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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트렌드와 고루하지 않은 전통의 조화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옛것에 가깝던 나전칠기가 젊은 공예가의 감각을 만나 현대의 것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신세대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역시 오늘날 나전칠기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아버지인 나전 명인 고암 오왕택을 사사한 그녀는 앞선 세대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재해석을 잊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에서 딸의 손으로아버지의 일을 딸이 잇는다. 칠공예 장식 기법 중 하나인 나전칠기는 얇게 간 조개껍데기, 즉 나전(螺鈿, 우리말로 자개)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여 장식하는 공예 기법을 일컫는다. ‘나전과 칠기가 만나면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나전칠기의 생명은 길다. 1970~1980년대에는 자개장이 혼수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의 진로도 탄탄했다. 중요무형문화재인 김태희를 사사한 오왕택은 열다섯 살 때부터 나전칠기를 시작했으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고 만다. 그의 작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던 중간상이 제때 정산을 해주지 않은 데다, IMF까지 닥치면서 가정경제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전칠기를 그만두신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른 일을 하셨어요. 그러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의 실력을 아까워하신 어머니께서 ‘다시 시작해보라’고 권유하셨죠.”
오왕택 선생이 생계를 위해 나전칠기를 손에서 놓은 기간이 무려 15년. 하지만 그는 2008년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년 후에 딸이 아버지의 문하생이 되면서 그 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미술은커녕 대학에서 중국어와 경영학을 전공한 그녀였다. 익숙한 일이 아니었기에 내면의 갈등도 겪었지만, 그녀 역시 아버지의 나전칠기를 좋아했기에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아버지의 작품은 매우 섬세하고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면이 있어요. 자개를 이용한 독창적인 도안도 인상적이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나전칠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한편으로는 제 실력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고요.(웃음)”
오왕택 선생 밑에서 7년간 나전칠기를 배운 그녀는 지난해 연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자신만의 나전칠기를 선보였다. 나전칠기 분야에서 아버지의 명성을 따를 수는 없지만, 그녀는 ‘오왕택 2세’라는 타이틀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라 여긴다. 언젠가 아버지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한 박물관을 열고 싶을 만큼 그녀는 아버지의 나전칠기를 잇는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전통과 현대의 만남아버지와 딸은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걸음걸이로 걷는다. 아버지에게서 나전칠기를 배웠지만, 오유미는 아버지 세대와 다른 자기만의 색깔을 입히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갇힌 답답함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기존에 없던 다른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나전칠기를 배우다 보니, 이전까지는 저도 나전칠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어요. ‘나전칠기’ 하면 자개장을 먼저 떠올렸고, 전통 문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죠. 게다가 대다수의 나전칠기가 흑색과 붉은색의 두 가지 색을 반복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언젠가 그 틀을 깨고 싶었어요. 그 배경에는 오방색을 전통 색으로 여기는 기존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죠.”
파스텔컬러에 한창 심취해 있던 터라, 그녀는 이를 나전칠기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스스로 찾아가면서 시행착오도 적지 않게 겪었다. 아버지조차 “남들처럼 하지”라고 말할 정도로 시간 낭비, 재료 낭비가 계속됐다. 하지만 열망은 포기를 모르게 했고, 결국 원하는 방식으로 색을 조합할 수 있게 됐다.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옛 시대에도 오방색 사이에 들어가는 ‘간색’이존재했어요. 기술이 부족해서 다른 방식을 시도하다 보니 생겨난 거죠. 저는 이 또한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시작한 컬러 옻칠 연구는 점차 기물에 적용되었고, ‘파스텔칠기’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소개되었다. 이는 파스텔톤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20~30대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8월 연 첫 번째 개인전의 주제 ‘Trad with Trend’의 배경에도 전통과 현대의 조화에 관한 고뇌가 담겨 있다. 그녀는 옛 시절의 트렌드가 우리 시대의 전통(tradition)이 되었듯, 지금 시대의 트렌드가 다음 세대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현대에 깃든 전통’은 현재 그녀의 작업을 관통하는 생각이자 앞으로도 추구할 목표다.
“같은 문양을 반복해서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반드시 전통은 아닙니다. ‘같은 기법으로 하되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가며 시대를 이어 함께 흘러가는 것이 전통’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공감해요.”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레이스, 옻칠을 만나다어떻게 하면 나전칠기라는 전통 공예가 일상생활에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녀는 과거의 지혜를 현재의 양식, 소재와 접목하는 ‘균형점’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 첫 번째 결과이자 대표적인 작업이 바로 ‘레이처(Lature)’다. 레이스(lace)와 텍스처(texture)를 조합한 레이처는 2012년 그녀가 시작한 레이스와 옻칠의 결합 작업을 의미한다. 기존 옻칠업계에서 보지 못한 신선한 결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은 계속되었고, 그 결과 레이처 시리즈는 2014년 스타 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거 나전칠기 작업 중에는 나무가 뒤틀리거나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을 씌우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삼베와 모시를 주로 사용하는데, 저도 그 천의 결을 드러내 작업하는 기법을 배웠어요. 작품에 그 기법을 활용하면서 ‘만약 이 시대 장인이라면 어떤 천을 쓸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유통되는 천 중에서 패턴을 덧입힐 수 있는 레이스를 사용해보기로 했죠.”
나전칠기의 현대화를 위해 그녀는 젊은 세대로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시도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인의 경험으로만 전수되던 다양한 색의 조합을 일련 번호로 구분하고 조합 방법을 별도로 정리하는 것이다.
“1년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올해는 그 일을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그녀가 나전칠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그사이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다양한 요소를 내면으로, 경험으로 축적해왔다. 이제는 그녀 안에 들어찬 수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풀어내기 위한 숙고의 여정을 지나려고 한다. 작품으로서의 나전칠기를 넘어, 일상에서 누리는 나전칠기가 되도록 그 연결성을 찾아가는 그녀만의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전칠기 공예가 오유미

글 정라희, 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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