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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산토리니(SANTORINI)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
섬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지구에서 노을이 가장 아름다운 이아(Oia) 마을의 담벼락. 에게해(Aegean Sea)가 내려다보이는 자리마다 사람들은 서로를 기대앉았다. 동시에 얼굴 위로 찬란한 낙조(落照)가 번졌다. 복잡할 것 없다. 우리는 모두 동반자였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곳곳에서 운치를 더하는 풍차를 만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TV에서 본 한 음료 브랜드 광고. 수평선을 밀며 눈부신 바다를 아주 높이까지 감아올리는 바람, 햇살을 조각 내 입힌 것 같은 새하얀 벽과 하늘을 그대로 옮겨 칠한 듯한 파란 지붕으로 가득한 마을. 보고 또 봐도 도무지 현실 속 풍경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저기만큼은 꼭 가보고 싶다’. 그 바람을 오래 품었다. 그때 그 광고 속 섬이 눈앞에 있다. 신기루인가.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절벽이 파도 위에 장막을 드리우고, 눈보다 희고 깨끗한 도시가 까만 화산섬 위에 거짓말처럼 차려졌다. 드디어 산토리니에 도착했다.

산토리니의 보석, 두 마을그리스 본토에서 약 200km 거리. 에게해 남쪽에 자리 잡은 산토리니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섬이었으나 화산 폭발로 붕괴되고 그 나머지가 이룬 둥근 형태의 칼데라 지형이다. 칼데라 중 수면에 잠기지 않은 지역이 현재 산토리니섬이 됐다. 우리가 보통 산토리니라고 부르는 것은 본섬인 티라(Thira)인데, 하늘에서 보면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외에 무인도인 네아 카메니(Nea Kameni), 티라시아(Thirasia), 아스프로니시(Aspronisi), 팔레아 카메니(Palea Kameni) 섬이 모두 산토리니 군도에 속한다.
산토리니에 머무는 동안 절반은 피라(Fira) 마을에, 나머지 절반은 이아(Oia) 마을에 짐을 풀었다. 먼저, 피라 마을은 본섬 전체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으로 초승달 모양을 이룬 산토리니 지형에서 서쪽 면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인구가 가장 많고, 각종 상점과 번화가 역시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관광 인프라가 어느 곳보다 잘 갖춰진 곳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가 산토리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풍경은 대부분 섬의 최북단 이아 마을의 모습이다. 물가가 가장 비싼 곳으로, 특급 호텔이 아닌데도 방값이 비교적 비싼 숙소가 위치한다. 이아 마을은 특히 장엄한 저녁노을로 명성이 자자해 해 질 녘이 되면 다른 마을에 머무는 사람도 이곳으로 몰려오곤 한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왼쪽)피라 마을의 가게. 번화가의 상점도 3층 높이를 넘지 않는다.
(가운데)둥글고 푸른 아치형 지붕은 산토리니 건축의 전형이다.
(오른쪽)연인과 신혼부부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지만 동시에 비극의 역사를 품은 섬이기도 하다.

함께 지은 동굴집한국에는 신혼여행지로 가장 유명한 섬. 하지만 이곳이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토리니는 한때 그리스와 에게 문명을 통틀어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영광의 시절과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화산 폭발(Minoan Eruption)로 인해 문명은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폭발이었다. 원폭의 1,000배에 가까운 폭발력이었다고 전한다. 섬은 쪼개지고 상당 부분이 침몰했다. 용암 분출은 사흘간 이어졌고, 화산재로 인해 생겨난 자욱한 구름은 수백 킬로미터 상공을 뒤덮었다. 섬 전체에 사람 키보다 몇 배가 넘는 화산재가 쌓였다. 지금으로부터 3600년 전의 일이다. 생명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산토리니는 그 후 수백 년간 방치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다시 섬이 생명을 허락했을 때, 그리스인 개척자들이 하나둘 티라 섬에 찾아들었다. 그들은 이제 돌처럼 굳어버린 화산재 위에 집을 지어야 했다. 섬에 나무와 흙은 거의 없었고, 자연의 비극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기술을 진보시켰다. 그리스인들은 화산재를 파고 들어가 동굴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화산재 언덕에 하나둘 집이 생겨났다.
동굴집을 짓는 일은 개인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동굴이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켰고, 각자의 장비와 노동을 더해 집을 완성했다. 협동이 생기고,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마을이 탄생했다. 그 후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런 형태의 전통 가옥은 그대로 남아 여행자를 반기고 있다. 이아 마을에서 내가 지낸 숙소 역시 바로 이 역사에서 기원한 동굴집 형태였는데, 가혹한 자연재해를 넘고 삶을 뿌리내려 마침내 산토리니라는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서사의 시작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동행, 연대에 있었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왼쪽)마을은 대체로 절벽 위에 형성돼 있어 계단을 통해 절벽 아래 항구로 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에게해를 내려다보며 맞는 저녁노을은 다른 미사여구를 더하지 않아도 그대로 시가 된다.

