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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제국’에 어른대는 ‘거짓 아름다움’의 세계
프랑수아 쳉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욕망> vs 데버러 로우드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편견의 제국’에 어른대는 ‘거짓 아름다움’의 세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대중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특정 인물일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일까.
‘미(美)’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듯 겉모습만 떠오른다면 그것조차 편견일 수 있다.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은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착한 심성은 신용장”이라고 했다. 외모가 뛰어나면 그만큼 남의 소개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심성, 곧 마음의 본체가 참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에 도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Beauty is but skin-deep(미모란 단지 거죽 한 꺼풀에 불과하다)’이라는 서양 속담을 이야기한다. 겉모습보다는 마음씨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진리는 <개구리가 된 왕자>, <미녀와 야수>, <박씨전> 등 동화 속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클리셰이자, 누구나 머리로는 당연하게 이해하는 이치이지만 외모중심주의, 아니 외모만능주의가 기승하는 오늘날, 사실상 그것은 한갓 공염불이 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편견의 제국’에 어른대는 ‘거짓 아름다움’의 세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실체를 숨긴 ‘거짓 아름 다움’이 판치는,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회를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성찰하고 그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책이 중국 태생의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쳉의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 욕망>(길혜연 옮김, 뮤진트리 펴냄)과 미국 의 법학자 데버러 로우드가 쓴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권기대 옮김, 베가북스 펴냄)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름다움’의 개념은 Beauty, 즉 외면적인 미(美)가 아니다. 프랑수아 쳉은 이 책을 통해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미학적 성찰 혹은 명상을 펼친다. 저자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악’과 ‘아름다움’을 우리가 받아들여 야 할 두 가지 ‘도전’으로 규정했다. 아름다움의 존재 방식에 관심이 있는 저자는 “선에 뿌리내리지 않은 아름다움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 아름다움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편견의 제국’에 어른대는 ‘거짓 아름다움’의 세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는 장 오귀스트 도 미니크 앵그르의 ‘샘’이라는 작품이 있다. 19세 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관능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나신의 여인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샘’을 충분히 감상했다면, 이번엔 1937년에 벌어진 일본군의 난징학살에 대한 사진을 찾아보자. 조금 더 찾아보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사진들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당시 일본군에게 강제로 발가벗겨지고 무자비하게 능욕당한 여성의 사진을 본 후 ‘샘’을 본다면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던 여인의 이미지 위에 처참히 희생된 여인의 모습이 함께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선’이라는 가치가 바탕이 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름다울 수 없음을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프랑수아 쳉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미학 개념의 하나로 ‘인온(氤氳)’을 제시한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합하여 어리는 것, 다시 말해 통합적 상호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중국 전통의 철학적 잣대다. 저자는 또한 중국 사상이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지 않으며, 중국 문인화의 전통이 미학과 윤리를 구분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또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최고 영예로 꼽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정될 만큼 서양 사상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의 태생이 중국이기 때문인지 미학 사상에는 여전히 중국인의 혼과 정신이 묻어난다. 미학과 윤리의 하나 됨은 비단 중국 문인화의 전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악의 다른 이름인 거짓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데에도 유용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beauty bias)은 단순히 심미적 이슈에만 머물지 않는다. 법적·정치적 이슈로 다뤄야 비로소 외모로 인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진정한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게 데버러 로우드의 생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현대인이 외모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 한 가지 부작용이 바로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다”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경제적 관점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약 2년 전, 한 유명 생과일주스 체인점에서 낸 39여성 아르바이트생 채용공고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외모에 자신 있으신 분만 연락 주세요”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 한 구인 구직 전문 웹사이트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 1,000명을 대상으로 ‘채용 평가에 외모가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57.4%가 “외모가 영향을 미친다”라고 응답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외모지상주의의 폐단이 엄청나다. 특히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0%, 사춘기 여성의 60%가 다이어트를 한다. 섭식 장애는 사회문제다.

‘편견의 제국’에 어른대는 ‘거짓 아름다움’의 세계
신경성 거식증이나 폭식증은 다반사다. 게다가 이들을 응원하는 웹사이트 ‘신스피레이션(Thinspiration)’까지 생겨나 ‘이상 건강’을 부추기고 있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미국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은 재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드레싱 테이블 위에서 페르시아 향수 같은 화장품이 발견되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19세기 이야기다. 지금은 화장, 나아가 성형하는 남자의 시대다. ‘몸짱(buff look)’이 되기 위해 ‘보디빌더의 마약’ 스테로이드를 불법으로 복용하는 일도 흔하다.

다이어트 산업과 뷰티 비즈니스의 소비자 사냥은 멈출 줄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의 육신이 망가지고 영혼이 좀먹는데도 국가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의 지적대로 외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지 않고 사회 정의와 도덕을 말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법률적·정책적 조치를 통해 ‘편견의 대가’를 최소화할 전략을 강구한다. 남녀에 따라 맞춤식으로 적용되는, 성적 중립의 ‘그루밍(grooming·몸가축)’ 요건을 정하는 것이 그의 한 예다. 그러나 어떤 방책을 세우든 인위적 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의 신체적 열등감을 교묘하게 건드리는 업계의 저열한 ‘자존감 장사’ 행태가 지속되는 한 외모지상주의의 종말은 기대하기 어렵다. 여성들은 변함없이 요정처럼 날씬한 모래시계 몸매를 원할 것이고, 남성들 또한 지아이조(G.I. Joe) 인형 같은 근육질 몸매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영국의 무명 가수 수전 보일에 열광했다. 1억이 넘는 시청자가 영국판 <유브 갓 탤런트>에서 보여준 그 천상의 모습을 다시 봤다. 아무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루스 같은 목소리를 타고나도 ‘외모’가 달리면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는 사회는 얼마나 잔인한가. 누구도 외모에 기반을 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편견의 제국’은 힘이 세다. 우리는 너나없이 ‘아름다움 중독자(beauty junkies)’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지금 인간의 절대적 욕망인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글 김종면(콘텐츠랩 씨큐브 수석연구원·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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