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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가을 축제, 만족 하십니까?
우리 동네 가을 축제, 만족 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짧은, 프랑스 시인 르나르의 시(詩) ‘뱀’의 전문은 이렇다. ‘너무 길다’. 이에 빗대어 말하면 ‘정말 많다’. 산에서도, 강가에서도, 항구에서도, 공원과 광장에서도, 고궁에서도, 대학 캠퍼스에서도, 작은 동네 골목에서도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다. 방방곡곡이 축제다.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문밖만 나서면 자연과 사람, 다양한 예술과 역사, 갖가지 공연과 음식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곳을 만난다. 동네 잔치까지 합하면 1만 개, 그중 제법 그럴싸한 것만 2,000개가 넘고, 또 그중 절반이 가을에 열리니 가을은 그야말로 ‘축제의 계절’이다. 봄 축제의 주인공이 새로운 탄생과 출발의 환희를 상징하는 푸른 자연과 꽃이라면, 가을 축제의 주인공은 결실과 단풍이다.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마을마다 수확한 풍성한 특산물로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풍요로운 내일을 기원한다. 와인과 국악이 어우러지기도 하고, 치즈와 한옥 마을이 함께하기도 하고, 북과 북(book)이 만나기도 한다.

잔치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네덜란드 인류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사람은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고 말했듯이 축제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니 축제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축제가 놀이의 즐거움과 함께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주고, 지역 전통을 발굴ㆍ계승하게 하며, 관광자원까지 되살리면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면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이보다 더 좋은 문화 콘텐츠도 없다. 축제가 마냥 놀자판, 먹자판이 아닌 지역의 삶과 역사, 독창적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곳곳에서 만나는 축제들을 접하고 나면 헛헛한 마음이 든다. 붕어빵 같은 모습, 아니면 지자체장의 업적 과시나 홍보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장소만 다를 뿐 비슷한 이벤트로 구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안동의 탈춤, 예천의 활, 파주의 북(book)처럼 그 지역의 역사, 전통, 자연, 특산물을 떠올리게 하는 독창적인 색깔의 축제도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광지 어디를 가도 똑같은 기념상품을 만나듯, 곳곳에 자리 잡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확인하고, 즐비한 야외 음식점에서 토속 아닌 토속 음식으로 배만 채우고 돌아오는 축제도 한둘이 아니다. 화려한 외형에 집착한 나머지 축제가 지닌 중요한 본질인 ‘만들기’를 소홀히 한 결과다.

축제는 지자체와 주민이 함께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의 것이 되고, 지역 특유의 문화와 정서가 스며든다. 지역 문화와 역사, 사람과 삶과 연결되지 않은 축제, 지역 주민이 참여하지 않고 만들지 않은 잔치는 공허하다. 그들(지자체)만의 리그일 뿐이다. 일본의 마쓰리를 보라. 크든 작든 지역 주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지자체는 그들에게 축제와 관련한 모든 것을 맡긴다. 주민들이 모여 축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각자 작은 역할이라도 하나씩 맡고, 필요한 것은 손수 만들고 준비한다. 비록 소박하고 초라하더라도 거기에는 공동체 정신과 정성이 깃들어 있기에 축제에 생명력이 더해진다. 우리의 지역 축제는 어떤가. 편의성을 이유로, 아니면 주민들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이유로 기획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생색 내듯 주민들은 그저 즐기기만 하라고 지자체는 말한다. 이름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흉내 내기에 그치고 마는 것도, 축제의 성격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비슷비슷한 풍경을 연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축제가 일회성, 소비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 고유의 전통과 풍속을 살리는 ‘문화’가 되려면 기획사에 맡겨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잔치판만 벌인다고, 농산물 몇 개 더 판다고 축제가 지역 주민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장소와 특산물(맥주)을 활용한 독창적 프로그램과 스토리텔링을 개발해야 한다. 지역 주민을 주인공이 아닌 구경꾼으로 만드는, 주민을 소외시키는 축제는 남의 잔치일 뿐이다. 주인이 차리지 않은 잔치, 주인이 흥이 나지 않는 잔치이니 손님이 흥이 날 리 없다. 그런 자리에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을 쏟아붓는 일은 그야말로 혈세 낭비다. 정말 가보고 싶은 지역 축제를 보면 대부분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신명 나서 참여한다. 예로부터 우리의 축제는 그랬다. 삼한 시대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에서 보듯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의에서도 백성들이 지역 토산물을 직접 바쳤고, 내남없이 어울려 밤새도록 춤과 노래와 음식으로 공동체의 동질성과 결속을 다졌다.

오늘의 지역 축제도 모습과 색깔은 다를지라도 그 역사적 전통과 가치, 의미를 창조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참여를 통해 함께 만들고, 즐기고, 느끼고, 간직해나갈 때 ‘축(祝)’도, ‘제(祭)’도 진정한 즐거움과 소통이 되고, 살아 있는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가을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을 만나고, 어떤 것을 느끼고 즐길 수 있을까.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지역 축제를 하나라도 더 만나고 싶다.


우리 동네 가을 축제, 만족 하십니까?



글 이대현
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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