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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 Happy아름다운 ‘셀피’를 위하여

아름다운 ‘셀피’를 위하여

셀피(SELPPY)를 아는가.
원래는 ‘스스로 자신을 촬영한 자화상 사진’을 말하지만,
셀프(Self)와 행복(Happy)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생각과 행위’로 브랜드마케팅 컨설팅그룹인
위드컬처의 컬처트렌드연구소(CUTI)가 2019년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소확행의 확장? ‘셀피의 법칙’
셀피는 나만의 행복 찾기와 추구.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좇아가지 않고 자기중심주의로 살겠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든 오로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의 행복을 중시하는 ‘소확행’의 확장이다. 알파벳의 앞글자를 따 여섯 가지 키워드로 ‘셀피의 법칙’을 요약하면 이렇다.

아름다운 ‘셀피’를 위하여

“이미 개개인의 변화된 성 관념이 사회로 확장되고 있으며, 개인들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다양한 ‘나'로 표현되는 소비의 주체들이 스스로 즐기는 모든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이러한 개인들의 취향, 생각, 소비 패턴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나의 만족을 찾다, 그리고 당신을 존중한다
셀피는 다분히 새로운 마케팅전략과 소비 패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중요한 흐름을 반영한다. 남성이 아이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라떼파파’의 등장과 젠더 뉴트럴 바람, 직접 체험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경험으로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유튜브 플랫폼의 급속한 확산, 1인 마켓의 활성화, 싱어롱(Singalong·따라 부르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필요할 때만 소통하고 미련 없이 끊어버리는 ‘티슈 인맥’ 등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유이고, 선택의 산물이다. 사회에서 정한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 따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만족이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가치관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은 무시하는 에고이즘과는 다르다. 타인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나의 행복, 나의 경계만을 지킬 것이니 너도 너의 행복, 너의 경계를 지켜라”다. “네 멋대로 해”는 냉소가 아닌 인정이다. ‘셀피의 법칙’도 이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과연 소확행도, 셀피로 상징되는 자기중심주의가 진정한 자아 찾기의 인식과 자각의 실천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낳은 슬픈 미래일까.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새로운 기술혁명(제4차 산업)이 어우러져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을 파편화·극단적 양극화·개인화하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삶의 보편적 가치들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취업, 결혼, 출산, 주거 공간 등)이 막혀버린 ‘포기’가 있다.
한병철 교수(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가 <피로사회>에서 말하는 성과사회에서 오는 자기착취의 ‘피로’가 있다. 그 피로를 악착같이 견뎌내며 발버둥을 쳐도 시간과 미래까지 통제당하는, 이탈리아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가 말하는 ‘부채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좌절’이 있다.


아름다운 ‘셀피’를 위하여

셀피보다는 우리가 행복한 위피로
자기중심주의는 그 포기와 피로와 좌절이 분노와 저항과 자기학대로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행복 찾기’로 향한 것이다. 때문에 “사회적 욕망을 모두 거세당한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분석도 있다. 분명히 철학적 사유와 자기성찰에 의한 삶의 가치와 의미의 발견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확행이 조작된 트렌드로서의 이데올로기”라고까지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자아와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한 선택을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이기주의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뜯어먹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얻은 행복감, 일본영화를 임순례 감독이 지난해 리메이크 한 <리틀 포레스트>에서 시골 작은 마을인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손수 만든 콩국수를 먹을 때의 행복감은 그들에게 분명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글을 읽고, 영상을 보고, 아니면 그것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감 역시 아름다운 감정이다. 그러나 그 소확행이나 셀피가 더욱 행복하고 아름다워지려면 나만의 짧은 감정의 향유와 소비의 반복이 아닌 케렌시아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그 행복을 공유하는 생산으로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자칫 자기중심주의가 자기에만 머물러 공동체와의 나눔과 공감을 외면해 세상을 무채색으로 만든다면, 내가 찍은 나의 자화상 사진인 셀피 역시 행복한 모
습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100세의 노(老)철학자인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는 “나만 사랑하면 나만 행복하지만, 사회를 사랑하면 사회가 행복하다”고 했다. 소확행이 아닌, 크고 확실한 대확행. 셀피가 아닌 우리가 행복한 위피.


아름다운 ‘셀피’를 위하여



Words 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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