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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영화들이 전하는 말,다시 시작해요
다시 시작해요
인간은 시간 위에 일정하게 작은 눈금을 그어 경계를 만들었다. 그 눈금이 질서를 만들고, 사고를 규정하고, 흐르는 자연의 시간을 인간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삶과 의식의 진행 기준으로 삼는다. 시계가 분할하는 시간에 맞춰 인식과 사유, 정신과 활동을 분할하기도 한다. 스페인의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가 저서 <시계와 문명>에서 한 말이다. 동양에서 시간은 선(線)이 아닌 원(圓)이기도 하다. 순환과 윤회다. 선과 달리 원은 거스름 없이 지나간 자리로 다시 갈 수 있다. 과거도 미래가 된다. 그래서 이창동 감독은 한 젊은이가 20년 전 꿈과 희망의 자리로 돌아가는 영화 <박하사탕>을 만들면서 “모든 과거는 지나간 미래”라고했다. 시간과 희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져 있는 시간을 수학적 단위로 구분하고, 그것을 반복하는 이유는 일정 기간, 어느 순간에 새로운 시작을 부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해를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어쩌면 시간의 경계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설령 그 희망이 우리를 배신하더라도 시련과 실패를 딛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시간은 ‘나의 편’이 된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를 다시 찾아온 영화들이 있다. <라라랜드>처럼 가깝게는 불과 몇 달 만에, <록키>처럼 멀게는 40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이미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빌리 엘리어트>와 영화 속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데이비드(제프리 러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장면이 가슴을 울린 30년 전 영화 <샤인>도 있다.
뜬금없는 복고 열풍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추억의 실버 영화관은 더더욱 아니다. ‘리메이크’라는 새 옷을 입지도 않은 그때 그 모습이지만 낡아 보이지 않은 이유는 4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영화 속 이야기들이 우리 삶 속에 있고, 주인공들이 여전히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명작이란 이런 것이다. 한번 유행을 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아와 변하지 않는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우리를 좌절시키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그 삶은 시간의 새로운 경계 위에서 다시 서 있어야 하니까. 그 때문에 이런 영화들은 비록 환상이고, 허구일망정 시간의 경계인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세요.”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고, 그 상처를 새로운 살로 돋아나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샤인>은 새삼스럽게 말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원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길’은 열린다는 사실을 16년 만에 찾아온, 그것도 어린 소년 빌리 엘리어트가 다시 한번 보여준다.

다시 시작해요
한 번 쓰러졌다고, 사방이 막혔다고 희망을 접고 멈춰버려야 할까. <라라랜드>는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딛고 다시 시작할 용기와 믿음이라고 노래한다. 한걸음 나아가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은 아예 제목부터 ‘다시 시작하라’다. 물론 그 재도전의 출발점은 희망이다. 희망이야말로 삶의 동기이자 힘이다. 얼마나 크고 높고 아름다운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꿈이 있고, 그 꿈이 이번만큼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자신을 소중히 하고, 고통과 슬픔도 참아낸다.
만약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십중팔구 <비긴 어게인>의 댄(마크 러팔로)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인간.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비긴 어게인>은 음악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실낱같은 꿈을 남겨놓았기에 그는 우연과 운명을 통해 다시 도전할 기회를 가졌다. 이런 영화들은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은 것이 진짜 실패이며, 용기와 믿음만 있다면 고통과 갈등과 아픔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러고는 여봐란듯이 도전에 성공하는 감동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세상은 영화의 해피 엔딩과 달리 <비긴 어게인> 속 ‘Lost Stars’의 가사처럼 ‘어쩌면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처절하게 실패하고 좌절로 끝나 상처와 고통투성이인 길 잃은 별이 되는. 그들에게 “다시 시작하라”고 선뜻 말할 수는 없다. 영화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결국 고통도, 희망도, 믿음도, 용기도, 도전도, 실패도 각자의 몫이다. 신조차 어찌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희망을 포기하고 멈춰버려야 할까. 분명한 것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도전만이 나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것이 모여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사실이다. 결코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시작해요

글 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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