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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위로 받다, 치유하다슬로우파마씨
슬로우파마씨
식물은 위대한 힘을 지녔다. 책상 위에 놓은 작은 화분 하나가 팍팍하고 건조한 직장 생활에 한 줄기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불쑥 내민 작은 선인장 하나가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를 불러내기도 한다.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로 꼽히는 브롱크스는 식물 덕분에 학생과 사회 전체가 변화를 맞기도 했다.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설득하고 위로하는 식물, 이 놀라운 식물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슬로우파마씨(SLOWPHARMACY)를 찾아갔다.
슬로우파마씨
도시인에게 주는 선물서울 마포구 상수동 대로변에 슬로우파마씨가 있다.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온전히 받고 있는 슬로우파마씨는 삭막한 도로변에 신기루처럼 자리 잡고 있는, 말 그대로 오아시스였다. 녹색과 연둣빛으로 가득한 그곳은 길 가던 많은 사람의 시선을 넘치게 낚아챘고, 뭔가에 홀린 듯 사람들은 슬로우파마씨의 문을 열었다.
따라 들어간 슬로우파마씨는 잠시 바깥세상을 잊게 만들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식물이 있었던가. 식물은 다양한 토기와 비커, 화분에 담겨 있었고, 그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자아내는 공기는 이곳에 꽤나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망을 무의식 속에서 일깨웠다.
“슬로우파마씨는 식물로 공간을 연출하는 플랜트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저희는 상업적인 공간 연출, 실내 조경 작업뿐 아니라 1년에 네 차례 정도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전시를 하며 팝업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어요. 이곳 상수동 쇼룸은 얼마 전에 오픈했는데 개인 고객과도 만나고 식물과 관련한 다양한 클래스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남편 정우성 실장과 함께 취재진을 맞이한 이구름 대표가 공간에 대해 설명했다.
슬로우파마씨라는 독특한 이름은 이 대표의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됐다.
“처음 브랜드 이름을 만들었을 때 많은 분이 ‘식물을 파는 곳에 왜 약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가’ 하고 의아해하셨어요. 브랜드를 만든 당시를 생각해보면 저는 너무 바쁜 일상과 그동안의 회사 생활에 지쳐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이 빠르게 달리듯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 삶에서 식물을 키우면서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느린 행동 속에 자연스레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뿐 아니라 도시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식물을 키우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해서 ‘슬로우+파마씨’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슬로우파마씨
식물을 처방하다이 대표에게 식물은 어린 시절부터 참으로 가까웠다. 어머니가 오랜 시간 꽃집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곧 식물이자 꽃이었고, 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존재였다. 힘들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즐겁고 행복하게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 대표는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살포시 미소 지었다.
사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식물 다루는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던 것.
“저는 원래 광고 회사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길게 여행을 다녀오며 삶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있는 게 온통 식물이었어요. 꽃이 아닌 식물을 전문적으로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식물은 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식물 모두 각자의 스토리와 성격이 있어 꽃처럼 재미있거든요.
식물과 디자인을 접목해 다른 사람도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의 식물, 그의 쇼룸이 유독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이유를 찾았다. 특유의 꼼꼼하고 열정적인 에너지에 디자인을 향한 그만의 깐깐한 요소가 결합한 덕분이리라.
손님 하나가 매장 안을 이리저리 기웃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 대표가 손님 옆으로 빠르게 다가간다.
“제가 혼자 사는데 식물을 잘 못 키워요. 제가 손대면 다 죽어버려서···.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게 있나요? 키우기 어렵지 않은 걸로요.”
이 대표가 손님의 손을 잡아끈다. 수줍은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하듯 그 모양새가 천진하고 아름다우며 또 열정적이다. 이 식물은 이렇고, 저 식물은 저렇고, 물은 어떻게 줘야 하고, 어디에 놓아야 하고···. 결국 손님은 오래도록 고민한 끝에 이 대표의 조언에 따라 작은 식물 친구를 하나 얻어 간다. 이곳이 처방을 내리는 약국인 이유다.
“제 경험상 식물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요. 크게 자극하기보다 내 공간에 함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따뜻함을 주는 것 같아요. 현대인은 아무래도 너무 바쁘게 살고 빨리 흘러가는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다 보니 많이 지쳐요. 몸뿐 아니라 정신도 지치죠. 그런 순간에 식물이 함께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좋아질 거예요.” 이 대표가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슬로우파마씨
어렵지 않아요, 관심을 가져주세요많은 사람이 식물을 키우는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화원에서 알려준 대로 물도 열심히 주고 햇빛도 쐬어줬는데, 심지어 선인장도 자기가 키우면 죽어나간다고 속상해한다. 이로 인해 아예 식물 키우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난 식물을 잘 못 키우겠어’ 하시는 분이 많아요. 자꾸 식물이 아프거나 죽는다면 아무래도 잘 키울 환경이었는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식물에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해요. 대부분 식물을 처음 구입하셨을 때는 많은 애정을 갖고 관리하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 묻혀 식물이 조금 아픈 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분이 많아요. 식물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대표는 키우는 식물을 자주 들여다보고 물이 부족하거나 많진 않은지, 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바로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IBK기업은행 고객을 위한 식물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중소기업 고객이 많은 만큼 스트레스 해소나 마음의 안정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말이다.
“사실 식물을 공간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마음의 안정이 되는 경험을 하실 것 같아요. 딱 ‘이 식물이 좋습니다’ 하는 것은 없지만, 예를 들면 향이 나는 유칼립투스도 좋을 것 같아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거든요.”
슬로우파마씨는 식물을 이용한 공간 스타일링에 있어서 가장 사랑받는 업체 중 하나로 꼽히지만 치열한 생존 시대에 경쟁을 거부하는 회사다. 조금 느리고 더디게 가더라도 경쟁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경쟁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그렇게 나온 디자인과 기획은 그 누구에게도 좋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저희를 있는 그대로 믿고 맡겨주시는 일 위주로 집중합니다. 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내 친구의 일이다’ 생각하고 오지랖을 부리며 일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게 이제 와서는 큰 장점이 된 것 같아요. 결국 모든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니 진심은 통하겠죠.”
이 대표에게는 구름처럼 높고 어여쁜 꿈이 있다. 온실을 만들어 아끼는 식물을 땅에 심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은 아끼는 식물을 비닐하우스에 보관하면서 저희만 보는데, 그러기엔 자랑하고픈 식물이 정말 많아요. 또 쑥쑥 자라 비닐하우스를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요. 가까운 시일에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온실을 만들면 좋겠어요. 그리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산이 있는 곳으로, 서울이 아닌 숲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많은 분이 오셔서 체험하고 쉬고 갈 만한 공간을 만들고 콘텐츠도 제공하고 싶습니다.”
식물을 사랑하고 식물에 몰입하며 식물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사람, 그리고 그 기쁨을 다시 현대인에게 돌려주려 애쓰는 곳. 슬로우파마씨는 그렇게 회색빛 도시에 위로와 위안을 선물하고 있었다.

슬로우파마씨


글 이경희•사진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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