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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 모네의맛있는 식탁
맛있는 식탁모네, ‘과일 타르트’, 캔버스에 유채, 65.5×81.5㎝, 1882
모네는 화가이기 이전에 미식가였다! ‘인상, 해돋이’(1872)로 인상주의의 문을 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그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빛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작품 세계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네는 생전에 마음껏 먹고 마시며 미식가로서의 삶을 만끽했다. 그의 작품 중 음식과 연관된 그림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침식사’, ‘점심식사’, ‘풀밭 위의 점심’, ‘과일 타르트’,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들’, ‘쇠고기가 있는 정물’, ‘멜론이 있는 정물’, ‘포도 바구니’ 등 음식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그림이 한둘이 아니다. 직접 요리를 한 화가 제임스 휘슬러나 귀스타브 쿠르베와 달리 모네는 직접 요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섬세한 미각을 갖춘 입맛만큼은 누구보다 예민했다. 그는 알자스 지방에서 생산된 품질 좋은 식재료를 고집했고, 페리고르 송로를 최고로 쳤다. 생선은 정원 연못에서 기른 곤들매기를 즐겨 먹었다. 음식에 대한 취향과 생각의 일단을 보여주는 음식 관련 그림은 대식가이자 미식가로서 모네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맛있는 식탁모네, ‘풀밭 위의 점심’(가운데 부분), 캔버스에 유채, 218×248㎝, 1865~1866,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지베르니 정원은 최고의 친환경 경작지그렇다고 모네가 젊은 시절부터 풍족한 먹거리를 즐긴 것은 아니다. 인생 후반기에 풍요와 명성을 누리기 전까지 모네는 오랜 세월 가난에 시달렸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때로는 빵을 살 돈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삶을 계획하고 실현하기란 불가능했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중년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궁핍한 시절을 함께한 첫 번째 부인 카미유 동시외가 병으로 일찍 죽고(1879), 미식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은 두 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와 살면서부터다.
두 아들을 둔 모네와 여섯 아이를 둔 오슈데 부인이 한적한 지베르니에 정착한 것은 1883년 4월 말이었다. 당시 마흔세 살이던 모네는 1926년 세상을 뜰 때까지 반평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꽃이 만발한 정원과 수련이 핀 연못을 아낌없이 그렸다.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낳은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식탁에 올릴 수 있게 한 친환경 경작지이기도 했다. 그는 이 정원에서 과일과 채소, 오리와 닭, 물고기 등을 직접 가꾸고 키웠다. 음식에 대한 모네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체적으로 만든 것은 오슈데였다. 모네와 오슈데는 지베르니 정원에서 나는 채소와 고기로 사용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겠다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야심이 없었다. 그래서 주방에는 여러 명의 요리사가 있었고, 사냥감과 생선을 잡아 오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다.

맛있는 식탁모네, ‘점심식사’, 캔버스에 유채, 203×162㎝, 1873년경,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모네는 미식가답게 음식에 까다로웠다. 마음에 드는 씨암탉이나 씨오리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여러 곳의 조류 상점과 사육장을 돌아다닐 정도였다. 부엌 바로 옆에 마련한 축사에서는 서너 종의 암탉을 키웠다. 알과 고기가 모두 뛰어난 우당종 암탉, 외모가 근사한 카티네즈 암탉, 살코기가 많은 검은색 브레스 암탉 등이 그것이다. 그의 식탁에는 반드시 신선한 채소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숙련된 정원사는 돼지감자, 그린 아티초크, 적양배추, 두루미냉이, 쪽파, 로메인 상추 등의 채소를 가꾸었다. 파리에 다녀오거나 하면 종종 요리사에게 새로운 요리법을 알려주며 완벽하게 재현하게 했다. 시금치는 맛과 색이 변하지 않도록 살짝 데쳐야 했고, 그물버섯 종류는 올리브유에 볶아야 했다. 모네는 뒤랑-뤼엘이나 베른하임 같은 거물 화상(畵商)을 초대할 때마다 지베르니 정원에서 키운 식자재를 총동원해 융숭하게 대접했다. 이런 대접 덕분인지, 모네는 계속해서 그림을 고가에 팔 수 있었다.

