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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스탄불(ISTANBUL)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
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 세계가 한 도시에서 만난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열렬히 탐닉함으로써 이 도시를 낳았고, 도시는 다시 두 세계에 영감과 활력을 가득 불어넣고 있다.
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기독교 교회 양식 속에 이슬람의 상징을 품은 묘한 풍경의 아야소피아
얼굴 가득 주름을 새겨 넣은 사내들 여럿이 물 아래 찌를 던지고 오후 내내 물고기를 낚고 있다. 마치 세월을 건지려는 듯 진중하게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가도 어수룩한 물고기 한 마리 걸려들면 크게 환호성을 지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뿌린다. 터키 사람들은 낯선 여행자에게 말을 걸고, 농담을 던지는 데 인색함이 없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먼 언덕에서 다리를 내려다보던 모스크(mosque)가 조금씩 노을에 잠긴다. 잠시 뒤 사원을 향해 쏘아 올린 조명은 도시에 몽환적인 밤을 불러온다.
갈라타(Galata) 다리를 건너는 동안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여기를 가운데 두고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때론 첨예하게 갈등하며 이스탄불을 파괴했고, 때론 서로 흠모해 융합하며 번영을 가져왔다. 어쨌든 그 모든 희고 검은 역사가 지금의 이스탄불을 만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스탄불이 이들 이방(異邦)의 문화를 새로 주조해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에도 의문을 가질 수 없다.

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왼쪽)보스포러스 해협과 모스크. (오른쪽)아야소피아에 대한 시기심으로 만들어진 블루 모스크.
동서에 놓인 다리인구 1,500만 규모의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s)을 기준으로 도시의 반은 유럽에, 나머지 반은 아시아에 속해 있다. 이스탄불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라고 부르는 건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다. 도시의 유럽 구역에는 상업지구가, 아시아 구역에는 주로 거주지가 형성돼 있다. 이스탄불을 여행한다는 건 고작 반나절 만에 거대한 두 대륙의 끝과 끝을 탐험한다는 뜻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도시는 없다.
이스탄불이라는 지금의 이름은 460여 년 전 오스만제국에 의해 지어졌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등으로 불리며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 동안 로마제국부터 오스만제국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정복자들은 이곳을 영토 확장의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이 도시를 수도로 삼고자 했던 장대한 욕망. 바로 이 욕망에 의해 수많은 예술품과 역사적 기념비, 놀랍도록 아름다운 건축물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여행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겨우 시간의 한 단면을 여행할 수 있을 뿐이다. 로마 시대, 비잔틴 시대, 이슬람 문화시기를 거쳐 응축된 도시는 여행자를 훌쩍 뛰어넘는 날숨을 내뱉는다.

두 세계를 건너온 두 개의 사원이곳의 상징인 두 개의 사원을 향해 걸었다. 먼저, 아야소피아(Ayasofya)를 앞에 두고 여기를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성당이자 모스크이며, 동시에 박물관인 곳. 6세기에 완공된 이후 1000년간 그리스정교의 총본산이었고, 이후 다시 500년은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예배당이었다. 현재는 터키 정부의 지정 박물관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6세기, 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는 예루살렘 솔로몬 왕의 교회를 뛰어넘는 아름답고 장엄한 성전을 갖고 싶었다. 이 바람은 거의 집착적 수준이어서, 1·2차 공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그라질 줄 몰랐다. 마침내 아야소피아가 완성되었을 때, 유스티아누스 1세는 “내가 드디어 솔로몬을 이겼다!”라며 경탄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아야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모든 유적 중 백미(白眉)로 꼽히며, 전 세계의 역사적 건축물 가운데 8대 불가사의에 들기도 했다.
아야소피아 맞은편에는 블루 모스크(Sultan Ahmed Mosque)가 자리 잡고 있다. 솔로몬에 대한 로마 황제의 질투심이 아야소피아를 낳았다면, 블루 모스크는 아야소피아에 대한 오스만 황제의 시기심이 잉태한 건축이다.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블루 모스크의 완공을 본 술탄 아흐메드 1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유스티아누스를 이겼다!” 서로 마주하고 서 있는 두 사원은 그렇게 무언가를 뛰어넘어 더 위대해지고 싶었던 정복자들의 강렬한 욕구에서 탄생했다. 건축가와 역사가들은 외관의 긴장감과 웅장함에 대해서는 블루 모스크의 손을, 건축학적 가치로는 아야소피아의 손을 들어주곤 한다.

