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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호시어 레인(HOSIER LANE)골목과 하늘 사이
미완의 예술가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
낯선 골목과 골목을 누비는 여행의 행복. 멜버른 작은 도심에 얽히고설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를 만들고, 미로마다 거리 예술가들이 미완성의 꿈을 짓고 있다. 그들이 디딘 땅과 아직 닿지 못한 먼 하늘 사이에 호시어 레인이 자리 잡았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1. 도심 곳곳에서 심심찮게 그라피티를 발견할 수 있다.
형형색색 기하학 무늬의 유리를 빗대 올려 현대적 감각을 자랑하는 건물과 한눈에도 유서 깊은 유럽풍 건축물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날카롭지 않은 겨울바람이 태즈먼해(Tasman Sea)를 건너 도시 안쪽까지 성기게 안겨 들고 있었다. 첫 골목에는 독특한 작품을 팔고 있는 갤러리가 즐비하고, 다음 골목에는 꼭꼭 숨어 있는 작은 카페가 커피 향을 뿜어낸다. 이 좁고 아련한 길은 도시의 삶과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젖줄이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2. 골목골목 작은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닫는 멜버른 시민들. 커피 사랑이 유별나다.
다면(多面)의 골목미리 정해둔 동선은 없다. 가끔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는 게 가장 여행다운 여행이 된다. 계획 없는 발길처럼 노면전차는 길 사이사이를 바쁠 것 없이 지나고 있다. 골목길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를 반기는 건 마이크로(micro) 카페들이다. 고작 두 평 남짓한 공간에 저마다 다른 색과 향을 채워―참, 이상한 일이지. 특별히 차별화랄 것 없음에도 묘하게 가게마다 개성이 선명한―커피 한 잔을 낸다. 멜버른 시민들의 하루 역시 카페에서 시작되고 카페에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의 스탠딩 카페에는 정신을 흔들어 깨우는 자명종 같은 커피가, 밤의 노천카페에는 그날의 희로애락을 정리하는 일기장 같은 커피가 멜버니언(melburnian)의 손마다 들려 있다.
‘여기는 꼭 아시아 어느 도시의 담장 길 같군.’ 하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골목에 대한 감각은 바뀌기 일쑤다. ‘아! 이곳은 중세 유럽이었군!’ 여행자를 혼란하게 하는, 현대적이며 동시에 고전적이고, 문화적으로도 다면적인 골목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 서쪽에서 엄청난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고, 삶의 반전을 기대한 전 세계 사람이 멜버른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도시 곳곳에 정착하면서 서로 다른 생활 방식, 스타일, 문화를 풀어 저마다의 골목을 지었다. 자유롭고, 문화와 예술이 넘치는 골목과 골목을 이어 그렇게 호주의 중심지가 탄생했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3. 현대적인 건축물과 유럽 중세풍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멜버른 시내 정경.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예술길도시의 모든 골목 중 나를 단숨에 사로잡은 곳은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이다. 채 100m도 되지 않는 길임에도 하루 종일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골목이기에? 뭐랄까. 이곳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키스하며 지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이다. 마이클 잭슨이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그 옆에 스티븐 호킹이 깊은 눈으로 우주를 세는 곳이다. 이곳은 발칙한 거리 예술, 그라피티 아트의 전위적이고 영감 넘치는 실험실이니까.
좁은 골목을 감싸 안은 3m 높이의 양쪽 벽 가득히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그라피티? 그거 벽에 막 스프레이로 낙서하는 거?”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미개인(未開人) 취급을 받을 일. 적어도 호시어 레인에서는 그라피티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고매한 예술 작업이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벽화를 그리거나 때론 벽을 파내기도 하고, 다른 소재를 덧입혀 그림을 완성시키기도 하는 그라피티 아트는 원래 힙합이 그런 것처럼 기존 질서에 항변하는 저항 문화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현대 예술의 다양한 분야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자유롭고 담대하며, 때론 파격적인 벽화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여행자가 호시어 레인에 흘러든다. 작품에는 따로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하나 고유하고 흠잡을 것 없는 예술이라는 데 누구도 반문하지 않을 것이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4. 도심의 어느 풍경은 흡사 골드러시 시대를 옮겨둔 것 같다.
