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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트번스타인 外 <생각의 탄생> vs
알렉스 허친슨 <인듀어>
새로운 ‘르네상스인’의 시대, 상상력을
확장하라

천재란 무엇인가. 범박하게 말해 천재는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파블로 피카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 우리가 익히 들어 친숙한 이름도 수없이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각 분야를 넘나드는 창조적 사고와 상상력을 거의 무한대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면의 귀로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천재들의 창조적 상상력의 실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구체적 삶의 세부, 정신적 풍경의 궤적을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그 도저한 창조성의 전모를 그려볼 수 있다.
새로운 ‘르네상스인’의 시대, 상상력을<br>확장하라
<생각의 탄생(Spark of Genius)>(로버트 루트번스타인 外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과 <인듀어(Endure)>(알렉스 허친슨 지음, 서유라 옮김, 다산초당 펴냄)는 인간의 창조성과 잠재력에 대해 근원적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미국의 저명한 생리학자인 루트번스타인은 이 책의 원제가 암시하듯 ‘천재의 불꽃’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각 분야 천재적 인물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키워드는 물론 ‘창조적으로 생각하기’다. 창조적 사고는 논리학이나 언어학의 법칙이 작동하기 전에 직관과 감정, 이미지와 몸의 느낌을 통해 그 존재를 미리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초(超)논리적 사고다.

창조적 천재들은 종종 그림을 듣고 음악을 본다. 즉흥연주회에 참여할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했던 다빈치는 새로운 생각의 단초가 될 만한 ‘패턴’을 발견하는 데 눈 못지않게 귀가 큰 역할을 했다. “벽의 복잡한 문양 속에서 형상을 발견하는 것은 시끄러운 종소리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름이나 단어를 찾아내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피아노 앞에서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음악을 보고 머릿속으로 그것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과연 이 같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을까. 상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루트번스타인은 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개의 ‘생각도구’를 소개한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dimensional thinking),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이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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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의 도구 중에는 현실에서 너무 흔하게 이루어져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추상화다. 우리 현실은 추상의 총체다. 불필요한 것을 버려가면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추상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뛰어난 웅변가였던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5분짜리 얘깃거리를 하루 종일 떠들 수는 있지만 말할 시간이 5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걸 위해 하루 동안 꼬박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홉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을 했다”라고 한 천재 화가 피카소 또한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림을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거듭 토로했다. 피카소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 것을 그렸다. 그는 상상이 사실보다 진실하다고 믿었다. 가장 추상적인 것이야말로 현실성의 정점이라고 여겼다. 피카소가 화가들에게 던진 ‘충고’가 인상적이다. “추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항상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가를 포함해 많은 이가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현실을 무시하면서 추상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걷지도 못하면서 뛰는 격이라고 할까. 기본 데생 실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요령부득의 추상화를 내놓고, 시의 기초 문법도 모르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난해한 시를 남발하는 왜곡된 문화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몸으로 생각하기’는 ‘몸의 상상력(body imagination)’을 강조한 말이다. 몸은 사고의 도구다. 몸의 상상력은 생각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이 불려 나오는 바로 그 순간 작동한다. 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 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기억을 저장한다. 모차르트는 공공연하게 손과 입을 움직이며 곡을 썼다고 한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전형적인 ‘몸으로 느끼는’ 예술이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29년 동안이나 이끈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지휘를 “몸 전체를 가지고 음악의 형상을 춤으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의 전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조지 앤타일은 콘서트 연주를 15라운드 권투 시합에 비유했다.
예술 못지않게 상상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과학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해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 성과는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수학이나 형식논리학은 그에게 부차적 수단이었다. 연구를 진척시키기 위해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수학이 애먹인다고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심각하다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미국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나는 문제를 풀지 않고 ‘느꼈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는 이렇게 지적한다. “모든 과학은 예술에 닿아 있다. 모든 예술에는 과학적 측면이 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과학자에게 상상력은 가히 숙명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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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감정이입이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노먼 매클린의 자전적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면 플라이 낚시에 심취한 주인공 폴이 물고기처럼 생각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국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는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대나무가 내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과학자들도 통찰을 얻기 위해 감정이입에 의존한다.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은 유명하다. 자신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광자(光子)로 상상한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광자가 되어 광자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봤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즉흥시인이기도 했던 아인슈타인은 일급 ‘감정이입가(empathizer)’였다. 우리는 어떻게 이처럼 결정적인 생각의 도구인 감정이입법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연극이 그것이다(The play’s the thing)”라는 셰익스피어의 경구에서 답을 찾는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연극을 경험하는 것은 감정이입적 상상력을 촉발하고 증진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전문가 시대를 넘어 통합의 시대다. 파편화된 지식에 매몰돼 자신의 분야 밖에서는 소통할 수 없는 전문가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이 책에 제시된 생각 도구들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몸과 마음, 감각과 분별력을 이어주는 ‘종합지(synosia)’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공감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를 이루는 전인적 인간, 새로운 ‘르네상스적 교양인(renaissance man)’의 완성도 이를 통해 가능하다.