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왼쪽)아야소피아의 훼손된 성화는 현재 복구 중이다. (가운데)실제 용도는 저수지였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궁전이라 불리는 예레바타 지하 궁전.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명으로 건축됐다. (오른쪽)이스탄불 최대 번화가 이스티크랄 거리의 음악가들.
환희와 통증의 벽이스탄불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세계 제국을 향한 정복욕에 의해 꽃핀 동시에, 같은 이유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던 도시다. 그 상흔이 아야소피아에 남아 있다. 사원 내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쯤 걷어낸 회벽 안쪽으로 손상된 채 갇혀 있는 기독교의 성화(聖畵)다. 그리스정교의 대주교가 머물던 성당은 제4차 십자군전쟁에 의해 약탈당하고, 이후 오스만제국이 들어선 다음에는 성스러운 그림이 가득 찼던 벽이 석회 반죽으로 뒤덮여 훼손됐다. 성당의 용도가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성상과 성물은 파괴되거나 유실되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두 세계, 두 문화, 두 종교가 탐했던 사원. 그래서 오염되고 파괴된 공간.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회벽을 걷어내고 기독교 성화를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데,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 아야소피아는 역사에서뿐 아니라 실제 내부 공간도 절반은 이슬람 유산이, 나머지 절반은 기독교 유산이 공존하는 유일무이한 사원이 된다. 한 공간에 두 세계를 부활시키는 작업은 여전히 충돌하는 동서의 신앙에 무언가 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근현대적 커피의 탄생이스탄불이 두 문화권을 잇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문화로 진화시켜 내놓았다는 가장 분명한 증표는 커피다. 오스만제국의 통치 기간 중 이스탄불을 거치며 커피는 유럽으로, 북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최초의 카페 역시 이 도시에서 문을 열었다. 터키 최대 실내 시장인 06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입구 골목 앞에
자리한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주문하자 주인인지 점원인지 가늠하기 힘든 중년 사내가 설렁설렁 커피를 만든다. 어설픈 영어로 “예전에는 여자가 내는 커피 맛을 보고 그녀를 사귈지 말지 결정했다”라며 농담을 건넨다.
커피의 기원은 아프리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만, 본격적인 커피 산업의 시작과 발전의 동력은 이스탄불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스만에 커피를 처음 소개한 인물은 술탄 셀림 1세다. 각성 효과가 있는 커피는 처음엔 이슬람 종교 지도자 사이에 정신 수양에 좋다며 입소문 났다. 이후 엄격한 교리 때문에 술을 금지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일종의 알코올 대체 음료로 통용되며 유행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형성된 커피 산업은 제국의 확장을 따라 다른 대륙, 다른 문화로 퍼져나갔다.

유럽과 아시아, 과거와 현재카페를 나와 천천히 그랜드 바자르에 자리한 수백 개의 상점을 구경하며 미로같이 얽히고설킨 골목을 걷고 있을 때, 저 앞에 아마도 10대 중반쯤 되었을 소년과 허리가 한참 구부러진 노인이 느릿느릿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긴 세월을 살아온 노인의 걸음은 한없이 묵직하고, 그녀를 부축하는 소년의 손은 조심스러우며 단정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고, 문화의 충돌과 흥망을 다 이겨낸 도시. 그 틈새에 고유한 문화를 피워 올려 다시 두 세계에 활력과 숨결을 불어넣었다. 여기의 과거와 현재가 노인과 소년처럼 서로를 버티며 지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장엄한 모스크의 부활과 거대한 두 대륙을 가르는 운하에 일렁이는 노을까지-동양과 서양, 어제와 오늘을 응축해 이스탄불은 존재한다.

두 개의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는(왼쪽)이스탄불 도심을 가로지르는 트램. (오른쪽)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사원인 블루 모스크. 인기 있는 관광 명소다.

글 양정훈(여행작가)•사진 이성훈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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