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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영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대박’ 영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모든 영화는 개봉에 앞서 ‘대박’을 꿈꾼다. 어떤 영화는 그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좌절로 끝나고 만다. 엄청난 제작비와 초호화 캐스팅, 상업적 소재에도 불구하고 흥행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로 막을 내리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소박한 영화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영화가 어떻게 천만 관객을 끌어 모으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지독한 독선이다.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재미나 감동도 없고, 내키지 않는데도 남들이 보니까 덩달아서, 아니면 의무감에 마지못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만큼 ‘대박 영화’에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특별함’은 흥행에 실패한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위험한 선택’이다. 차이라면 용기와 도전으로 그것을 장점과 기회로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일 뿐이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은 하늘이 도와야만 가능하다. 여기서 하늘은 다름 아닌 국민이다. 국민적 관심과 감동 없이는 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것이 불가능하다. 국민을 움직이는 힘은 사회적 분위기로, 국민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그것을 건드리는 영화가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시킨다.
2003년 <실미도> 이후 지금까지 나온 천만 관객 영화 10여 편이 모두 그랬다. 그러니 <택시운전사>, <1987> 같은 작품을 놓고 정치적 상황에 편승한 기회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그 ‘상황’이야말로 오히려 영화가 지닌 가장 큰 위험이자 약점이다. 영화 역시 박근혜 정부의 타락과 그로 인한 때 이른 정권 교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영화일수록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더욱 공을 들이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섬세한 감성과 감각, 날카로운 눈으로 전 국민이 하고 싶은 이야기, 확인하고 싶은 진실, 간절히 원하는 세상, 공감하는 인물이 됐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이 결코 남이 아닌 나와 나의 아버지, 삼촌이 됐고, 그의 눈으로 본 ‘그날’ 광주의 비극은 국민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 됐다. 꼭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담은 작품만이 아니다. <국제시장>도 그렇고, <광해, 왕이 된 남자>도 그렇다. 심지어 식상할 만큼 반복한 이순신 이야기를 담은 <명량>과 망자를 심판하는 사후 세계를 다룬 <신과 함께-죄와 벌>도 상투적이고 낡은 소재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 이야기를 엮어 스스로 선택한 용기와 모험을 가장 매력적인 무기로 만들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대통령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국가적 책임을 다하는 이순신을 다시 만나게 했다. 천민을 잠시 왕(광해)으로 탈바꿈시켜서라도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도자의 마음과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사회적 이슈나 국민 정서를 영화가 약삭빠르게영합한다고 해서 모두 ‘대박’을 내는 것은 아니다. <변호인>의 성공도 한 인권변호사를 통해 국민의 가슴속에 소리 없이 들끓고 있는 정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국가 권력이 오히려 정의를 짓밟는 현상에 대한 분노,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자칫 시대 분위기에 따라서는 정치적 틀에 갇힐 수 있는 내용을 가장 보편적 가치이자 공감인 휴머니즘으로 뛰어넘었다.
올해 첫 천만 관객 영화의 주인공이 된 <신과함께-죄와 벌>은 신파조의 가족 사랑에 뛰어난 시각적 특수효과를 더함으로써 ‘보는’ 재미를 살렸다. 그러니 천만 관객 영화는 단지 운 좋게 때를 잘 만난 덕분에 탄생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정치적 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우르르 극장으로 몰려가 봐도 흥행하지 못한 영화도 많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택시운전사>도 처음에는 모두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영화의 ‘무엇’이 아닌 ‘어떻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장점과 색깔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실미도>의 스토리를 거침없이 밀고 가는 힘,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렬한 감정, <왕의 남자>의 흥건한 풍자와 해학이 그것이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라고 다르지 않았다. 때론 직설적인 웅변과 구호로, 때론 은유와 상징으로, 때론 있는 그대로의 재연으로, 각자 선택한 방식으로 국민의 의식과 감정을 자극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앞으로도 천만관객의 한국 영화는 계속 나올 것이다. 반가운 것은 그 영화들이 단순한 환상이나 오락이 아닌 우리가 살아온 세상, 살아가는 세상을 보다 바르고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박’ 영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글 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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