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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나눔의 삶, 사랑의 감동은 멈추지 않는다
김수환 <바보가 바보들에게> vs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실천하는 나눔의 삶, 사랑의 감동은 멈추지 않는다
“장미는 언어로 말하지 않고 그윽한 향기로 말합니다. 향기야말로 장미의 언어입니다.”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간디식으로 말하면 ‘빈자의 성녀’ 마더 테레사 또한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랑으로 말한다.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테레사 수녀의 언어다.

‘우리 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의 언어 또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있을 수 없고 삶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또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런 ‘나’를 참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모든 존재의 삶과 평화와 행복의 절대 조건입니다.” 평생 세상의 낮은 곳을 살피며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책망하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사랑이 모자랐음을 부끄러워했다.

실천하는 나눔의 삶, 사랑의 감동은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처럼 고귀한 말도 드물다. 하지만 이 말처럼 흔하게, 아니 무분별하게 쓰이는 말도 없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테레사 수녀는 “그것은 언제나 행동에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사랑은 ‘동사’다.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의지이자 결심이고 약속이다. 관념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랑만이 우리에게 온전한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동정(同情)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어딘가 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동이 살아 숨쉬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 사랑의 실천을 꼭 종교와 연관 지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감동적인 사랑이 종교적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부유했다.
참된 사랑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웃을 위해 자 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 그것이 바로 참사랑이 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 갈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거룩한 사랑을 살다간 두 사람을 기억한다.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이태석 신부다.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 (산호와진주 펴냄)와 이태석 신부의 에세이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 펴냄).
이 두 책을 읽다 보면 절대 신앙과 절대 희생, 절 대 고독과 절대 긍정의 삶에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새 롭게 다가온다. 이들이 전하는 목소리는 같다. ‘사랑하라’는 것이다.

실천하는 나눔의 삶, 사랑의 감동은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바보가 바보들에게> 는 생의 덕목을 말, 책, 노점상, 웃음, 텔레비전, 성냄, 기도, 이웃, 사랑이라는 아홉 가지 항목으로 나눠 실천적인 삶의 지혜를 제시한다. 특 히 주목할 것은 사랑과 이웃에 대한 언급이다.
이웃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외식(外飾)을 버리 고 진심으로 대해야 참다운 이웃 사랑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앙으로서 실천해야 할 여러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이웃 사랑은 계명 중에서도 가장 큰 계명이며, 신에 대한 사랑도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이웃 사랑의 실천 없이는 신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이 책에 실린 ‘이웃 사랑은 모든 계명의 완성’이라는 제목의 글에 그 실마리가 있다. 이웃 사랑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성격의 것이니만큼 단순한 인간애나 박애가 아니라 예수가 그랬듯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테레사 수녀에게 가난한 사람이 왜 있느냐고 묻자 테레사 수녀는 “우리가 나누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역시 “우리가 서로 나눔으로써”라고 답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테레사 수녀와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나눔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은 예수님을 닮은 사제가 되 지 못했다고 자책했으며, 좀 더 가난하게 살 용기가 부족했다며 겸손해했다.
‘빈자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라는 제목의 글에 는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하는 테레사 수녀의 기도가 담겨 있다. 존경, 사랑, 칭찬, 명예, 찬양, 선택, 인정, 인기로부터 자유로운 ‘텅 빈 자아’를 갈망하는 소리 없는 외침이다. 테레 사 수녀는 인도 동부 서벵골 주 콜카타에서 평생을 바쳐 봉사했다. “허리를 굽혀 섬기는 자는 위를 보지 않는다”며 자신의 몸을 한껏 낮춰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자신이 활동한 인도 라는 국가에 맞춰 수녀복도 사리 모양으로 만들어 입으며 종교와 국가를 초월한 사랑을 보여줬다. 김수환 추기경 또한 한국의 첫 추기경으로서 종파를 초월해 널리 사랑받았다. 어설픈 타자화와 배제의 논리를 배격하고 종교 화합에 힘씀으로써 종교마저 포용과 관용을 잃어가는 부박한 시대에 귀감이 됐다.

이 책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길>을 예로 들어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권하기도 한다. <길>에서 천사 같은 여주인공 젤소미나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면한 채 짐승 같은 차력사 잠파노의 ‘부속품’이 되어 끌려 다니는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지 못하니 인생의 실의에 쉽게 빠진다. 성경은 갈 대 하나하나에도 그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인생의 의미는 찾아 나서지 않으면 찾아지지 않는다. 젤소미나의 삶은 ‘아쉬운’ 삶이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이 책의 전언이다.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발할 수 없다. 온 전한 사랑의 삶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만 가능하다.

실천하는 나눔의 삶, 사랑의 감동은 멈추지 않는다
남수단은 이 책의 표현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는 곳, 있는 것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닭도 영양 부족 때문 인지 다들 영계처럼 작고 한 달에 한 번 낳는 달 걀도 메추리 알만 해 1인분 프라이를 하려면 적 어도 서너 개는 있어야 한다. 문화의 장벽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분 사람이 자신의 나이도 생일도 모른다. 소나 여자와 관련해 사달이라도 나면 경찰과 군인도 못 말릴 정도로 사생결단 싸움판이 벌어진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의사를 먼저 찾지 않고 앙심을 품은 조상신의 장난 이라며 ‘쿠주르’라는 무당에게 달려간다. 만목수 참(滿目愁慘)이라고 할까. 낯설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이 불모의 땅, 가난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자연의 아이들’에게 문명 의 세례를 주고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가 불현듯 “청소년들과 함께하 는 삶의 여정은 맨발로 장미 덩굴을 걷는 것과 같다”라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교육가 돈 보스 코 성인의 말을 떠올린 것도 이해가 간다. 화려 한 장미는 가시를 감추고 있다. 그의 선교 여정 에는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며 바라만 보고 계 시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되뇌었다. 하루하루 전쟁하듯 보냈지만 시간이 갈수 록 그는 더욱더 영적으로 충만함을 느꼈다.

이태석 신부에게 나환자 마을에서의 봉사는 각 별한 의미가 있다. 버림받은 환자들은 그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들을 마지막 심판 때 주님 오른편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리 파견된 천사로까지 여겼다. 민감한 영혼을 지닌 그들과 친 구가 되기 위해 치료를 해주고 신발도 신겨주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화인과도 같은 그들의 상처를 달래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종교를 모 르는 아이들에게 “내가 섬기는 그분은 쿠주르 같은 미움의 신도 복수의 신도 아닌, 오직 사랑을 못해 안달하며 인간에게 뭐든 주고 싶어 하는 분”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실감할 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는 육체적 감각은 멀쩡하지만 정사(正邪) 감각이 마비돼 불의를 일삼는 이가 너무 많다. 온갖 것을 누리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그런 무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무서워해야 할 질병이다. 우리 정신을 뿌리째 썩게 만드는 ‘도덕적 나병 (moral leprosy)’이다.

이태석 신부는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석’을 밝힌다. 그는 남수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하늘나라의 수학’을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10분 의 1로 줄어드는 게 속세의 수학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하늘나라 수학은 가진 것 하나를 열로 나누면 오히려 천 배, 만 배로 불어난다. 신비의 셈법이다. 이 도저한 역설을 그는 굳게 믿었다. 그 에게는 끊임없는 나눔만이 행복의 원천이었다. 테레사 수녀도 김수환 추기경도 이태석 신부도 한결같이 ‘나눔’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실천하는 나 눔의 삶, 사랑의 인생을 배우지 않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글 김종면(콘텐츠랩 씨큐브 수석연구원·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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