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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도전의 길을 내다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
집단주의가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심화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시대의 경쟁력은 협력과 융합에서 비롯한다. 자신만의 예술관으로 똘똘 뭉쳐 있을 법한 예술가의 영역에서도 ‘홀로’가 아닌 ‘함께’의 시너지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를 묻는 이들에게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는 훌륭한 답변이 될 것이다.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왼쪽부터) 김동규, 김성조
둘이 만나 이루는 시너지의 여정패브리커는 김동규와 김성조, 두 사람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이다. 아트 퍼니처 같은 단일 오브제부터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 설치 미술까지, 장르에 국한하지 않은 폭넓은 작업을 해왔다. 패브리커라는 이름이 낯선 이들도, 이들이 작업한 프로젝트 중 몇 가지는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드래곤과의 협업으로 더욱 유명한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비롯해, 한때 잠실 석촌호수에 등장해 SNS를 장악한 러버덕을 재활용한 ‘러버덕 의자’를 전시한 에도 패브리커의 아이디어가 닿아 있다.
개별 아티스트가 폭넓은 작업을 위해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협력하는 사례는 이전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오래도록 개인 작업은 단 한 건도 하지 않고 패브리커라는 이름으로만 활동해온 두 사람의 행보는 어딘지 모르게 색다른 부분이 있다.두 사람이 그룹을 이루게 된 계기는 성균관대학교 서피스디자인과 졸업작품전을 함께 준비하면서다. 졸업작품전은 졸업을 앞둔 디자인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 각자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고심을 거듭하던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서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생각을 교류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는 형, 동생 사이였어요. 그러다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면서 함께 대화할 기회가 늘었죠. 그렇게 생각을 나누며 작품을 만드는 게 참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이 생활을 좀 더 유지해볼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고, 패브리커를 결성했죠.” (김성조)
그때가 벌써 2009년. 이후로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결별하지 않고 한 몸처럼 패브리커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패브리커(Fabrikr)라는 이름은 천을 뜻하는 패브릭(fabric)을 접목해 ‘천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지은 것. 당시에는 그들의 전공 분야가 ‘섬유’였기에,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소재 역시 섬유라고 생각해 이름 지은 것이다.
출발이야 어떻든, 그들의 경험치가 다양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지면서 그 이름의 뜻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섬유를 넘어 ‘재료와 공간, 물성 등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사람’으로 범위가 확장된 것. 처음에는 이름이 그들의 활동 영역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활동이 이름의 의미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PEACE MINUS ONE_With G Dragon, Mixed Media, Variable Size, 2015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Coralwave, Fabrikr x Quantum, Prism Film, Wire, Mirror, Variable Size, 2014
버려진 것에 부여한 새로운 가치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패브리커 작품 활동의 핵심 역시 ‘다른 관점’에 있다. 초창기 패브리커가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로 소개될 당시, 그들 작품 활동의 특징 역시 업사이클링이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물건을 새로 디자인함으로써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품은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섬유를 전공한 만큼 동대문 원단시장에 갈 일이 잦았는데, 새것인데도 버려지는 자투리 원단이 아까워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주로 섬유에 사용하는 디자인 트렌드와 아트워크에 집중해 공부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맨 처음 같이 작업한 건 가구였죠. 당시엔 양산품을 만들 재정적 여유가 없어서 폐가구를 활용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작품을 감상용으로만 두고 싶지는 않았죠. 디자인을 공부했으니 ‘사용할 수 있는 예술’을 하자고 방향을 정했어요.” (김동규)
수많은 재활용품 중에서도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문을 열어 단숨에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카페 ‘ONION’ 역시 그들이 작업한 공간이다.
“이곳은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아마 당시 성수동이 그랬듯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외벽이 내벽이 되기도 하면서 무한 증축을 거쳤어요. 슈퍼였다가 정미소였다가 여관이었다가 기계 설비 공장이 되기도 하면서 벽에 계속 덧칠을 하고 외벽이 쌓여 만들어진 흔적이 흥미로웠죠. 그래서 ‘공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 이곳을 디자인하는 핵심 방향이었습니다.” (김성조)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
답습하지 않기에 오래간다비슷해서 만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다른 점도 자주 발견한다. 하지만 그 ‘다름’이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또 다른 영감이 된다.
“작업하면서 사소한 부딪힘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개인이 아닌 ‘패브리커’라는 이름이 지닌 정체성이 이제야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시너지를 내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실제로 해보면 한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둘이 생각한 게 장점이 많아요. 그렇다면 패브리커가 더 잘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이견을 조율해나가야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김동규)
기업들과도 다양한 형태로 협업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때도 있다. 패브리커의 작업 특징을 보고 기업에서 먼저 제안을 해오지만, 이전 프로젝트를 답습하기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프로젝트 하나를 더 하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찾고자 한다.
물론 ‘다르게 생각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 비결이 궁금해 살짝 물어보자 “애쓰지 않아서 가능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기적으로 만족하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는 두 사람. 그런 고민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듯, 2017년에는 장식 예술·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청바지와 테이블을 결합한 그들의 작품 ‘결’을 구매하기도 했다.
“예전에 영국에 가서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멋진 곳도 있구나’ 생각했죠. 그때만 해도 그곳에 우리 작품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조차 못 했어요. 그런 곳에서 우리 작품을 소장하겠다고 해 무척 감개무량했습니다.” (김성조)
2017년에 두 사람은 ‘육아 동지’가 되면서 아버지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아직은 인생에 일어난 큰 변화가 그들의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의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브제에서 공간으로 확장된 그들의 활동은 이제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정된 공간을 넘어 또 다른 변화를 이루고 싶은 패브리커의 다음 움직임이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글 정라희•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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