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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르셀로나(BARCELONA)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
가우디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이 믿는 본질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으며 최하위 점수로 간신히 학위를 딴 괴짜 건축가는 결국 조국은 물론 세계 건축사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사람들은 이제 스페인을 ‘가우디의 나라’로 일컫는다. 그는 대체 어떤 본질을 꿈꿨을까. 무엇이 그를 20세기 가장 빛나는 위대한 건축가에 이르게 했을까.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바르셀로나의 아침 거리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빼곡히 서 있는 플라타너스나무 사이로 새들이 날아올랐다. 보행자 전용 가로수 길에는 많은 여행자와 시민이 오갔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사랑받는 거리 람블레스(Les Rambles). 평화로운 가운데 수많은 욕망과 바람이 교차하는 곳이다. 커다란 배낭을 멘 관광객과 그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가게, 여행자들이 건넨 동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십 명 예술가의 치열한 경쟁, 볼거리에 시선을 뺏긴 사람들의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는 소매치기까지 모두 여기에 있다.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는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길’이라며 이 거리를 찬양했다. 그러나 길은 고작 1.2km를 뻗어나가 멈추고, 대신 그의 바람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람블레스 끝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건축-성가족 대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1883년 첫 삽을 뜬 이후 1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건축 중이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130년이 넘도록 공사 중인 성가족 대성당.
끝나지 않는 교회성가족 대성당이 대체 언제 완공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이는 신이 인간계에 내려온다면 그(녀)가 머물 수 있는 지구 유일의 장소라며 극찬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아직 건축 중인 구조물임에도 이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건물이다. 역사뿐만이 아니다. 그 형태도 기묘하기 짝이 없다.
중앙 파사드(façade)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었다. 예수의 제자를 의미하는 12개의 거대한 첨탑은 보통의 성당에서 상상할 수 없는 해괴한 벌집 모양이다. 누군가는 옥수수를 연상하기도 한다. 건물은 곧 흘러내릴 것만 같다. 마치 신이 진흙을 막 반죽해 쌓아 올린 모습이다. 거대한 한 마리 유기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성가족 대성당의 모습을 두고 어떤 역사가는 인간의 떨쳐버릴 수 없는 본질적 불안을 읽어내고, 다른 비평가는 위대한 자연의 안정적 재현(再現)을 확인한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왼쪽)성가족 대성당의 장식 속에서 누군가는 근원적 불안을, 다른 누군가는 자연적 유기물의 완벽한 재현을 읽어낸다. (오른쪽)성가족 대성당 내부.
가우디라는 역사불안과 안정이 역설적으로 혼재된 미완의 교회. 그 시작에는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ni Gaudi y Cornet)가 있다. 스페인 건축사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바르셀로나 거리마다 기묘한 작품을 남긴 건축가. 미역에서 영감을 얻어 건물을 지어 올리는가 하면(카사 밀라, Casa Milà), 전에 없던 방법으로 온갖 유리를 조각 내 세상의 모든 빛을 내부로 들여놓거나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 수려한 곡선과 찬란한 타일로 구성된 공원을 세상에 내놓았다(구엘 공원, Parque Güell). 놀랍게도 이것 중 무려 7개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그의 모든 작품 중 성가족 대성당은 가우디의 청년기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거의 전 생애를 압도한 건물이다. 1883년 당시 고작 31세였던 가우디는 대성당의 건축을 의뢰받고,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고 싶었다. 그는 건설 현장 바로 옆으로 이주했다. 젊은 가우디는 자신이 이 성당을 위해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시간이 훌쩍 흘러 1926년 74세가 된 가우디는 성당이 완공되는 걸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가우디 작품 중 카사 밀라.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세상의 중심에 서기까지금속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 너머로 대장간에서 철과 구리가 녹고 연마되어 마침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랐다. 청소년기 건축의 꿈을 품은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대학교에 입학한다. 별난 감성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짝였지만 그의 재능을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당시 그의 담당 교수는 가우디가 천재인지 미치광이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최하위 학점을 주었다. 건축디자인 대회에서는 매번 낙선했고, 졸업 후 사무소를 연 이후에는 일이 없어 생계를 걱정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건축디자인이 아닌, 고작 상점의 진열대 디자인을 통해 만국박람회에 데뷔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때부터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여기서 평생 그를 믿고 전적으로 후원해준 구엘 백작을 만나고, 비로소 천재성을 꽃피운다. 이후 구엘을 위한 구엘 공원을 완공하는데, 몽환적인 형태와 구조의 공원은 시민들의 찬사를 불러일으킨다. 비로소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왼쪽)가우디의 작품 중 카사 바트요. (오른쪽)가우디가 설계한 구엘 공원의 상징적 동상.
