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이야기 HOME
검색 분류
블로그 전송 카페 전송 밴드 전송 카카오스토리 전송 페이스북전송 트위터전송
독립 책방, ‘책의 향기’를 살리다
독립 책방, ‘책의 향기’를 살리다
‘마음 읽는 공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뒷길의 작은 서점 ‘서가는’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밖에서 얼핏 보면 카페 같은, 아주 작은 도서관 같은 분위기다. 스스로 ‘마음책방’이라고 이름 붙인 이곳에 있는 책은 기껏해야 2000권 정도. 웬만한 개인 장서가 수준이다. 대신 책방의 닉네임 그대로 서가에는 마음에 관한 책만 몸, 마음, 삶을 주제로 여유 있게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책들도 편안이 쉬고 있는 것처럼.

가벼운 에세이부터 예술 서적까지 어느 것 하나 무심히 갖다 놓은 것이 없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심리상담사이기도 한 주인이 인문학자, 독서치료사, 명사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치유(힐링)와 성찰을 담은 책만 고른(실렉트) 것이라고.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밀려 사라져가던 작은 책방들이 이렇게 ‘독립 책방’으로 부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생기기 시작해 지금은 300여 곳이 넘는다. 각각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도 나와 있다. 독립 책방은 ‘책’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예전 동네 책방과 모든 것이 다르다. 대부분 학교 앞이 아닌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고, 중고생을 위한 참고서는 한 권도 없다. 슈퍼마켓처럼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온갖 책을 쌓아두지도 않고, 서가를 빽빽이 채우지도 않는다. 또 신간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과 독서에 대한 주인의 지식과 안목,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과 수준이다. 모든 독립 책방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노하우와 전문성이 있는 주인이 특정 장르나 주제의 책만 ‘고르고 골라’ 갖다 놓기 때문이다. 처음 ‘큐레이터 서점’, ‘북 소믈리에’, ‘실렉트 책방’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예 전문 작가와 출판사가 손잡고 문을 연 곳도 있다. 그런 만큼 그 모습이나 색깔도 동네마다 다르고, 주인마다 다르다. 문학만을 고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디자인 북이나 그림책으로만 서가를 채운 곳도 있다. 심지어 반려동물 전문 책방도 생겼다.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 카페’로 커피와 맥주도 즐길 수 있다. 단골손님에게 책을 파는 것만으로는 운영하기 쉽지 않은 독립 책방으로서는 시너지 효과를 노린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독립 책방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기는 문화와 지식의 소통과 공유, 작가와 출판사와 서점과 독자의 유기적 결합이다. 이를 위해 대부분 독립 책방이 널찍하고 편안한 ‘책 읽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책방의 개성을 살린 독서 모임도 열고, 작가와 대화의 시간도 갖고, 북 파티나 작은 공연도 열기 위해서다.

‘서가는’도 ‘힐링’ 책방답게 치유를 원하는 독자와 작가의 만남, 심리 독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출판사는 독자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같은 관심과 취향을 가진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읽는 공간’은 대형 서점에도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보듯, 갈수록 그 공간을 넓히고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만드는 추세다. 독자를 위한 서비스 확대 차원이기도 하지만 대형 서점 역시 인터넷 서점의 공세에 밀리면서 단순한 책 판매로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대형 서점에서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독서와 지식을 공유할 수 없다. 너무나 다양한 취향과 관심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작가의 사인회나 북 콘서트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지만 베스트셀러나 시의에 맞춘 것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다분히 대형 출판사와 서점이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기획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겉만 번지르르하다. 많은 사람이 몰려 당연히 깊은 대화나 소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독립’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선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그것은 곧 ‘돈’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특정 목적이나 가치를 강요하는 자본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길을 자유롭게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서점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빵집도 그렇다. 어려움과 외로움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돈’만으로는 결코 만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있다. 독립책방에 한번 가보라. 그곳에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잊고 지낸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바로 ‘책의 향기’다. 단순한 종이 냄새나 잉크 냄새가 아니다. 마치 책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나와 함께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자”고.

그 책은 대형 서점 어딘가에도 어김없이 꽂혀 있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더 싸게 판매한다. 저자도 같고, 모양도 갖고, 담긴 내용도 같다. 그런데 느낌이 다른 이유는 뭘까.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과 달리 독립 책방이 그 책의 가치를 존중하고, 개성을 오롯이 살려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 향기를 직접 맡기 위해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을 멀리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책의 향기’를 동네 곳곳에서 다채롭게 되살리고 있는 독립 책방이 더 많이 생겨나고, 그곳에서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 지식과 감성이 자주 만난다면 우리 삶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독립 책방, ‘책의 향기’를 살리다

글 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댓글 보기



삭제하기
TOP
페이스북 블로그 유투브 인스타그램
검색하기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