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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레(Åre)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
바이킹의 땅이었던 스웨덴 중부 산맥의 오지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스칸디나비아 겨울스포츠의 성지가 되었다. 이후 그곳은 오랜동안 스웨덴 국민은 물론 북유럽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영광은 점점 빛을 잃어갔고, 결국 작은 위기가 찾아왔다. 얼음과 눈이 가득 찬 겨울 마을은 새 희망의 불을 켤 수 있을까?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
스웨덴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넉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을이 지나고, 스칸디나비아 겨울 왕국에 드디어 진짜 겨울이 찾아왔다. 그런데 함께 집을 빌려 쓰는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겨울 여행을 제안했다. 여기가 겨울 왕국인데 겨울을 찾아 또 어디로 떠나자는 걸까? 그들은 스웨덴 겨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눈의 정거장’으로 가자고 했다. 오레(Åre)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눈의 정거장으로힘껏 견디며 서 있는 이정표가 자꾸 눈보라에 가려 희미해진다. 누구라도 오레 기차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알게 된다. 하얀 눈 사이에 까맣게 파묻힌 이곳에서 겨울 왕국의 서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정말 여기가 눈이 떠나고 돌아오는 ‘눈의 정거장’인지도 몰랐다. 스웨덴 중서부 오레 산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레는 고작 인구 2,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그렇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북유럽 전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스키 리조트가 이곳에 있다.
문헌에 의하면 스웨덴 사람들이 오레산 기슭에 마을을 구성하며 살기 시작한 건 1000년 전 일이다. 그전까지 이 지역은 바이킹의 영토였다. 겨울 관광지로 본격 주목받게 된 건 1890년대 말 그랜드 호텔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19세기 동안 스웨덴 국왕은 물론 노르웨이 국왕까지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며 더욱 유명해졌다.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대이동을 하고 있는 순록 떼
공기손님사실 우리에게는 자연이 아름답고 국민 행복도가 높은 ‘북유럽 부자 나라’ 정도로만 알려진 스웨덴은 혹독한 기후 환경 때문에 100년 전만 해도 굶어 죽는 사람이 적지 않은 나라였다. 일부 사람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좀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오레는 아주 뜻밖의 이유로 전국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기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어느 순간 오레는 스웨덴에서 가장 공기가 맑은 땅으로 알려졌다. 참 뜻밖의 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많은 여행자가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겠다며 오레로 찾아들었다. 깊은 호흡으로 지구가 내놓는 제일 순전한 숨을 가득 들이마시면 가혹한 삶도 조금 나아질 것 같았다. 기묘한 여행자들, 그들을 부르는 별도의 이름도 있는데, 바로 ‘공기손님(air-guests)’이다.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오레는 한두 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순록으로 삶을 짓다어렵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대충 던져놓고 오레 구경에 나섰다. 한두 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동네다. 숙소 바로 앞까지 눈길이 다져져 있어 어디가 스키장이고 어디가 마을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저녁이 오면서 집집마다 불을 밝혔다. 흰 눈이 가득 차오른 마을에 노란 빛이 돌자 오래된 동화 속에서 막 꺼내온 동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레에서는 순록 모피를 쉽게 볼 수 있다. 여름 동안에는 푸른 목초지가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지고, 겨울이 깊어오면 순록의 털이 풍성하고 고와지기 때문에 순록을 키우는 데 매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의 방마다 순록 모피 한두 개씩은 장식해뒀고, 심지어 어느 친절한 가게는 여행자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밖에 내놓은 소파 위에도 순록 모피를 깔아놓았다. 사실 이곳은 역사 속에서 대대로 ‘순록 마을’이었다.
