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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디지털에 날개를 달다
디지털에 날개를 달다
누구도 예상 못했다. 잊고 지낸 40년 전 한 인형이 이런 모습으로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가 이미 중년이 되어버린 친구의 동심을 되살리고, 비루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가서 어른이 더 감동하고 돌아왔다는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마크 포스터 감독)의 이야기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니 당연히 ‘디지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공의 세계가 아닌 실제 풍경과 옛 친구인 크리스토퍼 로빈(이완 맥그리거 분)의 라이브 액션 속으로 들어왔고, 비록 디지털로 재탄생했지만 온기를 다지고 왔다. 세월에 낡고 해져 서글픔과 안쓰러움을 간직한 ‘봉제 인형’으로. 친구들인 피글렛, 티거, 이요르, 캉가, 토끼, 올빼미도 그렇다.
이렇게 살아 있는 냄새가 나는, 아날로그적인 포근하고 친근한 영상과 푸가 던지는 감성적이면서도 긍정적이며 다음과 같은 대사가 지치고 메마른 현대인에게 용기와 힐링을 준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되지.” “지금이 인생이야. 이번 주말이 당신 인생이고,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야.” 만약 푸가 세련되고 매끈한 디지털로만 다시 찾아왔다면 우리는 그를 친구로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재현하는 세상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신의 영역이라는 인간의 탄생에까지 들어가 ‘또 다른 나’를 창조한다. 이렇게 탄생한 디지털의 자식들로 점점 세련되고 편리한 세상이 되어가지만 한편으로는 차가운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세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따뜻한 진짜를 원한다. 비록 가짜이지만 진짜의 감성을 가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Digilog)’다. 디지털이 처음 세상을 뒤집어놓을 때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낡은 것을 무너뜨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면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으니까. 디지털도 그랬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재탄생시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과 문명은 그렇게 인간을 현혹시킨다. 그러나 그 기대와 열광 속에서 일찍이 디지털 세상의 부작용, 결함을 예견하고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 그것의 가치를 강조한 사람도 있다. 디지로그라는 말로 둘의 결합의 당위성을 세상에 먼저 설파한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이다.
2006년 펴낸 <디지로그>에서 그는 차갑고 메마른 디지털로는 세상을 온전히 발전시킬 수 없다면서 아날로그의 따스한 감성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일색의 현상에서 아날로그와의 융합을 꿈꿔야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지식정보 사회는 ‘나눔’의 사회이며, 물질이 아닌 ‘감동’을 기본으로 하고, 첨단 디지털 문화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는 쌍방의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서로 같이 있을 수 없는 것을 하나로 통합’해내는 비빔밥과 ‘페어 문화’로 상징되는 젓가락에 한국인의 그런 정서와 저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의 벽을 아날로그의 지렛대를 가지고 넘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로지 디지털만 맹렬히 좇았다. 그러나 20년도 안 돼, 제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이 또 한 번 날아오르고 있는 지금, 아날로그는 결코 낡고 버려야 할 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아날로그로 보완하는 디지로그가 사회, 문화, 산업 전반에 중요한 흐름이 됐다. 디지털만으로는 미래를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지배할 수 없다는 깨달음, 디지털이 사람을 자연과 생명체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는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보관하는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카메라, 손 글씨로 엮은 소설책, LP를 듣는 듯한 오디오, 전자 펜으로 직접 쓰는 노트북, 크라우드소싱 리뷰 서비스인 옐프 등 ‘아날로그 반도체’, ‘인간적 디지털’이 새로운 물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것에서 사람들은 온기와 친근함을 느낀다. 디지털 키오스크(Kiosk)와 카페처럼 편안한 아날로그적 공간을 결합한 은행들의 융·복합 점포도 고객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캐나다 문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재탄생과 부활은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까지 했다. 그 반격의 가장 큰 이유는 종이책, 필름, 레코드판, 오프라인 상점, 인쇄물, 보드게임에는 디지털에 없는 직접 경험의 즐거움과 공감,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원고를 쓰는 소설가 김훈이 “글씨는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글 쓰는 한 인간의 숨결”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디지로그는 데이비드 색스가 말하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아니다. 다분히 복고적 취향으로 기술과 문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날로그가 디지털 시대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둘은 적대적 관계도 아니다. 따라서 디지로그는 대립이나 갈등, 택일이 아닌 포용과 융합이다. ‘기계 같은 인간’, ‘진짜 같은 가짜 세상’을 ‘인간 같은 기술’로 극복하고 바꾸자는 것이다. 데이비드 색스도 아날로그의 반격도 결국 둘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디지털이란 차가운 날개에 따뜻한 인간의 피와 온기를 불어넣어 인간 세상으로 날아가자는 것이다.

디지로그의 아날로그도 기술의 힘을 빌린 진짜가 아닌 비슷한 경험이라는 점에서는 디지털이다. 그래서 자연이 아닌 ‘자연스러운’ 허상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것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생과 조화로 조금이라도 사람다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임은 분명하다. 그 사람다움에는 디지털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사회적, 경제적 미덕도 있다. 아날로그와 달리 아무리 써도 모자라거나 없어지지 않아 나눔과 협력과 개방이 가능한, 공유. 이미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 오고 있다.


디지털에 날개를 달다
글 이대현국민대학교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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