세상을 바꾼 천재들의 창조적 사고와 감각 융합의 궤적을 보면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진다. 육상 선수 출신 물리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허친슨의 저작 <인듀어> 또한 ‘생각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두뇌 활동을 포함한 인체의 작동 원리와 잠재력의 비밀을 다룬다. 허친슨이 궁극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지구력의 정체다. “당신은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맞설 힘, 즉 인듀어런스(endurance)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는 저자는 인간의 한계를 깨는 지구력의 실체를 심리학과 생리학, 뇌과학 등 다양한 인접 학문을 통해 다각도로 살핀다. 몸에서 마음까지, 지구력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전 세계 학자와 운동선수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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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간의 한계는 주로 심장의 크기, 폐의 기능, 근육의 강도 같은 신체 능력, 즉 생리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돼왔다. 그러나 최신 연구는 이런 전통적 관점과 달리 몸의 신호를 해석하는 뇌의 기능을 강조한다. 허친슨 또한 뇌 지구력 훈련과 뇌 전기 자극을 직접 체험하여 “인간이 스스로 인지한 한계는 뇌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한계가 몸이나 마음 어느 한쪽에 의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몸과 마음의 이슈와 관련한 현장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산소를 지구력의 진짜 한계 요인으로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세상에서 가장 오래 참을 수 있는 정지 무호흡 선수들은 월등한 폐활량을 타고났지만 그들이 진정 기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는 심리적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몸이 아니고 마음의 문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극도로 높은 지역에 체질적으로 적응할 수 없는 등반가들은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한 이탈리아 산악인 레이놀드 메스네르가 거뜬히 올라간 높이에서도 죽음을 맞이하곤 한다. 이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다. 요컨대 몸과 마음 둘 중 하나만 탓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오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러한 ‘절충적’ 견해에서 알 수 있듯 지구력 저장고의 빗장을 푸는 데 만능열쇠는 없다. 이 책에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평이하다. 저자는 1991년 마라톤 2시간의 벽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으로 유명해진 미국 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가 쓴 하이쿠 한 편을 소개한다. “아주 긴 거리를 달려라/때로는 원래보다 빨리 달려라/가끔은 쉬어가며 달려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길은 결국 몸과 마음을 꾸준히 단련하는 기본 훈련에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은 뇌 속에 중앙 통제자가 있어 뇌가 인간이 느끼는 한계의 대부분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렇다면 장거리 달리기에 요구되는 지구력이 일상생활의 다른 영역에 필요한 지구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다. 인간에게는 스스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 이상의 힘이 있다. 창조적 상상력의 근원을 밝히는 루트번스타인도 지구력의 비밀을 추적하는 허친슨도 공히 직관의 힘을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 안에 잠든 창조성을 일깨우고 내면의 잠재력에 불을 댕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육체적·심리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천재가 아니어도 사고의 달인, 지구력의 거인이 될 수 있다.


글 김종면(콘텐츠랩 씨큐브 수석연구원·전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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