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 문화 탐방 HOME
검색 분류
블로그 전송 카페 전송 밴드 전송 카카오스토리 전송 페이스북전송 트위터전송
#5 런던 템스 강변(AROUND THAMES)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
코벤트 가든에서 한껏 흥이 난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마임 쇼를 구경하고 있다. 반대편 테이트 모던 앞 광장에는 어른 몸보다 훨씬 큰 비눗방울을 쫓아 아이들이 힘껏 뛰어다닌다. 런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펼쳐진 두 광장에 무지개가 올랐다. 버려졌던 공간에 조금 다른 시선과 과감한 도전으로 피워 올린 무지개였다.
런던에서 가장 사랑받는 광장은 어디일까. 면적이나 역사 같은 지루한 수치 말고, 런던 시민들이 햇살 좋은 주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볍게 산책을 나가는 친근하고 다정한 광장 말이다. 런던에서 지내는 1년여 동안 인연을 맺은 현지 사람들이 주저 없이 손꼽은 곳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과 사우스뱅크(Southbank) 템스 강변이었다. 늦잠을 자고 정오에 가까워 창문을 열었는데, 이틀 동안 세차게 불던 비바람이 멈추고 귀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책 한 권과 생수 한 병을 가방에 넣고 느린 걸음으로 코벤트 가든을 향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코벤트 가든 시장 전경
아주 보통의 행복
템스강(Thames River)은 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체의 젖줄이다. 강 위에 놓인 런던 최중심 워털루 브리지(Waterloo Bridge)를 지나 조금만 오르면 코벤트 가든에 도착한다. 맑은 주말을 즐기러 나온 부지런한 가족이 먼저 광장을 채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명물은 스페인 음식 파에야(paella)를 파는 간이 식당인데, 족히 지름 1m는 될 법한 프라이팬 가득 파에야가 익어가고,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연신 군침을 삼킨다. 음식 맛이 유럽에서 가장 별로라는 악명이 있는 런던이지만 적어도 코벤트 가든만은 예외다. 파에야 식당 말고도 값싼 맛집이 곳곳에서 런던 시민과 여행자를 기다린다.
목욕용품과 액세서리가 있는 이스트 콜로나드(East Colonnade), 핸드메이드 디자인 제품을 전시한 애플(Apple), 다양한 생활용품을 파는 주빌리(Jubilee) 등 코벤트 가든 안팎에 위치한 작은 시장은 런던 사람들이 아주 일상적인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다. 소소한 간식거리부터 아기자기한 수공예품까지 대단할 건 없지만 매우 런던스러운 상품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코벤트 가든 중심부에 위치한 피아자(Piazza) 광장에는 1년 365일 거리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가 멈추지 않는다. 귀여운 강아지 분장을 한 예술가부터 거리 공연의 대표 격인 마임 서커스를 선보이는 이까지 쉴 새 없이 각자의 재능을 펼친다. 누구도 이 멋진 볼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웃고 손뼉 치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고 있으면 이 일상적인 행복이 얼마나 귀하게 반짝거리는지 알게 된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런던 사람들이 사랑하는 코벤트 가든의 일상적 풍경
귀족의 땅에서 모두의 광장으로
피아자 광장을 둘러싸고 오래된 붉은 벽돌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대부분은 1600년대 청과상이 장사를 하던 곳이다. 이곳의 과거를 돌아보면 오늘의 코벤트 가든이 어떤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며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코벤트’의 어원인 convent는 수녀원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 이 지역에는 커다란 농지가 있었다. 런던 수녀원을 위한 농산물을 생산하던 곳이다. 그런데 아마도 영국 역사에서 가장 ‘문제아’라고 할 수 있는 국왕 헨리 8세는 16세기에 이르러 어느 날 갑자기 수도원을 폐쇄하고 베드퍼드 백작 가문에 넘겨버렸다. 안타깝게도, 이후 코벤트 가든 지역은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고 쇠퇴한다.
반전의 계기는 시선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코벤트의 퇴락을 경험한 베드퍼드 가문은 결국 이 공간이 시민의 곁으로 돌아가야만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대규모 광장이 문을 열고, 그제야 다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유동 인구가 늘면서 상점, 주점, 목욕탕, 서점, 카페가 들어섰고, 이렇게 형성된 거리는 더 많은 가족 규모의 시민을 불러들였다. 1600년대 초에 이르자 채소상과 과일상이 이곳에 대규모 시장을 열기 시작했는데, 코벤트 가든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코벤트 가든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건 마임 서커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빠에야를 먹기 위해 군침을 삼키며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1600년대 후반 코벤트 가든은 영국 전역에서 가장 큰 청과물 시장으로 성장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런던의 음식 저장고라 불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청과물 시장은 템스강 남쪽으로 이전했지만, 그 자리를 공연 등의 문화 콘텐츠와 다양한 상점이 대신하며 여행자는 물론 런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광장으로 자리매김한다. 결과적으로, 방치됐던 코벤트 가든 지역의 새로운 미래는 귀족을 떠나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별 없이 누구나 들고 날 수 있는 광장이 열렸고,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의 코벤트 가든을 만든 원동력이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코벤트 가든에 위치한 작은 골목으로, 화려한 분위기의 집과 카페가 늘어서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남쪽 땅
워털루 브리지를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면 템스 강변을 따라 코벤트 가든과 또 다른 느낌의 광장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길게 펼쳐진다. 사우스뱅크 지역이다. 사실 ‘사우스뱅크’는 템스강의 남쪽 강변뿐 아니라 런던 남부 지역을 넓게 부르는 말이지만, 보통의 경우 웨스트민스터 브리지 이남을 시작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을 건너기 전까지 템스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가르킨다. 런던의 대표적인 박물관, 미술관, 랜드마크가 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 중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그저 방치된 강둑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랫동안 런던의 중심은 문화, 경제, 정치 영역에서 모두 템스강 북부 지역이었고, 역사적으로 런던을 상징하는 런던 탑, 버킹엄 궁,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등도 모두 북부에 위치한다. 이쪽 남부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지역이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날씨가 좋지 않은 런던이지만 봄 햇살을 맞아 도시가 찬란하게 빛난다.
버려진 발전소가 세계 최고의 갤러리가 되기까지
1994년 정부의 발표에 런던 시민은 크게 놀란다. 사우스뱅크에 버려진 거대한 뱅크사이드(Bankside)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 갤러리로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이었다.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런던 시내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지만, 1980년대 초 환경오염 문제로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흉물스러운 폐발전소가 어떻게 미술관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발상은 결국 놀라운 현대미술관을 탄생시킨다.
공사는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됐다. 내부는 완전히 개조되었지만, 외부의 오래된 붉은 벽돌과 굴뚝 등 높이가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 발전소 외관은 그대로 살려 미술관이 개장한다. 이 역시 전혀 새로운 발상이었다. 이전에 터빈을 두었던 커다란 발전실은 천장 높이까지 뻥 뚫린, 길이 100m, 높이 30m, 폭 20m가 넘는 초대형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발전소의 믿기 힘든 변화에 런던 시민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은 혁명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제 이 놀라운 현대미술 갤러리는 단숨에 방문자를 압도하는-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1. 테이트모던 광장의 비눗방울을 따라 아이들의 점프 점프!
2. 사우스뱅크 산책로 옆 골목에 있는 갤러리
3. 사우스뱅크의 런던아이는 세계 최대 높이의 대관람차다

