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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勇氣)로 세계 최고의 용기(容器)를 만들다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
IBK기업은행 춘의테크노지점 거래 업체
미국의 저널리스트 미뇽 머클로플린은 “단 하나의 중요한 용기는 당신을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한 제약회사의 총무부 직원이었던 조휘철 회장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펜대를 잡던 손으로 금형기계를 만지고 다시 국산개발 화장품 용기로 글로벌 시장을 제패하기까지 매순간을 도전과 용기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왔던 조 회장.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삼화플라스틱을 이끌어온 그를 만나보았다.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

대한민국 제조업 1세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삼화플라스틱 건물에 들어선 순간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구조물에 눈길을 빼앗긴다. 1977년 문을 연 삼화플라스틱의 오랜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오로지 땀으로 일군 현재의 곧은 품격을 상징하는 쇠붙이가 조각 작품처럼 층층이 쌓여있다.

“제가 제약회사 총무부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신제품 캡(뚜껑) 금형의 납기가 계속 늦춰지는 바람에 결국 출시까지 지연된 일이 있었어요. 제가 금형 공장에 나가서 밤을 새가면서 납기 날짜를 최대한 앞당기도록 했죠. 당시 제 월급이 18만 원이었는데 금형은 하나에 20만 원이었어요. 성실히 기술로 승부하면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용기를 내서 금형사업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나 여전히 푸른 생기가 살아있는 목소리로 조회장이 마치 어제 일인 듯 선명하게 창업 초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게 그렇듯 열정만으로 일이 풀리진 않았다. 당시의 금형은 사출할 때 사람이 손으로 회전코어를 직접 돌려서 성형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고생은 말도 못하게 컸던 것이다.

“고민 끝에 금형에 모터를 달아 작동 할 수 있는 방법을 착안 했습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공정이었어요. 지금도 캡 금형은 제가 전문가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었던 시절, 늘 공장에서 직원들과 기름 투성이가 되어 일을 했던 때를 회상하는 조 회장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쳐갔다.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04 - (왼쪽부터) 조휘철 회장, 양진복 지점장
가장 먼저, 가장 높은 품질로, 가장 큰 신뢰를 받다
삼화플라스틱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빠르게 옷을 갈아입어온 회사였다. 금형에서 사출로, 다시 화장품 용기 개발로 변신한 것도 시대를 읽는 눈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금형 제작은 한 번 납품하면 해당 제품이 잘 팔린다고 해도, 재주문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금형으로 사출성형을 하는 것을 보니 지속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화장품에는 펌프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거의 없었어요. 간혹 있어도 그건 모두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해서 사용한 것들이었지요. 저는 펌프의 국산화를 꿈꾸면서 기술 개발을 시작했고 진공펌프(스트롱이 없는 진공에어리스)를 국내 최초로 개발·상용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수입 대체 효과를 가져왔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화장품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삼화플라스틱의 혁신제품 개발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용 진공펌프를 상용화한 것에 이어 2000년도 초반에는 펌프의 모듈화로 공정혁신을 실현했다. 또 페이스메이크업 부문의 진공cc쿠션 이중사출 용기를 개발해, 초기 다국적 기업의 cc쿠션 용기의 70%가 삼화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지금도 cc쿠션용기는 국내는 물론 입생로랑, 시세이도, 샤넬 등 해외 유수의 브랜드에 납품되고 있으니 대한민국 여자들 화장품 파우치 안에는 삼화플라스틱 제품이 하나 정도는 반드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초기에는 이 사업을 환갑 때까지만 하겠다고 결심했던 조휘철 회장은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러 간 것 같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이제 10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동안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게 일하며 지내 온 날들이 제가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싶어요”라며 웃는다. 오로지 돈만이 목적이었다면결코 달려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05- 오랜 세월을 품은 삼화플라스틱의 상징, 금형탑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06 - 꼼꼼한 공정으로 불량률 제로에 도전한다
IBK기업은행은 함께 상생하는 파트너이자 친구
대한민국 강산이 4번은 변한다는 44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조업을 운영해왔다는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업이 흥할 때도 쇠할 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를 맺는 IBK기업 은행과의 인연 역시 그 긴 시간 안에 오롯이 들어가 있으니 그 세월이 품은 의미는 더욱 묵직하게 느껴진다.

“40년 전에는 지금은 없어진 J은행과 거래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J은행이 어려워지면서 어떤 은행과 거래를 할까 고민을 했었어요. 당시 IMF를 겪고 사업을 확장할 무렵이었는데 ‘그래도 기업하는 사람인데 IBK기업은행과 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직접 찾아갔지요. 당시 IBK기업은행 지점장님이 제 얘기를 듣고 바로 회사에 방문하시는 등 적극적으로 사업에 협조를 해주시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조 회장은 기업은행 독산동지점을 첫 거래로 시작하여 형만욱 지점장을 만났던 이야기, 이후 의왕으로 사업장을 이전하면서 알게된 현재 평촌중앙지점 양진복 지점장까지 모두 당사에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는 자랑을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조휘철 회장과 동석해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경청했던 양진복 지점장에게도 삼화플라스틱은 매우 각별한고객이다.

“조 회장님은 40년 넘게 사업체를 운영하신, 우리나라 1세대 사업가이십니다. 상장 회사를 고객으로 가장 많이 모시고 있는 지점 중 하나가 저희 평촌중앙지점인데 그중에서도 40년 이상 한 우물을 파신 분은 평촌중앙지점에도 한두 분밖에 안 계시니까요. 지금도 조 회장님은 밤새 연필로 화장품 용기를 스케치하시고 끝없는 아이디어로 연구 개발에 참여하십니다. 그 열정은 모두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삼화플라스틱은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시스템화가 굉장히 잘 되어 있는 업체예요.”

조휘철 회장은 사업을 시작한 이래 경영철학으로 ‘겸손’이라는 다소 낯선 단어를 내내 품어온 인물이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제품의 품질을 용기로 극대화하는 저력을 보여줘 왔지만 기술을 파는 사람이야말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은 44년이라는 세월동안 소나무처럼 한결 같았다. 아들인 조성환 대표에게도 끝없이 겸손을 강조하는 것도 낮은 자세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야 말로, 안팎으로 내실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총무부 직원의 작은 용기(勇氣)가 세계를 담는 거대한 용기(容器)를 만들어냈다. 이 용기가 과연 어디까지, 무엇을 담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비전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삼화플라스틱이 44년간 보여줘 온 근성이다. 돌아오는 길, 100년 기업을 꿈꾼다는 조휘철 회장의 소망은 100년 뒤의 후손들이 역사로 기록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차오른다. 붉고 또 뜨겁게.

㈜삼화플라스틱 조휘철 회장07- 내일을 그리는 삼화플라스틱의 숨은 주역들
-
Words 이경희 Photographs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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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배로
2019.06.08
따듯한 인상에 화목해 보이는 모습들이 부럽고
용기와 패기가 넘치는 회장님의 기업가 정신이 더욱 돋보이네요
더욱 건승하는 회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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