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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새 장르로 뿌리내린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는 “나는 독자들에게 책의 절반만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절반은 독자들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쓰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무릇 모든 책은 독자와의 만남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 문학적 성격이 짙은 책은 더욱 그렇다. 독자와의 공감 없이 성공한 작가는 없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가 25년 동안 수백만 부가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투르니에가 신화적 상상력을 기초로 철학과 문학의 만남을 모색했다면, 유홍준은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역사와 문화의 접목을 시도한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조화라고 할까.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아 무겁지 않고, 또 너무 대중적이지도 않아 가볍지 않다는 데 미덕이 있다. 교양과 재미를 동시에 겨냥한다. 명승이나 고적을 그린 그림을 보며 즐기는 독서 기행문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야말로 누워서 즐기는 ‘와유(臥遊)’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지식을 엮어 알기 쉽게 풀어내되 한편으로는 독자 스스로 사유할 공간을 남겨둔다. ‘여백의 글쓰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최근 출간된 서울편 1·2권은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유홍준류’ 답사기의 틀을 충실히 따른다. 1권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는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인 종묘를 필두로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을 다룬다. 2권 ‘유주학선 무주학불’에서는 서울의 옛 경계인 한양도성, ‘자하문(창의문) 바깥’을 일컫는 자문 밖, 궁궐 공원인 덕수궁과 그 외연,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를 모시는 무묘인 동관왕묘, 유교 사회인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성균관을 찾아간다. 서울편은 서울에 대한 두 가지 핵심적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서울은 ‘사찰의 도시’ 교토와 ‘정원의 도시’ 쑤저우에 견줄 만한 ‘궁궐의 도시’이며, 조선 국초 건설된 계획도시라는 것이다.
왕도의 상징물은 단연 궁궐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도심 속 고궁 공원인 창경궁 등 한 도시에 이렇게 유수한 궁궐이 많이 들어서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저자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처럼 법궁으로서의 위상도 없고 덕수궁 같은 별격도 없지만 창경궁을 그 어느 궁궐보다 특색있고 매력적인 장소로 꼽는다.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도세자의 죽음 등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내는가 하면 동물원을 구경하고 연못에서 보트놀이를 하던 창경원 시절의 아픈 역사도 담담하게 그린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의 서막을 여는 것은 궁궐이 아니라 종묘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후뿐 아니라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까지 모신 유교 사당으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저자는 종묘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중국의 천단 등에 비견할 만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한다. 일본 건축계의 거장 시라이 세이이치는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저자도 우려하듯 우리 국민이 과연 종묘의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권의 답사는 한양도성에서 시작된다. 수도 한양의 상징으로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한양도성은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등의 산줄기를 타고 서울을 둘러싼다. 그러니만큼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청와대 경호 등의 이유로 수십 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북악산을 개방하는 것에 저자는 참여정부 시절 문화재청장으로 적잖은 역할을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제 인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뿌리내렸다. 1993년 <남도 답사 일번지>를 출간한 이래 10권까지 선보이며 이 문화유산답사기는 더 이상 홍보가 필요 없을 만큼유명해진 ‘국민 필독서’가 됐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이 책이 기여한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는 앞으로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을 다룬 3권과 한강과 북한산 이야기를 담은 4권도 펴낼 계획이다. 서울편이 완간되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진면목은 우리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최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백자 100여 점을 충남 부여군에 기증할 뜻을 밝히며 민족의 자산으로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한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유산은 함께 공유하고 나눌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가로지르는 메시지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글 김종면(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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