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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을 위한 일보(一步)금강산업 이상민 대표
금강산업 이상민 대표
김해에 위치한 금강산업은 1997년에 설립된 자동차부품 가공 전문 업체다.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는 건실한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금강산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전체 직원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20년 전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이상민 대표는 누구보다 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편견 속에 감춰진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온 수장.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갖고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질주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어느 날 갑자기 바뀐 운명지난 2월, 금강산업은 지금의 위치에 사업장을 신축해 입주 개업식을 열었다. 1997년에 설립해 차근차근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상민 대표와 직원은 물론 관계자 모두가 참석해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않은, 그야말로 근사한 새 출발의 장이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화려한 인테리어도, 근사한 사무 집기도 아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움직임을 의식하지 않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문턱 없는 사무실 등이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금강산업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마주 앉은 이상민 대표의 오른손은 의수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만 보면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는 세속의 시선으로는 장애인으로 불린다.
“공직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외삼촌의 권유로 부산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셨습니다. 저는 스물한 살에 군대를 제대한 뒤, 장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지요. 당시는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 어떻게 납기를 맞추느냐만 따졌지 안전 의식이나 안전교육에 대한 개념조차 거의 없던 시절이었어요. 서른일곱의 나이에 그만 공장에서 오른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일로 저는 물론 온 가족이 큰 상처를 입었죠.”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하던 손을 잃고 중도장애인이 된 이상민 대표가 느낀 절망감은 얼마나 컸을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무게였을 터이지만, 그는 이겨냈다. 오히려 사업을 접으시려는 아버지를 설득해 자신이 회사를 물려받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누님께서 너는 성격상 남들과 교류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으니까 식당 같은 서비스업을 잘할 것 같다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 길에서 답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제조 계통 산업이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성공시키고 싶었죠.”
그는 부산의 공장을 정리하고 주 거래처가 있는 창원으로 회사를 옮겼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그리고 1차 밴더업체가 되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강산업 이상민 대표
세상에 외치는 희망의 메시지이상민 대표가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전자제품에서 자동차부품으로 종목을 바꾼 것도 그즈음이다.
“당시 스물세 살로 뺑소니차에 치여 장애인이 된 사람을 채용했는데 그 직원이 일을 정말 잘하고 또 착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장애인을 채용해야 되겠다’, ‘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숙명이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장애인을 많이 채용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조하던 전자부품은 두께가 굉장히 얇았어요. 장애인의 불편한 손으로는 취급하지 못할 수도 있고, 떨어뜨리거나 손톱으로 철판에 상처를 내면 바로 불량품이 되기 때문에 ‘이 일은 장애인에게 맞지 않겠구나’ 싶어 전자부품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자동차부품은 땅에 떨어뜨린 걸 주워도, 먼지가 묻어도, 상처가 좀 나도 상관없으니까 장애인 업종으로서는 괜찮겠구나 했죠.”
2차 밴더업체로서 이상민 대표가 금강산업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은 컸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평균수명이 12년 안팎인데 비해 21년째 꾸준히 사업체를 경영해온 것 자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자부심은 우리 직원들한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26~27명의 직원 중에서 10년 넘게 근속하고 있는 장애인 직원만 해도 8~9명이나 되니까요. 세 번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 발굴해나가면서 고객사나 우리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저희 회사에는 사장 같은 직원이 4명이나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급여를 주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영업 개발의 대표 사장이라면, 나머지 4명은 일하는 직원인 동시에 사장입니다. 어릴 때 왼쪽 손목이 절단돼 장애를 갖게 된 서문옥 이사. 19년 차 김성복 생산차장, 쉰한 살에 입사해 지금 예순아홉이 된 장영권 공무부장, 15년 차 정한상 영업차장이 바로 그들이죠. 저는 그렇게 오랫동안 어려움을 같이 이겨낸 ‘사장 같은 직원들’이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금강산업 이상민 대표금강산업 이상민 대표와 직원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더불어 사는 삶이상민 대표가 사업체를 운영해오면서 이겨낸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그것이다.
“저는 직원들에게 늘 당부합니다. ‘우리 공장에서 여러분이 자리를 못 잡으면 다른 공장에 가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공장에 있을 때 잘해봐라’라고요. 언제나 여기서 잘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고객사에는 장애인은 일을 잘 못한다는 선입견을 깨는 데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비장애인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불량을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같이 몸이 불편해 실력이 조금 딸리는 사람들은 일을 잘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틀을 바꾸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금강산업이 2차 밴더업체 중 꼴찌였는데 ‘어라? 3, 4등을 하네’, ‘좀 더 지켜보니까 1, 2년 뒤에 2등까지 올라왔네?’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대표는 단호히 이야기한다. 밴더업체여도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만 따라가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전 직원이 몇 년이 걸리더라도 1등을 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일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2~3위가 될 수 있었다면서 그는 고객사에 ‘장애인임에도 일을 잘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으로 꼽았다.
“우리는 고객을 신으로 섬겼고, 직원들은 어려움을 견디고 따라와줬습니다. ‘굵고 짧게 살자’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가늘고 길게, 콩 한 쪽을 나눠 먹더라도 오랫동안 나눠 먹기를 바라요. 그게 바로 우리 금강산업의 존재 이유입니다.”

금강산업 이상민 대표
IBK기업은행과 함께 간다인터뷰 내내 동석한 IBK기업은행 김해장유지점 이수관 지점장이 이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금강산업과 IBK기업은행 간 오랜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을 수 있는 동지의식에서 비롯된 미소다.
“금강산업은 보기 드문 기업입니다. 장애인 고용 우수 업체로서 우리 직원들과 금강산업은 패밀리 의식으로 묶여 있지요. 저 역시 업종은 다르지만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방문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갑니다. ‘동반자 기업’으로서 저희에게는 아주 소중한 고객이지요.”
이상민 대표는 가장 잊지 못할 기억으로 IBK기업은행과 3년 전에 주고받은 대화를 꼽았다.
“당시 지점장이 찾아와 패밀리 기업을 제대로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때 IBK기업은행을 소개하면서 비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곳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전까지 은행이란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래 은행을 수시로 바꿨는데 폭우가 와도 우산을 씌워준다는 말에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 메시지가 굉장히 좋아서 앞으로 꾸준히 거래하기로 마음먹었죠. 부산 시절 거래한 인연이 다시 희망으로 이어진 겁니다.”
이 대표에게 향후 비전을 묻자 두 가지 목표를 들려주었다. 하나는 금강산업을 앞으로 20년 동안 잘 유지하는 것, 두 번째는 1차 밴더업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고 싶습니다. 제게는 그 돈을 마련하려는 목표가 있어요. 또 저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고생한 직원들이 아웃소싱을 해서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직원의 절반이 다양한 장애를 가졌는데 남들처럼 해낼 수 있겠느냐고. 이상민 대표는 그저 묵묵하게 고품질 부품과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뢰로 그 답을 세상에 돌려주었다. 그것은 대표 혼자만의 영광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생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사회를 향한 커다란 메시지였다.
긴 인터뷰가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 이상민 대표가 오른손 의수를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천 마디 말보다 더한 그 손짓에 담긴 자신감, 그것이 바로 오늘날 금강산업을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

금강산업 이상민 대표금강산업 이상민 대표와 IBK기업은행 김해장유지점 이수관 지점장

글 이경희•사진 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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