 보면서 저를 찾더니 다짜고짜 손을 덥석 잡으시더라고요.”
머리가 희끗한 그 관람객은 제 작가의 손을 꼭 잡은 채 “이 손도 중요하고 눈도 중요하다. 아껴서 오래도록 작품 활동을 하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미영 작가는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고백한다.

제미영 작가
“앞으로의 꿈요? 그냥 잘해나가고 싶어요. 아주 잘요. 계속해서 잘해나가고 싶어요.”
그녀의 작업실 한구석에는 서태지 9집 앨범에 실린 소녀의 벽화가 그려진 집 한 채가 그림 속에 서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소격동의 벽화지만 제미영 작가의 작품 안에 고스란히 살아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얼굴…. 그 작품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게 될 제미영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꿈꿔본다. 제미영 작가에게 조각보 바느질 콜라주 작업은 ‘최초’가 아니라 ‘최후’까지 함께할 대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글 이경희, 사진 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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