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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팅힐(NOTTING HILL)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
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
골목마다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노천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문학을 이야기하고, 거리 음악가의 연주에 따라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앉은 여행자들은 눈을 감은 채 맥주잔을 높인다. 쥐가 들끓던 빈민가, 아무것도 아니던 언덕은 어떻게 런던에서 가장 매력적인 거리가 되었을까. 무엇이 이들의 오늘을 이끌었을까.
노팅힐(Notting Hill)은 도시 중심부를 살짝 비켜 런던에서 가장 큰 왕립공원 하이드 파크(Hyde Park) 서북부에 위치해 있다. 나도 그랬고, 노팅힐을 방문하는 많은 여행자는 1999년 개봉한 영화 <노팅힐>을 통해 이 지역을 처음 알았다. “유명하다는 건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죠. 잊지 말아요. 저도 한 남자에게서 사랑을 바라는 그런 평범한 여자라고요.” 영화의 주인공 안나 스코트(줄리아 로버츠)의 대사다. 흥미롭게도 이 대사는 영화 속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 안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노팅힐의 오늘을 은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런던의 대표 관광지이자 영국 제일의 부촌, 기존 문화에 반해 새로운 문화를 꿈꾸는 대안문화(Alternative Culture)가 꽃핀 거리 등 노팅힐을 수식하는 화려한 표현은 많지만, 이런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나면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차리고 그 속에서 꿈과 사랑을 찾는 동네, 아직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작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소박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무대이기도 하다.

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
내일을 향해 부르는 오늘의 노래노팅힐 번화가에 첫발을 디디면 아기자기한 가게와 곳곳에 문을 연 노천카페, 동네 사람들이 펼쳐놓은 중고품 교환 가판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걷다 보면 노팅힐 주민과 여행자가 어울려 뿜어내는 자유롭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마침내, 수작업으로 페인팅한 티셔츠를 팔고 있는 그림작가의 표정, 직접 만든 작은 도기를 가지고 나온 아마추어 도예가의 눈빛, 비록 거리의 무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을 쏟아내는 음악가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들이 모두 아직 작지만 한 번도 초라한 적 없고, 여전히 모호하지만 결코 헛된 적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후의 햇살이 지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노팅힐의 예술가, 음악가, 문학가들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아마도 저들은 집값이 비싼 노팅힐에 방을 얻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나 분명히 오늘의 노팅힐을 만들고 이끈 노팅힐의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1,3 노팅힐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한 가게들이다
2 작가가 페인팅한 핸드메이드 티셔츠

Nothing Hill, 아무것도 아니었던 곳사실 노팅힐의 영어 철자는 Nothing Hill이 아니라 Notting Hill이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옛 게르만족인 색슨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그들의 이름 중 일부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쨌든, 과거 노팅힐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라면 여기서 Notting을 Nothing이라 써도 무방할 것 같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범죄와 가난으로 날마다 홍역을 치르던 슬럼가였다. 런던에서 가장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동네로 명성을 날리게 될 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런던 인구가 늘기 시작하면서 버려졌던 불모지에 100여 년 전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다시 황폐해져 슬럼가로 변해버렸다. 당시 아프리카계 카리브해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인종 간 긴장감이 고조되는 위험 지역이 되었다. 실제로 1958년 여름에는 영국에서 인종 문제와 관련한 첫 번째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노팅힐 북동쪽 지역은 ‘런던에서 가장 최악의 거리’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새로운 문화를 잉태하고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1960~1970년대에 걸친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누군가는 지역에서 쫓겨났고, 새로 건설된 단독주택은 런던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변화가 오늘날 노팅힐을 만들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재개발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대신 노팅힐이라는 지역을 둘러싼 문화적 흐름과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1960년대부터 기존 대중음악과 대중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한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영국 얼터너티브 문화(Alternative Culture)였다. 상품이 아니라 예술과 영감의 표현으로써 문화를 강조하며 덜 상업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더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역설하던 이 문화가 바로 노팅힐에 자리 잡았다.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는 목마른 음악가와 예술가, 문학가들을 노팅힐로 불러들였다. 런던에서 손꼽히는 부촌 주택가 길 건너에 기존 이념과 질서를 반대하는 대안문화가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이 문화적 숨결이 오늘날 노팅힐로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모여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

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1 아르바이트생이 그려 내놓은 입간판도 아트스틱하다
2 노천카페에는 주민과 여행자의 구분이 없다
3 아무렇게나 차려진 오후의 바에는 흥과 자유가 넘친다

축제가 피어오르다한편, 과거 노팅힐을 둘러싸고 있던 인종 간 민족 간 차별과 갈등은 지역 축제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1958년 폭동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 해, 카리브해인이 밀집한 골목을 중심으로 소규모 카니발이 열렸다. 물론 규모는 초라했고, 공식적인 행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작은 축제가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이고, 연대하고, 함께 춤추고, 꿈꾸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규모가 커지더니 1965년 ‘노팅힐 카니발’이라는 이름의 공식 행사로 거듭났고, 성장과 변화를 거쳐 현재는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 여행자, 참가자를 불러 모으는 명실상부 세계인의 축제가 되었다. 오늘의 노팅힐을 이끌며 이 지역 문화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문화 영역만이 아니다. 2002년 런던의 한 조사 기관은 노팅힐 카니발이 지역사회를 넘어 영국 전역에 미치는 경제 효과가 한화 1,400억 원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어떤 노팅힐적인거리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청년의 뜨거운 손가락을 오래 보고 있다. 그가 문화의 반전이나 비타협적 예술 같은 걸 꿈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저 순전한 연주의 온도가 노팅힐을 충분히 데우고 있었다. 지역 청년과 여행자가 한데 엉켜 거리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근처 펍이나 카페에서 맥주, 음료를 사 들고와 금세 작은 파티를 벌인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고, 함께 취한다.
어떤 오늘에 도착하고 싶은가. 나는 어느 순간 이 질문을 떠올렸다. 어떤 곳에 살고 싶은가, 어떤 종류의 삶을 바라는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등과 연관된 질문이었다. 나는 정답을 몰랐다. 물론 노팅힐도 해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속삭임은 들은 듯하다. ‘노팅힐 같은 오늘이라면’, ‘노팅힐 같은 사람들이라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 흠뻑 맥주를 마셨다.

무엇도 아닌 언덕이 오늘에 닿기까지1 얼터너티브 음악 카페
2 거리 음악가들이 오늘의 노래를 부른다
3 런던 노팅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상점과 컬러풀한 자동차


글•사진 양정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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