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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빚어낸 화려한 욕망의 축제그리디어스
그리디어스
옷은 몸을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리디어스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집중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울림에서 얻은 영감은 그 자체로 차별화 되는
하나의 개성이 됐다.

그리디어스1 ZIPPO 박물관 컬래버레이션
2 그리디어스와 레디의 컬래버레이션
3 비욘세 스타일리스트 타이헌트(Ty Hunter) 컬래버레이션 2018 F/W
4 비욘세 스타일리스트 타이헌트(Ty Hunter) 컬래버레이션 2018 S/S

욕망을 담은 패션비욘세, 패리스 힐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입은 옷.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설명할 때 따라붙는 말이다. ‘누가 입느냐’는 패션계에서 브랜드의 입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다. 비욘세가 그리디어스의 가죽 콤비 바이커 재킷을 입은 모습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을 때, 패션업계 지인들은 ‘비욘세는 돈을 주고도 옷을 입힐 수 없는 톱스타’라며 부러움을 표했다. 디자이너로서도 영광이었다. 세계적인 패션 피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선택했으니.
이전에도 글로벌 스타들이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리디어스의 박윤희 디자이너는 외국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것.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취업을 고민하던 시기에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의 한 패션 기업에서 밑바닥부터 업무를 경험하며 내공을 키웠다. 이후 경력을 인정받아 오브제와 한섬 등 쟁쟁한 패션 브랜드에 입성했다. 좋아하는 브랜드였지만 아무래도 회사라는 틀 안에서 자기만의 색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디자인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졌고, 2009년 과감하게 사표를 쓰고 ‘디자이너 박윤희’로 패션업계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고는 브랜드 그리디어스(Greedilous)를 론칭했다. 그리디어스(Greedilous)는 ‘greedy’와 ‘fabulous’를 조합한 단어로 환상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담았다.
“영문학 박사인 아버지께서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그리디어스는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가리켜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만든 옷을 직접 입고 다녀요. 그래야 다른 사람도 입을 테니까요.”
‘아름다움’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느낌이 공존한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천차만별. 강렬한 패턴이 인상적인 박윤희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언뜻 보기에도 평범하지 않다. 단지 평소와 다른 옷 한 벌을 입었을 뿐인데, 그 자체로 눈에 띄고 빛이 난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디자인한 옷은 존재감을 더해주는 일종의 마법 아이템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쉽게 얻을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싶다”라는 그녀의 다짐이 디자인에서 묻어났다.

그리디어스
스타일을 창조하는 프린트의 여왕섬유와 실루엣, 독특한 패턴이 조화를 이룬 디자인 덕분에 박윤희 디자이너에게는 ‘프린트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어린 시절 간접적으로 접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같은 고전 영화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가 입고 다니는 옷만 봐도 단번에 디자이너가 연상된다. 그녀는 자신만의 디자인 정체성에 매 시즌 특별한 콘셉트를 더해 브랜드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2018 S/S 시즌은 영화 <아바타>를 모티브로 완성했다. 이국적인 식물 패턴과 생동감 넘치는 컬러에서 마치 영화 속 풍경이 스쳐가는 듯하다.
“<아바타>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참 많이 나와요.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자연과 교감할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표현에 감동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봤는데 그 작은 화면이 갑자기 커다랗게 느껴지면서 그 감동을 디자인에 담고 싶어 가슴이 뛰었죠.”
얼마 전 뉴욕에서 선보인 2018 F/W 컬렉션의 콘셉트는 중세 시대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다. 역사 속 비극에 초점을 두기보다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스타일에 주목했다. 패션업계 특성상 한 해를 앞서 사는 박윤희 디자이너는 현재 2019 S/S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어떤 콘셉트인지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구축해온 그리디어스 스타일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디어스
한국의 샤넬을 꿈꾸며디자이너의 이름 석 자가 브랜드에 생명력을 더해주지만, 한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녀의 감각을 지지하는 박용걸 디자이너가 그녀와 늘 함께한다.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때론 그녀의 시야를 넓혀주는 매개가 된다. 물론 엉뚱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사실 디자이너로 훈련받는 과정은 꽤 힘들어요. 저는 경력이 20년이나 되었지만, 이제 일을 시작하는 디자이너들은 몇 년 사이에 쌓을 수 있는 경험의 격차가 무척 큽니다. 특히 감성적인 부분은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타고나는 거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는 것이기도 해요.”
그리디어스와 고객을 연결하는 바이어들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뉴욕의 패션 피플이 그리디어스의 옷을 접하기까지는 바이어들의 역할이 컸다.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40~50명의 바이어가 그리디어스의 옷을 구매해 바다 건너 고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요즘도 하루 두세 시간만 자고 일에 매달릴 정도로 패션을 향한 열정이 크다. 노력 없이 돌아오는 대가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까닭이다. 디자이너로 독립하고 상상해오던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있다. 그리디어스를 샤넬과 같은 역사 있는 브랜드로 키워가는 것이다.
“패션 문외한도 샤넬의 이름은 잘 알죠. 그런데 샤넬에 견줄 만한 명성을 지닌 우리나라 브랜드는 아직 찾아볼 수 없어요. 패션의 역사가 짧기도 하거니와, 성과 위주의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을 때,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이 계속 언급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을 갖춘 대기업이 브랜드의 가치를 존중하며 패션 산업을 키워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작은 날갯짓이 될 것이다. 그 파장이 언제쯤 세상에 영향을 미칠까. 끝은 알 수 없지만 상상은 마음껏 해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디딘 한걸음이, 어쩌면 패션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국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글 정라희•사진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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