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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텐버그(GÖTEBORG)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
온기가 모든 곳에 도착했다. 다시 찾아온 초록빛 풍경을 향해 천천히 창을 열었다. 스웨덴 제2의 도시 고텐버그에서 따뜻한 햇살을 품고 안겨 드는 보통의 오후는 평범하면서 동시에 반짝거렸다. 길마다 온유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스톡홀름 다음으로 큰 도시 예테보리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어식으로는 고텐버그, 누군가는 고텐베르크, 어느 지역에서는 고르덴부르크라고 부른다. ‘작은 런던’, ‘제2의 암스테르담’이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 17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에 의해 큰 도시로 정비되었는데, 이후 상업과 공업, 무역업을 중심으로 발전하다 지금은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많은 여행자가 찾고 있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고텐버그 운하
바다로 이어진 운하와 왕의 공원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고텐버그 중앙역은 스웨덴 전역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앙역 앞 광장을 품으며 스토라함 운하(Stora Hamn Kanalen)가 바다로 이어진다. 고텐버그는 발트해와 북해를 마주한 만큼 바다를 가득 안은 도시인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도시를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었다. 해상무역이 도시의 생명줄이던 시절, 도시 한복판에서도 선박에 짐을 싣고 내리기 위해서였다. 운하는 이제 고텐버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삶의 쉼터가 되었다.
운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봄을 맞이하고 있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맑고 단정하다. 오가는 작은 배를 들이고 떠나 보내는 운하 길을 따라 수 킬로미터에 걸쳐 길고 풍성하게 왕의 공원(King’s Gargen; Kungsparken)이 펼쳐진다. 봄을 맞아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햇살의 온기를 마중하는 중이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고텐버그 중앙역 앞 트램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공원에 산책나온 고등학생들
광합성 하는 사람들사실 고텐버그의 기후는 고약하다. 가을이 깊으면 온통 비바람이 몰아치고, 오후가 되면 터무니없이 일찍 해가 떨어진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하다 보니 사계절 중 겨울이 지나치게 길다. 그래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면 온기와 그 온기를 품은 일상이 더욱 각별해진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어디 숨었는지 평소 텅 비어 있던 왕의 공원에 활기가 넘쳐난다. 가족, 친구와 둥글게 원을 만들고 광합성을 하고 있다. 그중 연인들이 가장 애틋한 풍경을 연출한다.
누가 봐도 아직 어색한 사이, 아마도 사랑의 첫 봄을 이제 막 맞고 있을 커플의 뒷모습을 구경하며 오래 앉아 있었다. 오래된 연인처럼 찰싹 달라붙어 서로 안고 키스하며 진한 사랑을 진열하지는 못하지만, 쭈뼛쭈뼛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나란히 함께 운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손을 잡고는 남자가 잠시 여자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까, 아니면 봄을 속삭이고 있을까. 다 알지 못하지만 그들의 소박한 떨림이 꼭 봄처럼 다정히 피어 올랐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봄의 공원은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
여행은 내면으로 길을 여는 것무슨 대단한 여행이 따로 있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멋진 여행을 했다고, 그러니 당신도 나처럼 떠나보라고 여행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씩 여행하지 않으면 삶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함부로 말하는 여행자가 있을지도…. 하지만 여행의 시절마다 내가 배운 사실은 이러하다.
우리는 모두 여행을 떠나고 있다. 다른 마을, 다른 나라로 떠나는 물리적인 여행은 가장 일차원 적인 여행이다. 더 깊고, 멀고, 뜨거운 여행은 저마다의 내면을 향한 여행.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이 탐험하기 위해, 관계와 사람으로 떠나는 여행이 가장 찬란하고 인간답다. 고텐버그 왕의 공원에서 서로에 기대 햇살을 담고 있는 연인은 그러니 한창 여행길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과 함께 나와 작은 도시락을 열고 빵과 치즈에 봄을 얹어 서로에게 건네는 이들 역시 사랑을, 마음을, 내면을 향한 길을 활짝 열어젖히는 중이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중앙역 광장의 원주민 공연
새로운 에너지의 길고텐버그라는 도시 이름은 ‘용기로 가득 찬 시민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결코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 도시 사람들은 몇 가지 용기 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환경 친화적 에너지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보이며 많은 도시생태 연구자들의 관심을 끄는 중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편한 에너지 대신 좀 더 건강하고 바른 에너지 체계로 도시를 전환하겠다는 결심은 분명 적지 않은 불편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중세 시대 이후 줄곧 상업 지역으로 성장하다가 북유럽 조선업의 요충지로 발전한 뒤 금속, 목공, 자동차 등 다양한 영역의 공업을 기반으로 꽃을 피운 고텐버그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도시였다. 그러니 가장 저렴하게 고효율의 에너지 획득이 가능한 석탄과 석유 기반 에너지 정책은 당연히 고텐버그의 심장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고텐버그는 석탄과 석유 기반 에너지의 한계와 부작용, 도시 미래와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스웨덴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민주주의, 복지 발전과 함께 시작된 고민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석탄·석유 중심 에너지를 탈피해 다양한 방법의 생태 에너지 정책을 실험하는 생태도시로의 변화는 정부나 시 당국의 강력한 의지와는 별개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봄이 도착하고 연인들의 여행이 한창이었다
자연으로 향한 도시의 길이들은 석탄·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 난방 체계의 문제점을 북유럽 어느 도시보다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것은 비용 측면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였지만 지속 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고텐버그는 도시 특성을 고려한 대안적 해결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공업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이니만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동시에, 생산되고 쓰인 후 버려지거나 중간에 유실되는 에너지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열에너지였다.
시민들은 쓰레기 소각장에서, 항구에서, 공장에서 쓰고 남은 폐열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관공서 난방을 시작으로 각 가정의 난방 에너지로까지 사용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지역 기업의 환경적 책임을 묻는 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상품을 더 많이 구매하고, 비즈니스 관계를 더욱 활성화하는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 운동은 스웨덴 전06역으로 확대됐다. 지금도 환경오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제와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 친화적 제품에 라벨링을 하는 운동까지 환경 중심의 도시 운동이 다양한 방법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 길은 온유하고 찬란하며친환경 농산물 매장
봄의 길, 봄의 동행고텐버그를 거닐다 보면 여유롭고 단정한 시민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자연경관이 압도적인 것도, 그렇다고 유럽 최고의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고텐버그는 건강한 문화를 가진 도시, 자연과 효과적으로 공생하는 도시, 시민 의식이 높은 도시로 충분히 반짝거린다.
여행이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정말 맞다면, 그건 여행의 장면이 품고 있는 엄청난 가르침 때문이 아닐 것이다. 소박하게 삶을 꽃피우고, 일상에 기꺼이 초록을 물들이는 사람들을 가까이 보고 함께 꿈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후 햇살이 깊은 고텐버그의 풍경과 사람들이 상냥하게 여행자를 끌어 안는다. 도시는 봄의 길목마다 온유하고 찬란했다.

글•사진 양정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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