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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수 감동 마케팅‘큐레이션 경제학’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갔을 때 한두 번은 당황한 적이 있을 것이다. 넓은 공간에 놓인 수많은 전시품이나 작품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관람할지 고민돼서 말이다. 이럴 때 큐레이터(curator)는 한 줄기 햇살과 같다. 큐레이터의 체계적인 작품 전시, 그 손길을 따라가면 작품 감상을 무난히 끝낼 수 있다. 최근에는 큐레이터의 영역이 확대되어 유통가에서도 볼 수 있다. 큐레이션(curation)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유통가에 큐레이션이 필요한 이유는 수백만, 수천만 상품이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중증 결정 장애(indecisiveness)를 피하기 어렵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하는 문제는 어쩌면 애교일 정도로 현대인은 수많은 상품 앞에서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 결정 장애를 단박에 해결해주는 큐레이션이야말로 소비자로서는 감동일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큐레이션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큐레이션 경제학’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동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경제의 시장 파이 역시 커지고 있다.

‘큐레이션 경제학’
큐레이션 푸드(Curation Food)“음식을 코디해드립니다.”
어색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다음은 어느 마트 풍경.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나요? 밤에 자주 깨나요?” 40대 주부 이성경 씨가 동네 마트 큐레이션 서비스 존에 앉아 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전문가는 이 씨에게 식습관은 물론 일상생활 버릇까지 꼼꼼히 질문한다. 앞서 체성분 측정부터 음주량, 흡연 유무 등 수많은 문항의 설문지까지 작성했다. 전문가는 설문과 질의응답을 토대로 이 씨에게 알맞은 음식을 처방해준다. 푸드 큐레이션 서비스다. 이는 식품 분야 전문가가 고객의 건강 상태, 맛 취향 등을 세밀히 분석해 맞춤형 건강 식단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것이다. “저도 모르던 나의 맛 취향을 전문가가 콕 짚어주니 정말 신기해요. 내 몸에 어떤 음식이 맞는지 알 수 있어 음식 선택에 큰 도움이 잡학사전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 씨가 이곳 단골손님이 된 것은 물론이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푸드 큐레이션은 업계의 주요 영업 전략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해외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모바일 프리미엄 마트 ‘마켓컬리’가 대표적이다. 마켓컬리의 전문 머천다이저(상품 기획자)와 상품 위원회가 원재료, 성분, 제조 시설 등 70여 가지 엄격한 기준을 꼼꼼히 따져 해당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을 선정해 판매한다. 좋은 재료, 신선한 재료를 솎아 판매하는, 일종의 큐레이션 판매로 호평을 얻고 있다.

‘큐레이션 경제학’
큐레이션 북(Curation Book)“범람하는 책, 처방해드립니다.”
책을 처방해준다고? 무슨 말인가 의아한 이도 있겠다. 의사가 환자의 건강 이상을 체크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리듯이, 세간에 나온 수십, 수백, 수천만 책 중에서 고객에 맞는 책을 골라 추천해주는 것이 큐레이션 북이다. ‘책은 직접 골라 읽어야 제맛’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필요 없는 서비스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중에 범람하는 책 가운데 자신의 기호에 딱 맞는 것을 고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홍대 인근에 자리 잡은 ‘사적인 서점’은 대표적인 ‘북 큐레이터’다. 이곳에서는 약국이 아닌데도 처방전이 필요하다. 주인은 손님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통해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책’을 직접 처방해준다. 책을 읽고 싶지만 어떤 것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책을 고르는 것조차 귀찮은 사람,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줄 책이 필요한 사람, 더 넓은 세계의 지식을 원하는 사람 등이 이곳의 손님이다.
아예 더 크게 영업하는 곳도 있다. 복합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사운즈한남(한남동)에 위치한 ‘스틸북스’다. 이곳에서는 북 큐레이터 10명이 하나의 테마를 정해 책과 물건, 전시, 프로그램을 연결해 소개한다. 고객들은 “대형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과 감성이 살아 있는 곳으로, 북 큐레이터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큐레이션 경제학’
큐레이션 쇼핑(Curation Shopping)큐레이션이 쇼핑 분야까지 점령했다. 쇼핑 자체야 원래 상품을 안내하고 판매를 유도하는 게 본질이지만, 스타일이 달라졌다. 기획전이나 파격 행사를 통해 상품을 줄줄이 나열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고객 개개인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쇼핑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앞세운 큐레이션이 요즘 쇼핑가의 대세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11번가는 AI를 활용한 맞춤형 상품 제안으로 호평받고 있다. AI는 고객의 상품 검색과 구매 이력을 통해 소비 스타일을 단박에 파악해 고객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준다. 똑똑한 AI가 고객의 기존 구매 습관 등이 반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에 상품을 제안하니 고객도 미처 몰랐던 자신의 기호를 발견하곤 한다. 이 상품도 좋아 보이고, 저 상품도 좋아 보여 선뜻 고르기 어려운 많은 이의 ‘결정장애’를 AI가 해결해주는 셈이다.
큐레이션과 쇼핑의 결합이 주목받다 보니, 쇼핑몰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생겼다. ‘포털>쇼핑몰>로그인>장바구니’를 찾아가며 쇼핑하는 이가 아직도 있다면 시대에 뒤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앱에 상품 키워드와 나이 등 서너 가지 정보만 입력하면 그동안 쌓인 접속 기록, 검색어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순식간에 고객 취향을 저격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안내한다.

‘큐레이션 경제학’
큐레이션 숍(Curation Shop)“백화점식 매장(Shop)은 가라.”
요즘 잘나가는 매장을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큐레이션 숍을 가면 더욱 그렇다. 대형 마트에는 생수 한 품목만 수십 종이다. 두부 한 모를 사려고 해도 국산 콩을 썼느냐 수입 콩을 썼느냐, 찌개용이냐 부침용이냐에 따라 고르고 또 골라야 한다. 돈 100원, 아니 수십 원 차이도 고려해야 하지만 품질 여부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어떨 때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큐레이션 숍은 이런 고객의 두통거리를 해결해주기 위해 생겼다.
이런 곳 중 한 곳이 롯데마트 수원점에 문을 연 ‘마켓 D’이다. 이곳은 소비자 구매 빈도가 높은 1,000여 개 안팎의 주력 상품을 선보인다. 머리카락 개수만큼이나 많은 상품에 피곤한 고객을 위해 솎고 또 솎아냈다. 이 중 60%에 달하는 600여 개 상품은 한 달 간격으로 큐레이션을 통해 교체한다. 단골인 40대 주부 김경숙 씨는 “상품이 너무 많아도 골치 아픈데, 사고 싶은 것만 집중 배치해놓아 자주 들른다”라고 말했다.
상권에 따라, 소비자 기호에 따라 매장을 큐레이션 형태로 구성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다. 올리브영 명동본점 1층은 외국인 관광객 선호를 반영해 마스크 팩과 클렌징 제품 위주로 구성했다. 강남본점 1층은 색조 화장품, 대구본점은 SNS 화제의 상품 위주로 꾸몄다. 두 곳 모두 2030 고객이 타깃이다. 큐레이션은 이렇듯 매장 색깔을 180도로 바꿔놓는다.



글 김영상(헤럴드경제 소비경제섹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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