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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
민화,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문자도’, 대관령박물관
세상에는 유명 그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화가도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이 있어도 알려지지 않은, 즉 이름 없는 화가는 많다. 그들은 전통 화풍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정식으로 그림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뚜렷한 화단도 없이 떠돌며,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한다.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서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조선 시대 후기에 그들은 정통 회화를 모방하고 풍자하는 그림을 그렸다. 바로 ‘민화’다.

자유와 상상력이 빚어낸 예술
민화에는 정통 회화에는 없는 것이 있다. 익살스럽고 소박한 형식,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성과 화려한 색채 등이다. 민화 연구 전문가인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민화는 자유”라고 했다. 어떤 권위와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때론 과감하게, 때론 무심하게 전통을 파괴하고, 굳어진 관습을 뛰어넘고, 형식을 재구성하면서 민화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정통 화가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자유로운 상상력의 산물인 민화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민족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의식을 잘 드러내고, 정감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민간미술 연구가 베트릭스 럼퍼드(Beatrix T. Rumford)의 표현을 빌리면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예술”인 셈이다.
민화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병풍이나 족자, 부채와 용기, 벽 등 생활공간을 장식하면서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예술적 존재나 가치 추구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했기에 장소와 쓰임에 따라 종류와 양식도 자유롭다. 온갖 새와 꽃, 물고기와 동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사시사철 풍속도 담고, 유명한 고사와 전설, 소설을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민화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기보다는 실용적 소재와 모습으로 늘 일상 가까이에 있어왔다. 한자의 획에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형상을 그린 그림은 아이들 교재이고, 진짜 서가처럼 병풍에 책장과 책, 거기에 문방사우까지 곁들인 대형 책거리는 운치 있는 장식물이다. 그리고 무당이나 점쟁이 집에 가면 어김없이 걸려 있는 무속도는 일종의 상징이다.

민화와 우키요에의 엇갈린 운명
이렇게 시대의 생활양식과 정신세계, 역사와 관습을 담고 있는 민화를 우리는 ‘속화(俗畵)’라고 부르며 한동안 저급 문화로 취급했다. 한국적인 삶과 정서가 짙게 스며 있음에도 정통 회화에 비해 품격과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그런 점도 있다. 서민의 생활양식과 관습에 바탕을 두다 보니 예술적 독창성보다는 인습적 되풀이에 그친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끄럽게도 민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다. 1950년대 말 그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민화의 시대적, 예술적 가치를 역설해 일본에 ‘조선 민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박물관들이 수집에 열을 올렸고, 도록을 발간하는가 하면, 에도 시대에 풍미한 우키요에(淨世繪)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우키요에도, 민화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예술이지만 둘의 운명은 엇갈렸다. 일본은 그것을 천대하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목판화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시대를 이어 생명력을 키워갔다. 화려하며 감각적인 화면 구도, 강렬한 선과 색의 대비, 관능적인 묘사와 환상적인 문양은 일본의 자연과 생활, 가부키와 연결되고 일상용품의 장식화가 됐다.
그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 예술을 넘어 문화 상품이 된 우키요에는 고흐, 마네,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을 열광시켰고, 유럽에 일본의 예술과 생활양식을 모방하는‘재퍼니즘(Japonism)’을 유행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우키요에의 각종 캐릭터와 문양은 일본은 물론 세계 곳곳의 음식점과 거리, 상품을 통해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일본의 이미지와 브랜드로 세계인에게 각인되고 있다.

민화,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책가도’, 가회민화박물관
‘까치호랑이’를 세상 밖으로
우리 민화의 개성이나 매력, 예술 감각과 다양한 변주는 결코 일본의 우키요에 못지않다. 자유분방한 화풍,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정감,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삶에 대한 애착과 동경, 기원을 담은 다양하고 독창적인 예술은 얼마든지 일상과 함께할 수 있다. 재퍼니즘을 뛰어넘는 코리아니즘 열풍도 헛된 꿈이 아니다. 시선만 달리한다면.
새로운 시선이 예술을 만들고, 그것의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기존 공식을 넓히고, 변형하고, 해체하면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형상과 주제를 뒤섞고 녹인 조선의 수많은 무명 화가도 그랬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시선으로 그들은 ‘까치호랑이’를 탄생시켰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 호랑이가 달력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곳곳을 다니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민화를 배우는 사람, 여기저기에서 민화 전시회를 여는 사람, 그 민화를 일상에 자연스럽게 접목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이름 없는 조상이 남긴 우리 고유의 ‘예술’을 이어가고,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이니까.


민화,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


글 이대현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콘텐츠랩 ‘씨큐브’ 대표,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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