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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와 <주토피아>편견, 누군가는 먼저 깨야 한다
편견, 누군가는 먼저 깨야 한다
편견은 무지의 자식이다. 편견은 판단하지 않는다. 맹목적 믿음 혹은 고정관념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집이 세다. 끈질기다. 아무리 대문으로 쫓아내도 어느새 창문으로 되돌아온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편견이란 어리석음의 으뜸”이라고 했다. 이렇듯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준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독설가로도 유명한 버나드 쇼가 로댕의 작품을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데생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구한 로댕의 작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혹평을 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요? 이건 로댕이 아니라 미켈란젤로 작품인데….”
편견은 그 자체로 차별이다. 비뚤어진 눈, 잘못 기울어진 눈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그런 눈을 가지고 있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화는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최초’가 되어 그것을 깨야 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 (감독 데오도르 멜피)에서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은 그렇게 했다. 1960년대 초반, 그녀는 백인 남성들의 냉대와 무시 속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미항공우주국 비행연구소의 전산원을 거쳐 정식 멤버가 됐다. 운 좋게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우주선의 발사와 대기권 재진입에 필요한 수치를 계산해내는 천재적인 수학 실력,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용기와 국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까지도 당연하게 여기던, 사소한 것 같지만 인종차별의 또 하나의 상징까지 부수게 했다. 가령, 화장실 앞에서 초를 다투는 급한 상황에 “유색인종 화장실이 있는 아프리카(다른 건물)까지 걸어가야 한다”라는 그녀의 외침에 연구소 부장인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은 망치로 화장실 간판을 모두 떼고 “이곳에는 유색인종 화장실도, 백인 화장실도 없다. 변기 있는 화장 실만 있다”라고 선언한다.

흑인 여성 최초의 항공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자넬 모네)에게도 넘지 못할 편견의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자격을 갖추려면 백인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심화 과정을 더 배우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앞서 나가려 하면 결승선을 옮기는 것”도 편견의 산물이고 차별이다. 그러나 그녀는 주저앉아 한탄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법원에 수업 허가를 신청한다. 재판정에서 그녀는 판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떤 판결이 판사님을 역사에서 최초로 만들까요?”
그들의 모습과 선택을 통해 <히든 피겨스>는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비난과 멸시를 이겨낸 그 ‘최초’가 있었기에 미국은 마침내 아폴로 11호를 달에까지 쏘아 올릴 수 있었고, 흑인과 여성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 새로운 세상과 문명은 그렇게 열린다.

동물 세계를 의인화한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감독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역시 그 ‘최초’ 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육식동물과 초식 동물이 아무런 갈등이나 희생 없이 모두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동물의 낙원,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주토피아에도 여전히 종(種)과 성(性)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남아 있다. 토끼 소녀 주디의 부모부터 그렇다. 경찰이 되려는 딸의 얘기를 듣고는 헛된 꿈이니 포기하고 홍당무나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이를 거부하고 ‘최초’에 도전하는 주디.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경찰학교를 수석 졸업하며 경찰이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녀에 대한 세상의 눈은 바뀌지 않는다. 코끼리, 코뿔소, 하마, 사자, 버팔로 등 선배 경찰들은 한낱 힘없는 토끼라는 이유로 그녀를 비웃고, 서장은 어차피 오래 못 버틸 것이라고 단정하며 범죄 수사가 아닌 교통 위반 단속을 맡긴다. 사기꾼 여우 닉조차 “인생은 애니메이션 뮤지컬과 다르다”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들의 편견을 여봐란듯이 깨주기 위해 주디는 닉과 자신이 도와준 생쥐 아가씨의 아버지 도움으로 열네 건이나 발생한 포유동물 실종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그 사건 속에 또 하나의 편견, 육식동물의 야수적 본능에 대한 초식동물의 의심을 확인한다. 닉 역시 어린 시절 그 편견으로 상처를 입고 꿈도 포기했음을 알게 된다.

<주토피아>는 편견을 극복하는 길은 서로를 긍정적으로 보고, 차이를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나만큼이나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르지만 같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달을 때 보다 나은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편견만 사라진다면 여우인 닉도 얼마든지 강직한 경찰이 될 수 있고, 주토피아도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묵은 편견이 사라지기 무섭게 새로운 편견이 찾아오고 사람들은 때론 무지로, 때론 이기심으로, 때론 편해서 편견이란 안경을 쓴다. 그 안경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차별을 평등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에 갈등과 상처를 낳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벗겨내거나 스스로 벗어버리는 ‘최초’ 가 되어야 한다. <히든 피겨스>의 캐서린·메리· 해리슨처럼, <주토피아>의 주디처럼. 그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

편견, 누군가는 먼저 깨야 한다
글 이대현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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