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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키 열풍’에서 무엇을 보는가
당신은 ‘하루키 열풍’에서 무엇을 보는가
‘하루키 열풍’이다. 7월에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새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가
올여름 말 그대로 국내 서점가를 휩쓸었다. 초판만 한꺼번에 30만 부를 찍었고,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좀처럼 양보하지 않으면서 출간 3주 만에 50만 부까지 출간했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더위가 계속된 여름에도 이랬으니, 가을에도 그 열풍은 이어질 것이다. 7년 전 출간된 그의 작품 <1Q84>의 ‘8개월 만에 100만 부 출간’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 덩달아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전작까지 덩달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니 국내 출판사들이 판권을 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정확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1Q84>의 두 배인 ‘선(先)인세 20억 원’이라는 놀라운 기록까지 세울 수밖에. 문학도, 출판도 ‘장사’라면 할 말은 없지만 1년에 1억 원 벌기도 어려워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출판사가 즐비하고, 문학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담는 것임을 생각하면 한편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하루키도 알고 있다. 한국에 수십만 ‘하루키스트’가 변함없는 팬덤을 형성하며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열광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출간 일정에 맞춰 “오랜 세월 제 책을 변함없이 열심히 읽어주신 한국 독자들에게는 늘 각별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 고마움이 문학성에 대한 평가인지, 상업성에 대한 고마움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로서는 진심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아가 미국과 유럽에서까지 ‘스타’가 되어 해마다 노벨 문학상 단골 후보로 오르는 하루키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엇갈린다.

그의 소설은 온갖 동물부터 상상의 세계,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현실과 관념의 세계가 아무런 경계 없이 뒤섞이고, 과거와 현재는 운명적으로 연결된다. 이성과 감정을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리듬 있게 끌고 가는 구성으로 독자로 하여금 독특한 맛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일본적이면서도 탈일본적인 색채를 덧씌워 따뜻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것도 그대로다.

하루키 문학의 완결판이라는 <기사단장 죽이기>도 마찬가지다. 비밀을 간직한 그림 한 점, 그리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와 주변 인물들, 이데아라는 상징적 존재, 나치와 일본군 만행, 집요하게 등장하는 음악과 섹스, 음식과 술이 있다. 이런 것이 하루키의 바람대로 그의 소설이 ‘읽는 이마다 다르게, 되풀이해 읽을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 문학계로서는 이런 그가 달갑지 않다. 그래서 대중의 취향에 영합해 자신만의 감상적 코드로 상업성을 달성하는 작가, 탈역사화의 오류에 빠져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결여된 피상적인 작가,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독자들의 교양적·물질적·지적·감성적 허영심을 두루 자극하는 대중 작가라고 비판한다.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는 있지만 그의 소설은 다분히 일본적 감상주의이며, 독자들의 교양적·물질적·지적·감성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통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통할 만한 매력적인 소재와 세련된 감각도 대중문화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과 숙명적 고리로 연결된 우리로서는 그의 탈(脫)역사, 망(忘)역사적 인식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루키 문학을 ‘과대평가’된 대중문화의 세계화쯤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하이고 피해의식이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시대에 이미 2005년에 <뉴욕 타임스>가 ‘올해의 책 10’으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선정하면서 아시아 최초로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한 그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은 옹졸하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희미해진 시대에 둘 사이에 선을 긋는 일 역시 시대를 읽지 못함을 자인하는 일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순수문학의 정신과 품격을 버리지 않으면서 대중적 재미도 있는 ‘중간 문학(middlebrow literature)’쯤 된다. 여기에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추리소설이면 어떻고, 공상과학소설이면 어떤가. 단순한 지적 허영이나 기교, 말초적 자극만이 아닌 나름대로 내면화와 통찰력을 가지고 현실을 반추할 수 있는 이야기이면 그냥 ‘문학’이 된다.

하루키는 그런 이야기만이 시간과 공간, 언어나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 힘으로 하루키는 일본이라는 땅을 버리지 않고서도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면서 전 세계인과 호흡하고 있다.

한국에서 ‘하루키 열풍’은 그의 소설 속 표현 방식을 빌리면 ‘명백한 실재이고 현상’이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외면하거나 부러워만 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작가도, 독자도 편견과 낡은 사고의 틀과 맹목적 탐닉에서 벗어나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더 자유롭고 너그러우며, 그런 작품을 존중하고 아낀다면 우리 문학의 토양도 더 풍성해지고, 독서의 폭과 깊이 역시 더 넓고 깊어질 것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대박 영화에는 반드시 그럴만 한 이유가 있듯이, ‘하루키 열풍’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아마 우리의 많은 젊은 작가와 독자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하루키 열풍’에서 무엇을 보는가



글 이대현
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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