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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축복인가 재앙인가
축복인가 재앙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궁극의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혹자는 종교적 의미를 담아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소설계의 빅뱅’ 댄 브라운 작가는 그의 소설 <오리진>에서 종교의 허구를 지적하며 새로 쓴 진화론을 내놓는다. 요컨대 신을 없애기 위해 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왜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Homo Deus)인가. 전작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말한 유발 하라리(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후속작 <호모 데우스>(김영사 펴냄)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논한다. 7만 년 전 인지혁명은 사피엔스의 마음을 변화시켜 별 볼 일 없는 아프리카 유인원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도록 했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의 뒤를 이어 호모 데우스의 탄생을 예고하는 시대다. 우리는 어떤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의제로 삼아온 기아와 역병, 전쟁을 극복한 호모 데우스는 바야흐로 불멸과 행복, 신성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21세기의 초인간 ‘신인류’를 내다보는 우리의 시선은 착잡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과학기술을 발판으로 신의 자리를 넘보는 지금, 과연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가 축복일지 재앙일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축복인가 재앙인가
호모 데우스가 되어가는 과정은 만만찮은 대가를 요구한다.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은 때로 인본주의를 심대하게 위협한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카탈로그에서 자신의 아이를 선택하는 ‘맞춤아기’ 시대가 되고, 유례없는 생물학적 빈부격차가 생기면서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직업을 잠식할 미래에 잉여인간은 무엇을 할 것이며, 거의 모든 것을 잘하는 높은 지능의 정교한 비의식적 알고리즘 앞에서 의식을 지닌 인간은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유발 하라리는 생명공학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초인간과 평범한 인간 사이의 격차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기술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지혜가 있는 사람’은 정작 그 지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호모 데우스>은 7만 년 역사를 거쳐 마침내 지구를 정복한 인류가 이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가르쳐준다. 하지만 어떤 결정론적인 미래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역사학자답게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하라리는 미래를 본격적으로 예견하기보다 인류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민감한 미래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자칫 빠지기 쉬운 과장이나 허구를 피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기술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하라리는 인본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신흥 종교인 ‘데이터교’가 들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인본주의와 과학 사이의 계약이 깨지고 새로운 포스트 인본주의 종교가 탄생하는 셈이다. 역사의 대기실에 앉아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데이터교는 언젠가는 미래의 지배적인 신화가 될지도 모른다. 데이터교는 이미 기술인본주의를 넘어 ‘기술종교’가 됐다. 오로지 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빅 브라더리즘(Big Brotherism, 독재통제주의)의 공포를 감내할 각오를 해야 한다.

하라리는 사뭇 암울한 묵시론적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호모 데우스>의 서두에서 밝힌 ‘체호프의 법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차용한 이 법칙은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라는 것이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황제나 왕은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70여 년 동안 인류는 이 치명적인 무기 사용의 유혹을 물리쳐왔다. 냉전의 1막에서 등장한 ‘총’은 아직 발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데이터 숭배’의 광풍이 몰아쳐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위협할지 모른다. 인류의 새로운 의제, 특히 신기술의 쓰임에 대해 늘 신중하게 검토하고 멀리 내다보는 비판적 안목을 길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과 더불어 떠오르는 호모데우스는 새로운 인류의 청사진으로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까. 하라리가 ‘데이터교 혁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 100년 뒤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사이버 펑크 소설의 개척자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해나가야 한다.

글 김종면(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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