가장 자기다워지려는 욕망성가족 대성당과 카사 밀라를 둘러보고 구엘 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간혹 가우디 작품이 섬세한 장식과 다양한 색채를 극적으로 살리는 아르누보 사조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아르누보만으로는 가우디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전문가가 더 많다. 훨씬 압축적이고, 초현실적이며, 관능적이고, 융합적이다. 형태와 선과 색은 한없이 자유로워 마치 거대한 유기체의 뼈와 살 같다.
파격과 혁신. 그는 당대 사람들과 문화 사조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어떤 시대적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바랐다. 고유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고 싶었다. 더 자기다워지고 싶은 욕망, 더 자신의 근원에 도착하고 싶은 바람. 그게 가우디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본질을 향한 끝없는 질문이 가우디의 파격과 창조를 잉태했고, 이단적 건축·이단적 설계라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결국 그에게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선물했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바르셀로나의 스페인 광장.
몇 가지 본질의 실체그렇다면 대체 가우디는 어떤 본질을 추구했고,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걸까. 물론 이에 대한 객관적 자료는 없다. 이제부터 그를 이해하고자 한 많은 후대의 상상과 추론이 개입하는 대목이다. 먼저 가우디는 무엇보다 고작 한 시대를 버티고 사라지는 디자인 트렌드를 뛰어넘고 싶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와 관련한 문헌에는 실제로 성가족 대성당을 구상하며 가능한 한 건축 기간은 길수록 좋고, 유구한 시간의 결과물로써 건축 작품이 되길 염원했다고 전한다. 그는 통시간적 디자인을 간절하게 욕망했다.
다음으로, 디자인의 본질은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가우디의 작품이 기묘한 이유는 그 속에 깊은 협곡의 선, 짐승의 뼈를 연상시키는 형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자연을 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가족 대성당 중앙부 천장의 장식은 식물의 잎에서 따왔으리라 추측한다. 해골의 원과 계곡의 날카로운 선도 성당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의 작품도 결국 자연을 넘어서서는 안 되며, 또 넘어설 수도 없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본질에 이르는 가우디의 욕망과 질문바르셀로나 항구에 사람들이 모여 광합성을 하고 있다.
그들 곁에 머물겠다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우디는 미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다가 성가족 대성당 앞에서 전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직후에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의식을 잃은 가우디의 옷차림이 너무 누추해 전차 운행원을 비롯해 현장에 있던 사람 누구도 그가 유명한 건축가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결국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열악한 무료 의료원에 이송된다. 가우디가 정신을 차린 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자 의료원은 발칵 뒤집혔다. 그의 지인들과 관계자들은 시설 좋은 병원으로 즉시 옮기려고 했으나 가우디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무료 의료원의 다른 병상에 누운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 곁에서 죽는 걸 선택했다. 가우디 건축은 대부분 자신을 평생 후원해준 구엘 백작과 부유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지만, 바로 이 때문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 의식과 연민이 강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라 추측되는 대목이다.
다른 가우디의 작품을 둘러보고 다시 람블레스 거리를 되짚어 바로셀로나 항구로 나왔다. 작은 항구의 덱 위에는 웃통을 다 벗은 청년 하나가 아무렇게나 누워 낮잠을 자고 있고, 연인들은 포개 앉아 서로를 탐닉한다. 바다를 건너 젖은 08바람이 불어오고, 갈매기들이 주변을 배회한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며 가우디가 결국 자연과 시간이라는 자신의 본질에 도착했다고 만족했을지, 아니면 기어이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건축을 통해 무엇보다 가장 자기다운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이려는 욕망과 질문은 그를 찾고 기념하는 수많은 후배 건축가들, 바르셀로나의 시민들, 여행자들을 통해 응답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글•사진 양정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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