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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담아 가슴으로 빚는 불의 예술사기장 신한균
사기장 신한균
사기장의 아들로 태어나 운명처럼 받아들인 사기장의 삶. 신한균 사기장은 30년 넘게 도자기를 빚어왔음에도 “도자기는 손이 아닌 가슴으로 빚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작품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책 펴내는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신한균 사기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사기장의 길을 거슬러 올라가보았다.

도자기 종주국은 한국이다“도자기는 가슴으로 빚어야 한다.” 신한균 사기장의 말에 묻어나는 진정성은 사기장으로서 굳건히 견뎌온 그의 인생만큼이나 단단하다. 도자기의 가치는 가마의 여신과 사기장 그리고 구입한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만드는 사람만큼이나 구입하는 사람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인데, ‘도자기 판매’를 “시집보낸다”고 말하는 것에 비춰보면 그 가치가 쉽게 이해된다. 그는 “부모가 혼을 다해 딸을 키우듯, 사기장 또한 도자기에 혼을 불어넣기에 도자기는 가슴으로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의 혼이 담긴 도자기는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각종 초대전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비단 사기장뿐이랴, 예술가로 살아가는 녹록지 않은 인생길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전을 개최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 아닐까. 그런 작품전을 해외에서 1년에 두 번 이상 개최한다고 하니, 신한균 사기장의 작품은 이미 검증 단계를 넘어 최고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이 좋아 작품전을 하게 되었어요. 신정희 옹의 아들이기 때문에 좋게 봐주시는 것도 없지 않거든요”라며 그 영광을 오롯이 아버지에게 돌린다.

사기장 신한균

수많은 작품전 중에서도 ‘초대전’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특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초대전에서 인정받고 있는 만큼, 그에게 초대전은 작품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발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사명으로 발전했다. 해외 작품전을 통해 각종 언론 인터뷰에 소개될 때마다 일본을 도자기 종주국으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도자기 종주국은 한국”임을 분명히 알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외국인이 도자기 종주국을 일본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책도 쓰고 전시회도 개최하는 것입니다.”

사기장 신한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사명일본 최고 국보로 인정받는 이도다완은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도자기다. 하지만 조선에서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사기를 일본의 국보로 삼을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이 그릇을 자신들의 창작물로 둔갑시켜버렸다. 일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밥공기는 조선인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국보로서의 가치는 우리가 만들어냈다. 이도가 일본으로 건너오지 않았다면 조선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야말로 이도의 고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문화유산을 자신들의 것으로 추앙하는 그들의 행태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신한균 사기장이 집필 활동에 더욱 매진한 것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과거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였다.
“일본 사람이 우리보다 우리 도자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 도자기를 전수한 게 우리인데 말이죠. 아버님 역시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글을 모르다 보니 답답해하셨어요. 아버지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리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했기에, 도자기 관련 책을 열 권 넘게 펴낸 것입니다.”
그가 펴낸 책은 도자기 이론서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한다. <우리 사발 이야기>는 도자기 관련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신의 그릇>은 소설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신의 그릇>을 쓰게 된 배경은 전문 서적으로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소설 준비 기간만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조선시대 사기장들의 삶을 최대한 비슷하게 조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사기장이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책 한 권 펴내고 생색내기는 더 싫었죠. 그래서 더욱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신의 그릇>이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도자기 관련 백과사전을 펴내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도자기 종주국임에도 우리나라에는 참고할 만한 도자기 백과사전이 없어 관련 자료를 일본에서 수집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사기장 신한균가마에서는 1년에 두 번 도자기를 굽는다.
사기장이라는 운명 같은 삶조선 사발의 맥을 이어온 고 신정희 선생의 장남으로 살아왔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기장으로 살아갈 자신의 운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도자기 만드는 일에만 푹 빠져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임에도 집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어쩌다 한 번 집에 오실 때면 아버지 손에는 도자기만 한가득 들려 있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줄 사탕 한 알 사 오신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젓갈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에게 느끼는 연민이 커질수록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졌다.
그가 서울 유학을 결심한 것도 사기장으로서의 삶이 아닌,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개척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사동과 박물관을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피, 자라온 환경이 아마도 그의 본성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고향에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제2의 도자기 인생을 시작한 시점일 것입니다. 언제부터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곤란한데, 사실 저도 언제부터 도자기를 만들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불가마가 집이었고, 도자기가 친구였으니까요. 이미 그때부터 제 도자기 인생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요?”

사기장 신한균

그릇은 사용할 때 그 가치가 온전해진다신한균 사기장은 그릇은 손으로 만지고 사용할 때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도자기의 가치가 가마의 여신과 사기장 그리고 사용자, 세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그릇과 전시하는 그릇을 구분 짓는다.
“그릇은 쓰라고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그릇 역시 직접 사용하고 대를 물려 전하는 명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그릇은 누가 만드냐보다 누가 사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거든요.”
도자기는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예술이다. 밥그릇 하나에도 우리 민족의 자유로운 기질과 창조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도자기는 당시 첨단 기술이 집약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작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당시 세계적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증거죠. 그만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우리가 먼저 깨닫고, 우리 기술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기장 신한균신한균 사기장의 부친인 故 신정희 사기장의 묘소
글 허성환, 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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