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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관한 화두를 그리다변웅필 작가
‘당신의 편견은 어디까지입니까?’
변웅필 작가

작가 변웅필은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화상은 표현을 위한 매개일 뿐, 변웅필 자신도 그 누구의 얼굴도 아니다.
변웅필은 왜 자화상을 작품의 모티프로 선택한 것일까?
그를 만나 미술가로서의 가치관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변웅필 작가01 - 두 사람- 포옹 2017 oil on canvas 116.8cm x 91cm
02 - 두 사람-풋사과ll 2018 oil on canvas 180cm x 150cm
03 - 두 사람- 빨강lll 2018 oil on canvas 180cm x 150cm

변웅필 작가04 -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표출X, Xl 2016 oil on canvas 72.7cm x 60.6cm x 2
변웅필 작가05 - 변웅필 작가

변웅필 작가06 - 한 사람- 역할 2018 oil on canavs 53cm x 45.5cm
소년, 그림을 좇다
소년의 시간은 늘 정체돼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무심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먼지처럼 쌓여갔다. 그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소년은 곧잘 쓸쓸했고 문득 두려웠다.
아버지는 노름꾼이었고 4남매와 먹고살기 바쁜 어머니는 아이들이 무탈하게 크는 것만 능사라고 여겼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교육열만큼은 뜨거웠던 어머니를 따라 10살 무렵, 전남 장흥에서 서울 변두리로 전학을 왔지만 낯선 환경과 좁은 셋집은 소년을 차츰 방황의 길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던 어머니는 집에 없기 일쑤였고 어린 누나가 지어준 밥은 소년의 몸집과 불안을 동시에 키웠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소년은 결국 공부에 등을 돌렸다. 친구들과 모여 늦게까지 쏘다녔고 일탈과 비행도 서슴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에는 원인 모를 불안감을 잊을 수가 있었다는 소년. 소년의 시간은 여전히 텅 빈 채였다.
소년은 성적에 맞춰 인근의 상고에 진학했다. 소년은 적당히 버티다 졸업장만 따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들을 의미 없이 소비해 나갔다.
그런데 학교생활에는 의외로 귀찮은 것이 많았다. 수업시간 외에 진행되는 특별 활동이란 것이 특히 그러했다. 아이들은 여자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에 들어가려 안달복달하였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소년에겐 그조차도 심드렁할 뿐이었다. 끝내 그는 가장 인기 없던 미술반에 들어갔다. 미술반은 남자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어 기피 대상 1호였다. 더군다나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엄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림이라고는 수업 시간마다 교과서에 낙서하던 것이 전부였던 터라 무섭기도 하였지만,
‘까짓, 대충 끼적이며 시간이나 때워보자’라는 마음으로 미술반에 드나들곤 했다. 근데 그해 늦봄, 서울시청소년사생대회에서 덜컥 상을 타버렸다. 소년 자신도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소년의 가슴이 처음으로 뜨겁게 뛰었다.
‘아, 내가 그림에 소질 있구나!’ 깨닫는 순간, 소년은 꿈이 생겼다. 미술반의 선생님도 미대 진학을 적극 권했다. ‘공부라곤 해본 적도 없고 교과서는 낙서장으로만 쓰던 내가 대학교에?’ 한편으론 자신 없었지만 미술반 선생님 도움으로 난생처음 입시 미술학원이란 곳에 등록했다. 소년의 시간이 째깍째깍 그제야 흐르기 시작했다.



변웅필 작가
코리아아트가이드
전시 정보 공유 플랫폼인 코리아아트가이드(http://koreaartguide.com)는 국내 갤러리나 미술관의 다양한 전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한 오픈서비스다. 지역별로 전시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어 누구든지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다. 또한 미술 관련 종사자를 위한 공모정보 및 각종 지원 사업 정보, 구인구직란도 개설되어 있다. 작가 변웅필의 전시회도 이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
이는 작가 변웅필의 이야기다. 변웅필은 조언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려면, 작가의 삶부터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그럼 그 이후, 작가의 생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미대에 진학하겠다는 작가를 부모님은 한사코 말렸다. 당시 대다수의 어른이 그러했듯 그림으론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만만찮은 학원비도 문제였다.
그렇지만 소년 변웅필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야만 비로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은 소년의 존재적 가치를 확인케 해주는 일종의 생명수 같았다. 학원장을 찾아간 소년은 사정을 솔직히 털어놨다. 소년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한 원장은 제안했다. 학원비 대신에 화실 청소를 하라고. 덕분에 소년은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됐고, 마침내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했다.
졸업만 하면 다 잘될 것이라 믿었으나 미술계 실상은 기대와 달랐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연하게 존재하는 카르텔이 국내 미술계를 장악하고 있었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청년 변웅필은 깊은 실망감을 안고 유학길을 준비했다. 항공료만 겨우 마련해서 향한 곳은 그가 평소 좋아했던 작가 임멘도르프와 바젤리츠, 요셉보이스의 본국 독일이다.

변웅필 작가07 -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밴드ll 2017 oil on canvas 120cm x 100cm
08 -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분홍장갑5001 2016 oil on canvas 116.8 cm x 91cm
09 -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실 2017 oil on canvas 150cm x 130cm
10 -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연필ll 2016 oil on canvas 120cm x 100cm

이곳에서 변웅필은 선입관의 무서움을 새삼 경험하게 된다. 그가 원했던 예술대학인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지만, 동양인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선들은 부정적이었다.
‘동양인이 예술? 설마…, 돈 벌려고 온 거겠지’ 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양인은 가난하고 예술에 대한 조예가 없을 것이란 편견이 지배적이었던 것.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학 시절 내내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청년 변웅필은 당시 겪고 느낀 바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그렇게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Self Portrait As Someone)」이 탄생했다.

변웅필 작가

나는 계속 질문한다
변웅필의 대표적인 연작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Self Portrait As Someone)」은 작가 자신을 모델로 삼긴 했지만 자화상이라고 하긴 다소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작가 변웅필을 연상하게 하는 특징, 그러니까 피부색과 패션, 머리카락, 나이 등을 모두 배제한 까닭이다. 하다못해 눈썹조차 없다. 변웅필인 것도, 변웅필이 아닌 것도 같은 기묘한 자화상. 자화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음에도 익명성을 추구하는 듯한 해당 작품들은 외형만을 보고 섣부르게 정체성을 규정짓는 편견들에 묵직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연작시리즈인 「한 사람(Someone)」도 마찬가지다. 작품에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역시 연령, 인종, 성별, 표정, 국적 등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겠다. 이에 작가 변웅필은 그냥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줄 것을 당부한다. 작품 속의 소품들에 대한 메시지를 묻자 ‘없다!’라고 잘라 대답한다. 정보가 많으면 관념의 굴레에 휩싸여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해석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며 정답은 없다는 것이 작가 변웅필의 설명이다.
메시지가 없는 것이 메시지인 작가 변웅필의 작품들은 그럼에도 끊임없이 묻고 있다. “여러분은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라고.

변웅필 작가11 - 한 사람 2012 acrylic on wood h179cm x w55cm
12 - 한 사람 2012 acrylic on wood h55cm x w132cm
13 - 두 사람 2012 acrylic on wood h123cm x w123cm
14 - 두 사람 2012 acrylic on wood h157cm x w154cm



Words 이소영 Artist 변웅필 Photographs 고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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