맛있는 식탁‘에크르비스 버터 닭’ 요리법이 적혀 있는 페이지가 펼쳐진 모네의 요리 수첩.
음식 외에 식기도 꼼꼼히 챙겼다. 식탁보는 언제나 노란색이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식기는 두 종류만 사용했다. 평소에는 크레유 상회에서 구한 일본 식기 세트를 썼다. 벚나무 무늬와 군청색 부챗살 무늬 위에 유약을 바른 푸르스름한 사기 그릇. 파티를 열거나 귀빈을 대접할 때는 노란색 테두리에 파란색 그물무늬가 장식된 흰색 사기 접시를 썼다. 화병에는 언제나 정원이나 온실에서 따 온 꽃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네의 이런 취향 덕분에, 그의 집에는 수많은 친척과 지인이 드나들었다. 그럼에도 오슈데는 안주인으로서 산더미 같은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모네의 기분을 맞춰가며 8명의 아이를 챙겼고, 모네와 상의하여 일주일 전에 한 주 동안의 식단을 짜는가 하면, 장 볼 물건의 목록을 작성했다. 초대한 손님의 입맛을 일일이 적어두었고, 요리사와 의논하여 채소밭에서 어떤 채소를 가져올지를 정했다. 오슈데는 모네의 식도락을 뒷받침한 솜씨 좋은 살림꾼이었다.

맛있는 식탁모네, ‘멜론이 있는 정물’, 캔버스에 유채, 53×73㎝, 1876, 리스본 굴벤키안 미술관 소장
모네, 먹고 마시고 그리다모네는 자연 속에 있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 살롱전에 출품하기 위해 그리다가 중단한 ‘풀밭 위의 점심’(1865~1866)도 그중 하나다. 퐁텐블로 근처 샤이를 찾은 소풍객들의 우아한 한때를 포착한 그림은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과 검은색과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실물 크기로 서거나 앉아 있다.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 듯, 그림의 중심에는 흰 식탁보가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소풍을 위해 준비한 과일과 빵, 닭고기, 파이와 포도주 등의 음식과 냅킨, 접시가 놓여 있다. 햇살이 화사하게 비치는 이 부분만으로도 한 폭의 정물화가 될 만큼 짜임새가 두드러진다. 만약 이 그림에서 음식이 빠졌다면, 야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는 여가의 풍요로움은 크게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품으로 등장하는 음식의 역할은 매우 크다. 캔버스 가운데 앉아 접시를 건네는 여인은 바로 열여덟 살의 카미유고, 그녀 곁에 있는 콧수염을 한 남자는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쿠르베다. 이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1863)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데, 누드의 여인이 앉아 있는 마네의 그림과 달리 각각의 인물은 모두 산뜻하고 우아하게 차려입었다. 크기도 주목된다. 모네는 대형 캔버스를 사용하여, 여가를 즐기는 부르주아의 일상을 보란 듯이 미술의 주제로 격상시켰다. 스물다섯 살 모네의 야심이 담긴 이 그림은 한동안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가 습기 탓에 결국 세 조각으로 분리되었고, 현재는 두 조각만 남아 있다.

맛있는 식탁모네, ‘아침식사’, 캔버스에 유채, 1868, 프랑크푸르트 슈타트인스티튜트 소장
역시나 자연 속의 인물을 그린 ‘점심식사’(1873)는 빛으로 가득 찬 그림이다. 1871년, 파리를 벗어나 아르장퇴유에 온 모네가 머물고 있던 집의 정원을 그렸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꽃으로 가꾼 화려한 꽃밭이 분위기를 밝게 한다. 어린 아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고 있고, 뒤쪽에는 카미유와 그의 지인이 뜰을 거닐고 있다. 풍성한 꽃과 무성한 나뭇잎과 대조를 이루는 의상, 순백의 식탁보, 차와 과일을 나르는 티 트롤리, 식탁 위의 과일과 세련된 커피포트 등 전원생활의 멋이 넘친다. 식탁에는 식사를 끝내고 차와 와인을 마신 흔적이 남아 있다. 생활은 힘들었지만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행복했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네가 행복했던 순간을 표현한 정물화로, ‘과일 타르트’(1882)가 있다. 과일 타르트 2개와 시럽이 담긴 병, 칼이 균형 있게 배치된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먹음직스럽다. 이 작품에는 사연이 있다. 1882년 초, 모네는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이때 ‘과일 타르트가 유명한 집’이라는 상호가 붙은 폴 영감의 식당 겸 호텔에 투숙한다. 작업은 순조로웠고, 폴 영감의 환대 속에 그는 행복의 절정을 맛본다. 모네는 그때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명성이 자자한 과일 타르트를 아주 입맛 당기게 그렸다. 그것도 여느 풍경화와 달리 형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인상주의 특유의 빛의 효과도 꾀하지 않았고, 인상주의 그림에 나타나는 형태의 모호함도 없다. 그저 즐거웠던 한순간이 비교적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모네는 인심 좋은 곳에서 체감한 행복한 추억을 이 그림과 함께 오래 간직했다.

