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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90년생’이다
이제는 ‘90년생’이다

1990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이다.
공자(孔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지만, 60여만 명의 대한민국 90년생에게는 ‘아직’이다.
그 입(立)이 학문이 됐든, 신념이 됐든, 경제적 자립이 됐든.
물론 이미 일어서서 자신의 길을 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언제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을지 모른다.
공자의 나라인 중국에서도 ‘삼십난립(三十難立)’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한 것이 매력
한두 해 빠르게 혹은 느리게 태어났다고 그 모습이 이전, 이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른바 ‘밀레니얼세대’라고 불리는 90년생, 넓게는 9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그들만의 색깔과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기말, 에코베이비붐세대의 막내로 태어난 그들이 지나온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과 시대변화 속에서 얻은 경험, 지식과 무관하지 않다.
90년생은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고, 디지털시대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당연히 부모세대와는 가치관이 다르고,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도 다르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권위와 구속, 특히 ‘꼰대’로 지칭되는 기성세대의 강요와 간섭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다.
브랜드 매니저인 임홍택은 지난 연말에 출간한 책 <90년생이 온다>에서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로 압축했다. 그가 말하는 90년생은 모바일이 삶의 만능도구가 된 ‘앱 네이티브’로 줄임말이 일상 언어, 이모티콘과 짤방이 커뮤니케이션 언어가 됐다. 비선형적 사고로 바뀐 그들은 두꺼운 책보다 간단한 두세 줄의 요약을 찾는다. 소설보다는 만화, 소설을 읽더라도 초단편을 선택한다. 재미가 논리성, 객관성, 타당성이 먼저다. 어설프고 맥락도 없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웹툰에서 시작한 내용이 이상하고, 어이없으며, 말이 안 되는 병맛문화를 즐기고, 그런 광고의 제품을 구매한다. 어디서든 자신의 감정과 생각, 가치관에 솔직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참거나 못 본 척하지 않고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여기는 금연구역이니 피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이나 부당함은 없다.
당연히 꼰대식의 참견도 싫어한다.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참견은 ‘자신과 어느정도 관계가 있는 일에 함께 하는’ 참여와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불황과 고용절벽을 뚫고 어렵게 취업을 했지만 평생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회사는 충성과 헌신의 대상이 아니며 언제든 이직과 퇴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충실하려 한다. 이 같은 자기중심주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자기만족의 ‘유희’를 추구하고 그것에 행복을 찾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확행, 워라밸이 그렇다. 칼 퇴근, 눈치 보지 않는 휴가와 연차사용, 혼밥, 혼여행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아무리 절친이라도 더치페이를 하고, 좋아하는 물건이나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소비를 한다.


문화와 트렌드를 이끄는 새로운 세대
<90년생이 온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대인 82년생이 잡아낸 90년생의 모습이다. 비록 직접 만나고 관찰한 것이긴 하지만 놓친 것,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꼰대의 시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90년생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어떻게 자랐고,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고. 90년생의 특징이라는 단편적으로 맥락 없이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때론 긴 설명이나 문장보다 날카롭다.
“우리는 풍요로울 때 태어나 점점 힘들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부모인 베이비붐세대와는 다르다. 경제 발전시기여서 그들은 무엇을 해도 됐지만 우리는 그 무엇조차 없다. 90년생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일과 가정, 취업과 결혼을 포기한 비전이 거세당한 세대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와 포켓몬스터에 빠져있던 어린시절, 갑자기 찾아온 외환위기로 판타지는 깨지고 그 자리에 세기말의 우울함이 들어왔다. 디지털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그것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데도 능동적이다. 1997년에 등장한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게임을 즐기는 세대이지만, 어릴 때 이따금 만났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도 가지고 있다.
나 자신, 개인이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사회 정의나 신뢰에 무관심하지 않다. 충성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불합리한 권위주의에 반감이 크고, 특히 꼰대들에게 당하는 것은 너무 싫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천만에. 탄핵정국에서 우리의 모습을 기억해보라. 이념적으로 모두 진보여서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경험한 대통령은 김대중부터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그때그때 평가에 따라 언제든 좋아하고 싫어할 수 있다.
<90년생이 온다>에서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 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90년생 역시 생존과 행복의 전략으로 시대에 적응하려는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결코 ‘별종’이 아니다. 설사 별종이라고 해도 그렇게 만든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찰스 A. 라이히는 이미 1970년에 <의식혁명>(원제 The Greening of America)에서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에 세상은 발전한다”고 했다. 어느 시대에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그 새로운 세대가 90년대생이다. 사회도, 기업도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생각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과 생각 속으로 흔쾌히 들어가 공감하고 어루만져야 한다. 사회초년생이자 문화와 상품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로,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

이제는 ‘90년생’이다


Words 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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