17세기 중반에 북극권 선주민이자 토착민인 사미족이 오레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순록 때문이었다. 혹독한 눈과 얼음의 땅에서 순록은 사미족의 밥줄이었다. 순록 고기를 삶아 주식으로 삼았고, 뼈를 고아 만든 수프로 추위를 이겼다.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새끼를 팔아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니 순록은 그들에게 재산 목록 영순위일 수밖에 없다.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가게 앞 소파에서도 겨울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옆보인다.
가장 멋진 활강, 그러나 어느 날 맞은 위기보드를 빌려 타고 마을 산의 정상에 올랐다. 몇 번만 활강하면 하루치 보드를 다 탄 것같이 느껴질 정도로 길고 아름다운 슬로프가 마을 아래까지 이어진다. 북유럽 스키 리조트 중에서도 오레 스키장은 최고의 명성을 얻으며 최고의 사랑을 받아왔다. 알파인 스키의 심장이라 불리며 무려 30여 개의 리프트를 운행하고 있다. 1954년과 2007년 알파인 스키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했고, 1984년부터 스웨덴이 동계올림픽 경쟁에 뛰어들 때마다 후보지로서 자그마치 일곱 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스웨덴 전역에 있는 모든 스키장 중 톱 레벨 활강 경기가 가능한 유일한 스키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과 다른 지역의 관광 프로그램 활성화, 또 스웨덴 밖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 훨씬 쉽고 간편해지면서 오레의 스키 산업이 하향세로 돌아선 것. 마을의 시작과 끝이 눈이자 스키인 오레 사람들에게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 못할 정도로 컸다. 위기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왔다.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스웨덴 최대, 최고의 스키 리조트.
겨울 마을에 새로운 불을 켜다고민이 깊던 어느 날, 오레는 겨울의 건너편 여름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결정했다. 겨울이 지나면 스키 슬로프는 푸른 초원과 협곡, 때론 거칠거나 평평한 트레일을 드러내곤 했는데, 오레 사람들은 여름마다 산악자전거로 이 트레일을 오르내리는 게 취미였다. 그들은 여기에 주목하고, 산악자전거의 메카로 오레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트레일을 새로 정비하고, 다양한 산악자전거 루트를 개발했다. 산악자전거 축제를 개최하고, 산악자전거 공원도 만들었다. 입소문은 느렸지만 변화는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백 명, 몇 년 후엔 몇 천 명의 여행자가 산악자전거를 즐기기 위해 오레를 찾았다. 물론 겨울 관광객에 비하면 그 수가 턱없이 적었지만 분명하고 반짝거리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놀랍게도 이제 오레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산악자전거 리조트가 되었다. UCI 산악자전거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하고, 북유럽 챔피언십 역시 이곳에서 열렸다. 오레는 여름이면 산악자전거로 온 산을 탐험하며 수십 개의 트레일을 아찔하게 질주할 수 있는 여름 마을로, 겨울이면 세상의 눈을 다 불러 모아 최고의 스키 슬로프를 펼쳐내는 겨울 마을로 그 이름을 바꿔 갖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서 오레의 과거, 현재 그리고 도전과 성취 이야기를 듣는 동안 밤이 깊어 다시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나는 고작 작은 마을의 서사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 우리가 겨울의 한가운데서도 여름의 햇살처럼 찬란할 수 있고, 여름 한복판에서도 겨울의 눈처럼 가득 차오를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어졌다.
뒤돌아보니 삶의 모든 계절은 위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계절의 극복이기도 했다. 누군가 겨울 숲을 지키는 창밖의 가로등 아래를 지났다. 푹푹 빠지는 눈밭에서도 망설임 없는 걸음이 두고두고 호기로운 밤이었다.

겨울 마을에 새로운 등을 켜다
오레 스키 리조트총 91km의 슬로프를 자랑한다. 현재 2018년 기준 31개 리프트를 운영 중이다. 보통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5월 초까지 1년에 무려 6개월 동안 스키를 즐길 수 있다.
www.skistar.com/en/Are

오레 산악자전거 페스티벌주로 7월 초에 개최된다. 4일 동안 이어지는 축제에서는 산악자전거 마니아뿐 아니라 여행자 모두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백미는 마지막 날 수백 명의 산악자전거 라이더가 펼치는 엔듀로 챔피언십 대회다. 2017년에는 7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렸고, 2018년 계획은 아직 미정이다.
www.arebikefestival.com

글•사진 양정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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