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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원작 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같은 원작 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멜로 영화는 그 나라의 제도와 관습, 도덕과 사회구조, 민족 정서와 내세관에 영향을 받는다. 사랑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도 그렇다. 심지어 원작이 같더라도. 스토리와 배경이 조금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배우만 다른 영화를 굳이 다시 만들 이유도, 봐야 할이 유도 없다. 차이는 작품의 구조와 가치관, 무엇보다 감정 표현 양식과 느낌에 있다.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한 이치카와 다쿠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과 일본의 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비교해보자.
한국과 일본의 ‘눈물’ 차이한국의 가족 영화, 멜로 영화는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장애물도 높고 갈등도 격렬하고, 그것을 뛰어넘고 풀어내는 과정도 극적이다. 당연히 감정의 폭도 크다. 웃음도, 눈물도 흥건하다. 반면 일본 영화는 억제보다는 발산, 감정의 내면화보다는 비극의 직접적인 표현인 배우의 눈물 연기를 통해 관객을 동화시키려 한다.
일본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 듯 감정을 조금씩 들춰낸다. 그 과정이 어슬픈 듯하면서도 섬세하고, 겸손한 듯하면서도 집요하다. 그것으로 영화는 관객의 감성을 일관되게 하나하나 얻어간다. 아주 작은 소리가 모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슴속까지 울리는 방식이다.
한국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보다 15년 전 만들어진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에서 말없이 줄에 부적을 줄줄이 걸어 비가 계속 내리기를 비는 소년 유우지와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고도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아프게 전하는 미오처럼. 멜로 드라마의 장치인 신분, 관습,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벽을 가능한 한 높게 쳐놓고 그 자체로 비극성을 강조하는 한국 영화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한쪽은 즙이 흥건하도록 과일을 한입 가득 씹어 먹고, 한쪽은 과일을 작게 잘라 조금씩 먹으면서 오래오래 맛과 향을 음미한다.
어느 쪽이 좋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멜로 영화의 성패는 감정이입에 있다.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감정. 그래서 신분과 빈부와 가치관의 차이, 음모, 사고, 운명으로 그들의 사랑이 무너질 때 자신의 사랑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면 할수록 그 소망은 강렬해진다. 죽은 사람이 비를 타고 나타나는 비현실도 기꺼이 용서한다. 영화에서, 환상으로라도 나 대신 사랑해라.

같은 원작 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비슷한멜로 영화는 ‘카타르시스’다. 어떤 정서와 표현에서 그것을 느끼느냐는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르다. 관객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감정의 폭이 상대적으로 크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터뜨리는 한국 멜로 영화를 더 좋아하는 일본 관객이 있다. 미세하게 시간을 쪼개고 감정의 작은 떨림을 자잘한 일상과 정교하게 교차시켜 사랑을 ‘순수’로 만드는 일본 영화가 더 좋다는 한국 관객도 있다. 이 역시 자신들의 현실과 자신들의 영화에는 없는, 그래서 더 빠져보고 싶은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멜로 영화만이 아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간 한류 열풍도 그렇다. 다채로우면서 강렬한 빛을 보는 듯한 매혹. 한국 문화의 힘이다.
그냥 주인공 다쓰헤이가 노모를 겨울의 깊은 산속에 버리고 끝났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고사하고 초대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35년 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별나지도 않은 우리나라의 고려장과 비슷한 풍속을 끝까지 붙잡고는 기어코 ‘뭔가’를 찾아낸다.
“엄마를 버린 날 저녁, 다쓰헤이가 아내와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난로 앞에서 저녁을 먹잖아. 아내는 엄마의 옷을 입고, 며느리는 엄마의 오색 허리띠를 매고, 아들은 엄마가 되돌려준 꽁꽁 언 밥덩어리를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니 모든 고통과 아픔을 덮으려는듯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이것이 ‘인생’이거든.”
이 영화를 보고 진저리를 치며 친구가 한 말이다. 그 진저리는 놀라움과 부러움이었을 것이다. 작은 것을 파고들어 삶의 본질과 가치를 찾아내는 것 또한 우리와 일본 문화의 다른 색깔과 모양이며 힘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과일도 다른 곳에 가면 맛과 크기, 모양과 빛깔이 같지 않고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니 당연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같은 원작이라도 정서와 표현 방식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꺼리거나 무서워 할 이유는 없다. 탱자가 되면 어떻고, 감나무가 고욤나무가 되면 어떤가. 우리에게 없는 것이고, 우리 땅에 가장 맞게 바뀐 것인데. 그렇다고 본질까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같은 원작 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글 이대현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콘텐츠랩 ‘씨큐브’ 대표,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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