사람이 모이고 행복을 축적하는
테이트 모던뿐 아니다.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이하며 런던시는 사우스뱅크 지역을 개발하는 대규모 사업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관람차 런던아이(London Eye)가 개장했다. 다양한 문화 시설과 카페가 차례로 들어서며 시민들이 모였고, 사우스뱅크는 이제 매년 4,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찾는 지역이 되었다.
길게 뻗어 있는 사우스뱅크 산책로 광장 중에도 특히 테이트 모던 앞 광장은 가족 단위의 시민이 즐겨 찾는다. 오늘은 비눗방울 아티스트가 큰 판을 벌였다.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잡으려고 높이 뛰어오르고, 부모들은 일상적 행복에 흠뻑 취했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서는 행복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규명하고 있는데, 그중 ‘긍정정서’라는 게 있다. 작고 일상적인 기쁨, 따뜻함, 만족감을 일부러라도 지속적으로 느껴야 전체 삶의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정서는 켜켜이 축적돼 이후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행복 자산이 된다. 테이트 모던 광장에서 하늘 높이 띄운 비눗방울에 햇살이 부딪히며 무지개를 만든다.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무지개를 따라 자신을 활짝 열고 두고두고 꺼내 쓸 행복을 모으고 있다.

조금 다른 시선으로 펼친 전혀 새로운 미래테이트 모던은 폐발전소의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미술관으로 개장했다.

글•사진 양정훈(여행작가)

댓글 보기



삭제하기
TOP
페이스북 블로그 유투브 인스타그램
검색하기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