맛있는 식탁모네, ‘일본식 다리(수련 연못)’, 캔버스에 유채, 88×92㎝, 1899
‘쇠고기가 있는 정물’(1864년경)은 19세기 중반 하층민의 음식으로 통하는 스위스 스테이크용 쇠고기가 주인공이다. 붉은 쇠고기를 중심으로 오른쪽 앞에는 맛을 내기 위한 마늘이 있고, 왼쪽 뒤에는 조리용으로 쓸 맥주가 담긴 도자기 잔이 놓여 있다. 어둡고 거친 느낌을 준다. 사실주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주의는 추하고 평범한 묘사를 추구한 19세기 예술 사조. 쿠르베가 농부들이 실제로 접하는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흙이 묻은 사과를 그렸듯이, 모네도 값싸고 질긴 국거리 고기를 그렸다. 모네는 자신이 먹었음직한,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먹거리를 통해 돈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던 시절의 어두운 면을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조류 그림도 눈길을 끈다. ‘꿩’(1880)은 까투리와 장끼가 두 마리씩 식탁에 놓여 있는 정물화다. 꿩들의 늘어진 모습에서 당시 모네의 초상이 겹친다. 이 그림을 제작할 시기를 전후하여 모네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끝없는 생활고와 카미유의 죽음, 예술계와의 마찰, 유부녀인 오데슈와의 추문 등에 시달렸다. 모네는 이런 고통을 잊기 위해 정물화에 몰두했다. 꽃과 과일 외에 겨울 사냥감인 꿩을 소재로 붓을 들었다. 모네는 이 그림에서도 풍경화를 그릴 때처럼 꿩 깃털의 다채로운 빛깔을 관찰하며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캔버스에 옮겼다. 모네는 훗날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식탁에 곧잘 꿩 요리를 올렸다.
‘멜론이 있는 정물’(1876)은 파란색 무늬의 도자기를 배경으로 멜론과 포도, 복숭아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화폭 속의 과일을 상징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의미심장한 그림이 된다. 과육과 과즙이 풍부한 멜론은 기독교적 의미로는 지상의 기쁨과 육신의 행복을 뜻한다. 포도는 인간의 영적인 요구와 관련되고, 왼쪽의 복숭아는 구원의 희망을 상징한다. 평범한 과일 정물화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네가 이런 의미를 표현하고자 이 과일들을 그렸는지, 아니면 단순히 먹거리로 그렸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가 인상주의 화가로서 부르주아의 일상을 포착하거나 빛과 사물의 한순간을 그렸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맛있는 식탁모네, ‘인상, 해돋이’, 캔버스에 유채, 48×63㎝, 1873
최후의 인상주의자이자 식도락가모네는 예술가로서 인상주의를 탄생시킨 주역이자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상주의 신념에 충실했던 진정한 인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는 먹는 것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식도락가였다. 화가로 인정받지 못해서 벌이가 시원찮았던 시절에도 요리사를 2명이나 두었을 정도로 먹는 즐거움을 좇았다. 직접 메모한 요리 수첩을 남기기도 한 모네는 맛있지 않으면 음식이 아니고, 음식은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네의 작품들 역시 일급 요리사가 만든 요리처럼 빛과 색채의 진수성찬이었다. 모네가 남긴 음식 그림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미식가로서 그의 면모를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글 정민영(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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