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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메세나문화 예술의 ‘오아시스’
문화 예술의 ‘오아시스’
얼마 전 서울의 한 호텔 콘서트홀에서 팝페라 가수들의 청아한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10월의 가을밤을 수놓았다.
최고 실력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에이컬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지난해 대한민국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각계각층 100명의 리더로 구성된 메세나 단체인 에이컬쳐메세나코리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메세나(Mecenat). 로마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에서 유래한 기업의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이다. 메세나는 고대부터 그 나라 문화 예술을 이끌고 풍성하게 했다. 처음 시작한 로마, 그 소중함을 일찌감치 깨달은 프랑스가 그랬다. 이탈리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와 문인을 적극 후원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석유 재벌 록펠러가 앞장섰다. 재단을 만들고 예산의 절반은 문화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전 세계에 메세나를 퍼뜨렸다. 우리도 있다. 이미 24년 전 경제5단체가 한국메세나협회를 만들었고, 지금 230여 개 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수가 훨씬 많다. 이와 별도로 독자적으로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기업도 300여 개나 된다. 지방이라고 무관심하지 않다. 경남메세나협회는 6년 연속 100개 팀 이상을 지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경기 침체와 5만 원이 넘는 초대권 구매 등의 협찬 활동을 금지하는 ‘김영란법’으로 지원 규모가 조금 줄었음에도 한 해 2,000억 원(2017년) 가까이 된다.
영역도 다양하다. 현대백화점은 춘천마임축제 후원은 물론 전국 현대백화점에서 마임과 클래식, 마임과 현대무용의 컬래버레이션, 마임 광대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연주단인 한빛예술단의 문화홀 순회 연주를 열었다. 단순히 예술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이나 인프라 지원 등 일차원적 지원에 머물지도 않는다. 예술 지원 매칭 펀드로 경제 여건을 더욱 확장해주고, 미래의 예술가 양성을 위한 교육도 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H-온드림펠로’처럼 문화 예술 분야의 청년 기업가 육성으로 고용 창출을 유도하기까지 한다.
사회복지 차원의 문화 향유 불균형 해소도 기업 메세나의 역할이다. 종근당이 8년째 이어가고 있는 ‘오페라 희망 이야기’는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을 위해, ‘CJ스테이지업 나눔 문화’와 ‘크라운-해태, 달콤한 국악’은 문화 소외 지역 청소년을 위해 병원, 학교 등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소외·빈곤 계층에 공연이나 전시 관람권을 나눠 주는 ‘즐거운 나눔 티켓’도 만든다.

예술이 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 없이 존재할 수도 없다. 가난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재능을 꺾어버리고, 문화 예술이 주는 정신적 풍요와 기쁨을 앗아간다. 기업 메세나는 문화 예술의 공급과 수요 양쪽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몇몇 인기 있는 대중 예술을 제외하면 늘 갈증에 허덕이는 문화 예술이 그 물을 마시고 힘을 내고, 세상을 품고, 시대를 가로지른다. 예술가들은 마음껏 자신의 창의적인 예술 세계를 펼치고, 모든 국민이 골고루 그것을 만나고 나눈다.

출발은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듯이, 기업 메세나 역시 아무런 조건 없는 지원이고 나눔이다. 문화 예술, 예술가 그리고 국민에 대한 애정이고 자부심이다. 메디치 가문과 록펠러도 그랬다. 누군가 말했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다른 지배자들처럼 으스대며 예술가를 후원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에 빛나는 한 장을 장식하기에 충분하다”라고. 꼭 돈이 많아서도 아니다. 그들은 무엇이 자신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지 보고 느낄 줄 아는 눈과 마음이 있었다.
생색을 내거나 계산적이지 않기에 메세나는 서로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기업은 예술적 감성과 창의적 감각이 살아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문화 예술은 건강하고 향기로운 생태계를 만든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열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정신적 양식을 얻는다. 많은 기업이 제품에 예술을 접목해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 ‘아트 컬래버레이션’도 메세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상생’이다.
이런 만남, 이런 상생은 다다익선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문화 예술 분야는 아직 작은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곳과 사람이 많다. 사심(마케팅)이 없다면 ‘김영란법’도 겁낼 이유가 없다. 협찬받은 값비싼 공연 티켓보다 문화 예술을 부담 없이 즐길 기회를 더 자주 주는 ‘문화 접대’라면 일석삼조다.
당장 사는 것이 팍팍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수록 문화 예술은 뒷전이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문화 예술보다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과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도 없다. 그것을 소중히 가꾸고 나누려는 메세나는 기업의 또 하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면서 2006년부터 지금까지 275억 달러(약 30조 원)를 교육·문화·예술 분야에 쓰도록 기부한 미국의 갑부 워런 버핏은 말했다. “의미 있게 돈을 쓰는 것이 행복”이라고. 그의 말대로라면 메세나는 문화 예술의 행복에 앞서 기업의 행복이다.


문화 예술의 ‘오아시스’
글 이대현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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