지저분한 뒷골목, 새 꿈을 품다사실 한국에는 오래전 히트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잘 알려진 거리지만, 호시어 레인의 숨은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번역하자면 ‘양말 가게 거리’라는 뜻인 호시어 레인이 처음 조성됐을 때는 면직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20년대 당시에는 주로 남성의 옷을 만드는 업체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방적 산업이 쇠퇴하며 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방치되기 시작했다. 마약이 거래되고, 말썽이 끊이지 않는 우범지대로 변했다. 버려진 골목의 벽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멜버른시는 그즈음 처치 곤란한 골칫거리를 하나 안고 있었다. 도시 청년들이 여기저기 벽마다 낙서를 하기 시작한 것(당시에는 그라피티를
낙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민원이 빗발쳤다.
방치된 호시어 레인과 도시의 낙서. 어찌 보면 필연이었을까? 멜버른시는 이럴 바에는 아예 호시어 레인을 합법적으로 낙서가 가능한 골목으로 지정하자는 기막힌 결정을 내린다. “자, 이제 멋대로 낙서를 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는 골목을 만들어줄 테니 이제부터 여기에만 그림을 그리렴! 대신 도시 다른 곳은 절대 안 돼!” 뭐, 이런 거였다. 공식적인 낙서 골목이 탄생했다. 물론, 이곳이 훗날 거리 예술의 성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5.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라피티와 그라피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작가.
잠깐 동안의 벽호시어 레인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이 그라피티 작품에 부여된 시간적 한계다. 흔히 예술은 무한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의 작품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말을 해야겠다. 하루에도 여러 명의 그라피티 작가가 이미 꽉 차 있는 벽 위에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보기에 가장 별로라고 생각되는 그라피티에 덧칠해 새 그림을 그려 넣는다. 그럴싸한 비평? 전문가의 판단이나 식견? 그딴 건 필요 없다. 내 시선, 내 결정이 유일한 기준이다. 그러니 날마다 이 벽은 마치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표정을 바꾸며 새로운 예술을 입는다. 지금 내가 보는 벽과 같은 벽을 다시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다. 이 일시성(一時性)과 변주야말로 호시어 레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오늘도 골목 한편에는 고작 며칠, 몇 주를 버티면 사라지고 말 그림을 묵묵히 그려 넣는 예술가가 있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야 대충대충 그리면 될 것 같은데 점 하나, 선 하나, 면 하나를 긋는 데 수십 번 벽을 가늠하고, 손이 저리도록 스프레이 물감을 덧칠한다. 다시 새로운 호시어 레인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6. 노면전차는 도심의 골목과 골목을 잇는 혈관이다.
꿈의 힘을 의심하고, 또 믿으며호시어 레인에서 몇 블록만 옮기면 길은 디그레이브스 스트리트(Degraves Street)로 이어진다. 호시어 레인과 더불어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이다. 작은 카페가 빼곡하고, 테이블과 의자는 골목 중앙까지 들어찼다.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과 지나는 사람, 시민과 여행자, 예술가와 관객의 경계가 흐트러진다. 그때 어디선가 건반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없이 가늘고 떨리면서도, 또 한없이 깊고 묵직한 노래라면 좋을까. 소리를 따라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띄었다. 곧 그녀 옆에 놓인 전동 휠체어를 발견했고, 이어서 건반의 노래가 들렸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귀와 눈이 먼저 알아챈다. 아, 저이는 지금껏 살아낸 모든 시절의 힘을 한데 모아 연주하고 있구나. 하기야 모든 예술가가 그럴 것이다. 그녀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하얀 머리카락이 물결을 치고, 미간의 주름마다 시간이 멈춘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현실은 각박하고 꿈은 언제나 너무 멀리 있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사는 거라며 아무리 타일러도 당신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골목을 벗어나 날아오르는 이들을 지켜볼 때마다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당신의 살림이, 노동이, 예술이 초라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가란 누구일까. 그녀의 몸짓이 정의하고 있었다. 있는 힘껏 자신을 다해 오늘을 연주하는 자, 유한한 벽 위에 무한의 꿈을 그려내는 자, 그들이 모두 거장(巨匠)이다.
당신의 예술은 위대하다. 언젠가 날아오를 것이어서가 아니라 이 까마득한 세상을 당신은 예술가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과 하늘 사이<br>미완의 예술가7. 저들은 누구나 고유하고 진지한 예술가이다.


글 양정훈(여행작가)•사진 양정훈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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