그럼에도 자연과 나란히, 함께, 가까이이 외에 산토리니 하면 가장 먼저 손꼽히는 새하얀 벽과 푸르고 둥근 지붕의 건축 전형을 이포스카포스(Yposkafos)라고 부른다. 물론 지금은 매년 새로 페인트칠을 해 생생한 색감을 유지하지만, 형태와 색의 기원은 동굴집과 마찬가지로 그 옛날 화산 폭발과 연관돼 있다. 화산 암석 조각을 쌓아 벽을 만들고, 그 위에 화산재를 반죽해 하얗게 덮었다. 지붕은 상대적으로 약한 벽에 부담이 덜 가도록 둥근 아치형으로 만들었고, 하중을 견디기 위해 벽체는 시간이 지나며 더욱 두꺼워졌다.
때론 참담한 재해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결국 이 놀랍고 위대한 자연의 품을 벗어날 수 없음을 산토리니의 동굴집과 이포스카포스는 말해준다. 가혹한 자연으로부터 살아남고자 했던, 자연과 함께 살아내고자 했던 치열한 의지가 이 모든 것의 배경이다. 피라 마을과 이아 마을 골목을 헤매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준 가옥과 상점, 교회의 독특한 양식은 자연 위에 싹 틔운 인간의 건축이며, 동시에 인간을 투영한 자연의 결과물이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왼쪽)노을이 질 때가 가까워지자 아이들은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석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향한다.
(오른쪽)섬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동반자이다.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들어선 가게산토리니의 골목을 걷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데도 대형 해외 호텔 체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국적 프랜차이즈 상점이나 레스토랑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3층을 넘는 높이의 건물도 드물다. 대부분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가정집 스타일의 숙소, 로컬 레스토랑과 가게다. 건축양식 역시 앞서 설명한, 전통에서 기원한 동굴집 형태나 이포스카포스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역이 유명해지고 여행자가 많아지면 으레 거대 자본이 들어오고, 더 많은 자본을 향한 욕심이 여행지의 모습을 바꿔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산토리니는 자본에 기대는 위험한 번영 대신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고 지켜내 더 고유해지는 길을 택했다. 중앙정부와 산토리니시는 도시계획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두고 있다. 문의 크기, 집의 색깔, 전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에도 관여한다. 더 나아가 관광객 수도 제한한다. 다수의 이견이 있었지만 산토리니의 개성과 고유함을 지켜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건강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은 길에 놓여 서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집과 가게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짓고, 섬의 미래를 연다.

동반자, 같은 노을에 잠기는 이들해 질 녘 산토리니의 모습은 아름답다.
노을을 향해 걷는 길이아 마을에서는 석양이 가장 좋은 장소에 닿기 위해 누군가에게 길을 묻거나 지도를 펼칠 필요가 없다. 저녁이 되면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향, 같은 장소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여행자의 물결에 몸을 맡기면 어느덧 에게해가 아련하게 펼쳐지고 하늘과 수평선이 서로를 비벼 붉고 뜨겁게 끓어오르는 정경에 도착한다.
노을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이제 막 새로운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는 신혼부부의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소녀와 소녀가 풍차 언덕에 올라 서로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빗겨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노인들은 고요히 앉아 번갈아 담배에 불을 붙여 세월을 태웠다. 그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게 웃거나 눈인사를 건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드디어 낙조가 절정에 올랐을 때, 그 많은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저렇게 찬란하고 붉게 물들면 이제 누구라도 알게 된다. 우리가 비록 다른 이야기를 품고 여기에 왔으며, 한 번도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 적 없고, 아마도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지라도 같은 별 위에 같은 노을에 서로 얼굴을 물들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걸. 우리 모두가 벗이고, 동행이며, 동반자였다.


글 양정훈(여행작가)•사진 양정훈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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