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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길을 따라 역사의 퍼즐을 맞추다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vs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vs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총 열두 권으로 된 <역사의 연구>라는 역작을 남겼다.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스물세 종에 이르는 발달된 문명의 내적 원동력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스물두 종의 문명은 문자를 가졌고, 열아홉 종은 유라시아에 속했다. 문자가 없는 사회나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원시시대의 비교적 평등한 사회는 사라지기 시작했고, 더 나은 문명이라는 현대문명의 사회는 더 불평등한 사회가 된 것이다.
생리학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작<총, 균, 쇠>(원제 , 문학사상사 펴냄)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문명 연구의 목적은 특정한 문명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인류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석기시대에 주목하며,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 접근에 의문을 제기한다. 비유럽 민족,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뉴기니 토착민 간 상호작용 등을 비중 있게 다룬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기원과 역사를 살피며 대륙별 혹은 지역별로 어떻게 불평등한 발전이 이루어져왔는가를 밝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낳은 궁극적인 원인은 인종적·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지리적·환경적 차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저자는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렵채집인의 활동 무대인 1만3000년 전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각 대륙에 살던 인류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건은 야생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은 서남아시아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리아, 이집트에 걸친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를 비롯해 중국, 중앙아메리카, 미국 동남부 등지에 살던 민족은 일찍부터 야생 동식물을 길들일 줄 알았다. 옥수수, 소, 돼지 같은 동식물을 자신들의 삶 속에 들여온 것이다. 이것은 다른 민족을 앞설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 됐다.
여기에는 대륙의 축(軸)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유라시아는 대륙의 주축이 동서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런 만큼 작물화한 식물이 비슷한 위도에서 적응해가면서 널리 퍼져 나갈 수 있었다. 반면, 남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대륙의
축이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는 대륙은 그것이 용이하지 않았다. 이러한 대륙 축의 방향은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 문자나 바퀴 등 다른 발명품의 확장 속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가 대륙의 축을 중심으로 돈 셈 이다.
수렵채집 단계를 넘어 농경에 눈뜬 사회는 문자와 정부 조직, 제도뿐만 아니라 ‘총’으로 대변되는 무기, ‘균’으로 대변되는 질병, ‘쇠’로 대변되는 재료가 위력을 발휘해 그들보다 뒤처진 집단을 압도했다. 그 상징적인 예가 1532년 고작 168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8만 명이 넘는 대군을 거느린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고 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이다. 군사의 수는 열세였지만 쇠칼, 총, 말 등으로 무장한 스페인군을 돌, 곤봉, 물매 등으로 무장한 잉카 군대는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할 때까지만 해도 총보다 쇠칼, 창, 단검 같은 쇠붙이가 훨씬 중요했다.

변변치 않은 퀼트식 헝겊 갑옷을 입은 인디언을 도륙하는 데 예리한 쇠붙이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었다. 총은 1700년대에 이르러 유럽의 침략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 등과의 싸움에서 칼 대신 사용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잉카제국의 몰락과 식민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질병이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티푸스, 선페스트 등 유럽 고유의 전염병은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아프로-유라시아인들과 달리 그들에
게는 이 낯선 병원균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다. 처음 접하는 천연두로 인해 아즈텍 인구가 10분의 1로 줄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이후 한 세기도 되지 않아 아메리카 원주민은 거의 절멸 지경에 처했다. 바로 이 ‘이식’된 질병들 때문이었다. 콜럼버스 이전(pre-Columbian) 인디언 인구의 95%가 질병 등으로 인해 죽어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문명은 축복인가. 저자는 우리가 ‘문명의 발흥’같은 말을 사용하며 은연중에 문명이란 좋은 것이라는 식의 일방적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석기를 지닌 수렵채집인의 단계를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래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저자는 석기시대 사람들은 산업화된 국가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총, 균, 쇠>는 여러모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저자는 토인비를 언급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사뭇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스스로도 ‘중심부-주변부’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아울러 유라시아로 부르면서도 19세기 중반까지 아시아에서 나타난 기술과 지식을 마치 유럽인의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과도한 ‘환경결정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 ‘역사의 다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19세기 중반까지 아프로-유라시아의 변방에 위치한 유럽이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환경 차이’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vs
이스라엘 출신 군사 전문가 아자 가트(텔아비브대학교 에제르 바이츠만 국가안보 석좌교수) 또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수렵채집사회의 역사적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문명과 전쟁>(원제 , 고유서가 펴냄)이라는 근작을 통해 인류 역사에 대한 만만치 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인간은 호모속이 진화한 200만 년 중 99.5%에 해당하는 199만 년 동안 자연 상태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생물학적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은 인류 역사의 절대 기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인도 싸움을 했을까.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문화적 발명품인가. 저자 아자 가트는 ‘문명과 전쟁의 공진화’라는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라는 말을 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고 비폭력적이며 이타적이고 비경쟁적이며 서로에게 친절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평등하고 선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전쟁은 생물학적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루소파’에 가깝다. 루소의 대척점에는 <리바이어던>(1651)을 남긴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있다. 홉스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전쟁 상태로 보았다. ‘홉스-루소 논쟁’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렵채집인과 농경민을 하나로 뭉뚱그린 ‘원시전쟁’의 개념부터 풀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자 가트는 <문명과 전쟁>에서 농경 생활 이전 수렵채집 시절에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싸움은 인간의 DNA에 새겨진 필연적인 것이며, 또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칼라하리사막의 부시맨, 동아프리카의 하드자족, 중앙아메리카의 피그미처럼 평화로운 부족으로 여겨져온 수렵채집인들도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홉스식의 잔인성과 야만성의 이미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루소식의 ‘죄악 이전의 순수 낙원’을 믿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문명과 전쟁이 어떻게 맞물려 진화해왔는가를 밝히는 것은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핵심 포인트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문명과 전쟁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공진화해온 내력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군사학은 물론 진화론, 동물행동학, 인류학, 역사사회학 등 폭넓은 학제적연구를 시도한다.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를 만들어내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농업이 정착하기 이전 수렵채집 시절에도 싸움은 늘 있었다. 안으로는 지위 향상을 위해, 밖으로는 씨족이나 부족을 지키고 자원과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전쟁이 없는 인류는 가능하지 않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원제 , 사이언스북스 펴냄)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가를 밝힌다. 그의 결론은 인류의 역사에서 폭력성은 점차 감소해왔다는 것이다.
아자 가트 또한 그 같은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신중하다. “사회 안에서 폭력적 죽음의 비율이 낮아진 것은 대개 폭력이 승리했기 때문이지 어떤 평화로운 합의 때문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섣부른 평화를 경계하는 국가안보 전문가의 실천적 지혜가 읽힌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vs


글 김종면(콘텐츠랩 씨큐브 수석연구원·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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