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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생명 불어넣기도시재생 문화 공간
도시재생 문화 공간
도시가 되살아나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산업화와 도시화가 남긴 삭막한 공간들, 새로운 기술과 삶의 변화로 더 이상 수명을 이어가지 못한 공간들이 문화와 예술, 자연의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흉측하고 낡아 버려진 공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울러 소통하고 호흡하는 생동감 넘치는 ‘마당’으로 변신한 도시재생 문화 공간들. 그곳에는 오늘도 즐거움이 넘친다.
도시도 수명이 있다. 세월을 따라 낡아가고, 그렇게 늙어버린 도시의 공간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사람이 모여들어야 도시다. 도시는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한 공간이며, 사람들과 함께나고 자란다. 인간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도시는 무생물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 때문에 도시도 끝없이 호흡하고,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숨이 멈추고 인간과 멀어진 도시는 한낱 흉측한 구조물일 뿐이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었듯이 흉물이 된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도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 역시 사람이다. 죽어가는 도시의 공간을 찾아 숨결을 불어넣는 것, 바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다.

도시재생 문화 공간국내 최대 업사이클링 문화 공간, ‘서울새활용플라자’
도시의 공간도 시대에 따라 그 위치와 모습, 역할이 변할 수밖에 없다. 산업화 시대에 핵심기능을 담당하던 곳도 마찬가지다. 자본과 기술력과 노동력이 만들어낸 산물들로 한때 풍요를 누렸지만 새로운 문명과 기술, 기능 앞에서 병들고 버려졌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건강한 도시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운명적 선택이기도 하다. 그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가 어우러지는 것이다. 공원이나 녹지를 조성하는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일터와 놀이터가 공존하는 것은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생산과 소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놀이가 있는 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의 세운상가처럼 발상만 전환하면 얼마든 지 가능하다.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에 그 역할을 뺏기면서 자칫 괴물이 되어버릴 운명이었던 50년 된 세운상가는 도심의 ‘걸으면서 쇼핑과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물과 건물을 이어가는 1km의 공중 길은 종묘와 남산을 이어주고, 상가는 수리 장인들과 첨단과 혁신의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재생과 창의의 복합 공간이 되었다.

도시재생 문화 공간독창적 문화 공간으로 거듭난 부산의 ‘F1963’
기름 탱크와 폐공장, 쓰레기 처리장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10년 동안 죽은 공간이었던 마포의 석유비축기지도 3년 전 예술가와 기업, 주민의 손길을 거쳐 문화비축기지가 됐다. 버려진 가스 공장을 공연장, 예술 공방, 문화 복합공간, 카페로 바꾸고 꾸민 네덜란드의 ‘베스터하스 파브리크’가 그랬다. 예술가들과 기업, 주민의 손길로 비축기지의 오일 탱크는 6개의 문화 탱크로 옷을 갈아입었고, 빈 공터는 예술 시장과 즐거움 가득한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서울만이 아니다. 쓸모없어지고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부천의 쓰레기 소각장은 이미 2014년에 아트벙커 B39(소각장 벙커높이 39m)가 됐다. 재생이라고 해서 옛 흔적까지 완전히 지워버린 얼굴이 아니다. 그 공간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살리면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으로의 탈바꿈을 선택했다. 북 라운지에는 15년 소각장 역사와 문화 재생의 자료가 있고, 버리지 않고 일부 남겨놓은 소각장 시설은 투어 프로그램과 영화 촬영의 귀중한 무대가 된다.

도시재생 문화 공간재생과 창의의 복합 공간이 된 ‘세운상가’
45년 동안 와이어를 생산하다 멈춰버린 부산의 한 공장도 쇠 먼지와 녹을 털어내고 F1963(F는 팩토리, 1963은 공장이 지어진 해)라는 이름의 독창적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F1963 역시 아트벙커 B39처럼 본래 모습을 완전히 지워버린 ‘재생’이 아닌 자신의 역사와 냄새를 살렸다. 공장의 골조는 물론 ‘철의 공간’으로서의 시간과 기억도 남겨놓았다. 그 시간의 흐름 위에서 전시와 연극, 음악 공연이 펼쳐지고, 먹거리가 차려지고, 책과 커피 향기가 함께한다. 공간의 역사와 예술의 흥겨움, 대나무 숲과 자연생태공원에서의 사색과 낭만으로 도시와 사람은 ‘하나’가 된다.
도시 재생이라고 낡은 것을 마구 헐어버리고, 더 높고 크고 새로운 것을 지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재생이 아니라 오로지 경제·산업적 기능과 가치만을 추구하는 또 다른 황폐화일 뿐이다. 도시 스스로 인간을 점점 소외시키는 일이다. 삶과 문화를 토대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공간으로서 살아 숨 쉴 때 도시는 생명을 되찾는다. 그 생명의 회복이야말로 도시재생의 진정한 가치이며 도시와 사람, 기업과 사회, 자연과 문화가 함께 커가는 ‘새로운 길’인지도 모른다.


도시재생 문화 공간

글 이대현국민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ㆍ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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